생명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의 소생을 기다리던 여인의 마음을 누가 읽을 수가 있을까?
그녀가 기다리던 긴 365일… 기다림의 만기가 되어 병원을 찾아온 젊고 미모의 금발 여인이 그 환자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만성병원에서 일할 때 있었던 일이다. 대학병원에서 그곳에 옮겨 간지 얼마3 되지 않아서 28세 된 젊은 남자 환자가 이병원의 내가 일하는 병실로 입원하게 되었다.
가스 회사에서 근무중에 지하 파이프에 문제가 있다는 지시를 받고 맨홀( Manhole) 을 밀어 제치고 지하로 내려 갔다가 가스 라인이 폭발 하면서 뒤 따라오던 동료직원은 큰 피해를 면했지만 이 사람은 먼저 내려간 탓으로 제한된 공간에서 피할 수 없이 당한 커다란 사고였다.
그 결과로 그는 완전히 의식을 잃게 되었고 뇌의 활동은 정지 상태로 들어가서 식물인간이 되어 이곳에 장기치료 환자로 오게 되었다. 이 환자가 들어왔을 때 사고의 경과, 환자상태, 가족관계 등을 기록 하였지만 부인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 오랜 병원 생활동안 한사람도 방문을 해오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기에 아무런 연고자나 친척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3교대 직무로 그에게 특별한 연민을 가지고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제공해 주고 환자의 경과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은 매일 매 일 간호를 맡은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의식이 없는 환자라 음식은 유체형의 고 담백질을 복부를 뚫어 이어진 튜브로 하루 세끼 공급을 받았으며, 소변은 24 시간 받아내는 인공 튜브를 통해서 제거하는 삶이 계속되었다. 이런 것은 대개의 중환자들에게 행해지는 기본 간호였다. 체위변경은 매 2 시간마다 욕창을 막기위해 행해지는데 이 사람이 계속 숨을 쉬는 한 해 주어야 할 일이었다.
환자 입원 후 그를 방문해오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만난적이 없었다. 그 환자 간호를 맡은 우리들은 말할 수 없는 연민 때문에 그를 더 정성껏 돌봐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의식 상태에 있던 환자였지만 듣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든 가, 본인의 간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가끔씩 얼굴 모습에서 근육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었기에…
일년이 경과한후 어느 날 홀연히 찾아온 낯선 여인, 이환자의 아내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남편의 시한부가 지났으니 튜브로 제공되는 음식을 이젠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소생의 길이 보이지 않는 남편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그녀의 요구가 정당한가? 그것이 남편이 평소에 원했던 일이었는지? 이 사람들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많은 혼동을 가져오게 했다. 이들의 결혼한 세월이 얼마나 되었는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보통부부라면 어떻게 그긴 세월에 단 한 번도 면회를 와서 남편의 경과도 묻고 남편의 상태나 예후도 물을 수 있었을 터인데... 손 한번을 잡고 환자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을 보지 못했는데 아내라는 법적인 관계 때문에 그의 시한부를 결정 한다는 것은 어쩜 나에게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이 요구를 받아드리는데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나라는 현제까지 안락사라는 법이 허락되지 않고 있기에 부인의 요구데로 생명을 다루는 윤리상담 전문가를 불러서 그의 아내, 담당 간호사들, 담당 의사와 환자의 소생 여부를 상의한 후에 전반적인 의견을 종합한후 최종의 결정을 하게 되었다. 결론은 부인의 의사를 따르기 로 하고 일년이란 세월의 적극적인 간호가 중단 되면서 수분으로만 유지하는 자연사 간호가 시작 되었다.
하루, 이틀, 삼일, 영양이 없는 수분 공급은 시간을 다투면서 환자의 몸은 주저 없이 서서히 생명의 주권을 포기하고 생명의 마지막길을 향해서 소리 없이 가고 있었다. 그의 몸은 세포들이 굶주림에서 가져오는 인간의 형체만 남게 되는 그 모습은 지금도 내기억속에 슬픈 기억속에 아련히 남아있다, 사람의 몸은 외부에서 공급해 주는 영양으로 세포들의 활동과 생명이 지탱해 나간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는 체험의 시간들이었고, 1주가 지나면서 그는 우리 곁을 떠나갔고 그녀의 모습은 사라졌다.
홀연히 나타나서 남편의 고통의 시간들을 끝내준 아내, 얼마나 많은 고심 끝에 그런 결정을 하였을까? 허나 그녀가 떠나간 후 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가 내린 결정이 정말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그녀는 남편의 생명에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했으면 그렇게 홀연히 나타나서 그 결정을 내렸는지 가히 짐작이 가지만 그래도 생명이란 누구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는 그 마음이 오랜 세월 나를 떠나지 않았다. 긴 세월이 지난 지금 나의 생각도 그녀의 생각에 많이 멀지 않게 다가가는 시간에 와 있음을 어찌 하리. 나에게 그런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온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생명이란 인간의 권한 밖에 있는 것인데..
2012년 03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