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사랑의 성찬
추수 감사절이 가까워 오는 가을이 되면 나는 딸이 요리할 때 풍겨내는 구수한 빵 냄새, 우리 후각에 낯설지 않은 마늘냄새, 산듯한 야채 요리 냄새가 그리워진다. 어떤 연유였던 그 동기는 잘 모르지만 딸은 요리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학문연구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겨 내곤 했다. 아니면 먼 거리를 뛰고 와서 엄마에게도 자기처럼 그런 심한 운동을 강요하든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나 역시 요리하는 것, 부역에서 오랜 시간 보내는 것을 즐겨했고, 또 그것이 나의 스트레스 해소의 하나였다. 딸이 그런 면에서 엄마가 부역에서 시간을 보내는 만큼 딸의 마음에도 엄마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픈 마음에서 였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신기한 요리들을 가끔씩 만들어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고 또 특별한 날이면 꼭 챙겨서 잊지 않고 우리를 기쁘게 해 주었다.
요즈음 나는 딸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해 가면서 아이들이 어릴 때 즐겨 먹던 음식들을 해서 남편과 함께 옛날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들의 식탁을 채운다. 딸은 여행을 좋아해서 많은 곳을 다녀왔고 또 그 나라 음식들에 대해 흥미가 대단했다. 평생을 살면서 접할 수 없는 음식들을 만들어서 소개도 하고 맛 보게도 해 주었다. 가끔씩 딸은 유태인들이 과월절에 즐겨 먹는 특유한 과자들을 구워서 예쁘게 쟁반에 올려놓고 소개해 주 곤 하였다. 또 밤 늦도록 준비한 치즈 케익은 그 향기로 부 터 집안을 온통 채워 주었고 그 수고의 결과로 나온 케익 맛이란 어느 케익 점에서도 체험할 수 없는 감미로 운 맛, 지금도 행복했던 그 시절을 살며시 떠올려본다.
밤이 깊도록 부억 카운트는 재료와 수없이 쌓인 그릇들을 보는 나는 잔소리를 시작하지만 딸은 자기의 창작물이 나올 때 까지 절대 포기 않고 가져다 주는 결과물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수 없는 딸의 취미와 재주였다. 나는 그런 딸을 보면서 너는 요리사가 되어야 할 사람이 의학을 공부했느냐고 질문하면 딸의 대답은 엄마를 무색하게 만들곤 했다. 왜냐하면 요리하는 것은 철저하게 과학에 기준을 둔 것이라 설명해 준다. 재료와 배합, 요리시간, 온도, 이모들 조건들이 한치의 틀림이 있을 때 그 요리는 바라는 작품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란다. 나는 또 이렇게 딸의 합리적인 강의를 장장 히 듣곤 한다.
모든 배움이 이곳에서 태어난 딸과 우리들의 사고가 다르다는 것을 매일 깨달음으로써 나름데로 그네들의 사고에 내가 적응하며 살아 가려고 노력한다. 딸이 대학원 다닐 때 일이다. 엄마, 아빠의 은혼식을 위해서 자기가 저녁을 만들어서 대접해 주겠다면서 포토 밸리 버섯 스테익과, 샐러드, 와인과 디저트들 손수 요리하나 하나에 온 정성을 다하여 대접을 해준적이 있다. 어느 일등 요리사도 그런 음식을 예술적으로 표현 하기 란 쉽지 않을 텐데 자기가 요리사가 되어서 셰프 복장까지 하고 요리한 음식들을 자신이 서브하면서 우리의 은혼식에 더한 잊지 못할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 어느 식당에서 그런 행복함을 맛볼 수 있었을까?
요즈음 나도 그때를 생각하고 나름데로 부 억에서 아이들과 즐겨먹던 음식들을 만들어 보고 입에 맛을 찾아내어 옛날에 먹던 음식들을 재현해 보지만 그 때 딸이 만들어 준 그 맛은 나오지 않는다. 같은 재료로 만들지만 아마도 딸이 쏟은 엄마와 아빠에게 대한 사랑이란 배합물이 결여 되어서 같은 맛을 낼 수 없다고 생각을 해본다.
나는 딸이 긴 여정의 공부를 위해 집을 떠난 후 남기고 간 수많은 요리 책과, 기구들을 보면서 밤늦게 피어 오르는 구수한 빵이 익어 가는 냄새, 치즈 케익의 달콤하고 향긋한 향기가 오븐에서 새어 나오는 그날이 언제 우리 집에 다시 오게 될 날을 기다리면서 그 때의 추억을 가슴속에 조용히 품고 언젠가 그 옛날의 행복했던 그런 시간이 재현 될수 있기를 또 한번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