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부모님께 많이 감사하면서 잠자리에 드는시간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이유는 하마트면 나는 세상에 태어날수없었을 운명에서 6남매의 막내딸로 사업가인 아버지의 원하지 않은 딸로 태어났기때문이다. 아들하나에 딸이 넷이니 아버지는 아들을 원했고 어머니는 나이 40세에 건강까지 허락하지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출산한다는것은 주위 사람 모두가 반대하고 나섰는데 어머니님의 단호한 결정으로 태어난 나는 바라던 아들이 아니었기에 문제의 시작은 그기에서 였다.
나의 출생과 동시에 아버지는 새 여인을 찾아 떠나고 그토록 원하는 3아들을 얻어셨는데 한쌍의 쌍둥이와 아들하나을 더얻어서 소원풀이를 하셨다고 어머니는 들려주셨다. 양반집안에서 부와 명예와 인물을 갖춘 전영철, 우리아버지는 진주에서 세상에 부려운것없이 누리고 사셨지만 두가정을 이끌어가시기에는 책임감이 없었던 그런 아버지로 내 머리에 기억되고있다. 그시대에 일본 와세다 대학에 가셔서 경제학을 공부하고오셔서 사업가로 엄청난 부와 명에를 축적하셨지만 둘째부인으로인한 허영의 삶은 많은 댓가를 지불해야 했고 그결과 큰집 살림에는 크다란 고통을 안겨주었기에 나는 아버지를 늘 원망하면서 공부를 했지만 외교관이 되고 싶은 꿈을 포기 해야만 했다. 그러서 최대의 선택은 간호학을 공부하게되었고 그 결과 캐나다에 젊은 나이에 오게된 동기가 되었는데 그것자체가 되돌아보면 얼마나 축복이었나 생각해본다.
나는 간호학교 입학후 건강에 문제가 와서 3개월동안을 병실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만 했던 그런 시절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힘든공부를 강의실이 아닌 침상에서 따라가야했고 낙제 하지않고 다른 학생들보다 더월등한 성적을 계속할수 있었는지 지난세월을 되돌아본다.
졸업후 제1회 대한민국 국가고시를 치루고 면허증을 취득한후에 WHO (세계보건기구) 가 한국에 폐결핵퇴치을 위해서 왔을때 그일원으로 파이롯 센터인 영등포 보건소에서 일하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수백명이 응모한 이 시험에 도전 한후에 합격장이 날아왔다. 졸업후에 보건간호학을 공부한후라 나에게는 캐나다에서 온 미스 햄 프리여사와 같이 일할수 있다는게 얼마나 기뻣는지...그러나 한국 사회가 바라보는 간호사에대한 부정적인 인식때문에 절대로 이곳에서 살수없다고 판단하고 선진국에 가서 원하는 공부를 하고 내꿈을 펼치고 싶은 희망을 안고 임상을 더 배우기 위해서 중앙의료원으로 옮길것을 마음먹었다. 그래서 또 다시 도전 시험을 치루고 그곳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수하고 외국에 나기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후 1967년 12월 23에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도착했다. 그당시 나의 언니는 토론토 시청에서 보건간호사로형부는 토론토대학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하고 있었기에 나에게는 첫출발에 많은 위로와 도움이 되었다.
푸른 꿈을안고 이곳에 도착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첫직장에서 당면한 대화에서 내 머리가 백지가 되었던 그사건은 내일생에 잊을수없는 충격의 순간으로 각인되어있다. 그래서 영화 30도가 오르내리는 혹한에 버스를타고 오타와로 갔지만 6개월후 오타와 제네랄 병원에서 힘든 사표를 내고 나의 미래를 위해서 온타리오 끝에있는 시골병원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이틀을 완행기차를 타고 온타리오 끝의 인구600명 의 목재도시 마라숀이라는 곳에 도착해서 영어로 원할하게 소통하는 대화를 배우려고 새직장을 찾아서 갔던 일들, 죽도록 공부해서 16시간 공인간호사 시험을 이틀을 치룬후 무난히 합격해서 기뻐했던 일들, 아이들이 태어나서 성장과정에 수없이 안겨준 기쁨의 순간들, 긴세월 하고자 했던 공부에 미친듯이 밤을세워가면서 보낸 시간들은 내삶의 크다란 기쁨의 추억들이다. 또 초창기에 간호협회 회장으로 봉사할때 만든 “진료의 길잡이” 소 책자는 나를 기쁘게 만드는 첫봉사의 산물이고 자랑이다. 또 한인 여성회 “ 우리들의 이야기” 역사책 저자의 한사람인것도 나 자신에게 크다란 보람을 안겨 주는 내삶의 일부이다.
내 삶의 중반에 찾아온 생의 기쁨은 2007년에 자전적 에세이을 출판해서 출판기념식을 할때 수많은 친구, 친지들이 안겨준 그때 가슴벅찬 기쁨과 오랜세월 배움에서 안겨준 자로 잴수없는 나만이 느낄수있었던 행복한 순간들과 자식들이 자라면서 안겨준 수없이 찾아온 성취의 기쁨, 헤아릴수없이 아픔과 기쁨이 교차하면서 살아온 57년이란 이곳생활은 내 삶의 합작품으로 머문다. 그래서 내 하루하루를 살찌게 만드는 요소가되고 있으며 또 내가 쓰는글들의 소제로 등장해주기도 한다. 긴 세월속에 힘차게 달려온 내 지난날들이 이글을 쓰면서 하나의 영상처럼 지나간다.
내이야기를 쓴다는게 한편부끄럽고 나의 출생부터 이야기가 그렇게 쉽지않았지만 글을 통해서 내가 태어남은 부모님과의 만남으로 시작해서 만남의 연속속에 끊임없는 삶의 훈련이었고 아버지와의 긴 아픈관계를 그래도 이곳에 와서 마음으로 용서해 드릴수 있었던것은 어머니의 크나큰 사랑이 있었기에 …
결혼과 함께 감수해야 했던 기나긴 시련의 시간들이 내삶에 함께했기 때문에 나는 여기까지 이렇게 무사히 달려올수 있었던 것이 축복인것을.
2023년 7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