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친 사랑의 대접
짙어 가는 가을 날씨에 뉴욕에 있는 아들로 부터 비행기 티켓과 함께 방문초청을 받았다. 일년이 지나도록 보지 못한 아들을 보러 간다는 엄마의 마음은 며칠전부터 설 레이고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만들기 위해 재료 준비, 메뉴 작성을 하면서 어떻게 짧은 시간을 최대한으로 보람 있게 보낼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한시간 동안의 비행 여행을 위해서 하루가 소모가 되었지만 12 시간이란 자동차 여행에 비해 육체적 스트레스와 많은 시간의 운전을 절약한다 생각하니 이 여행이 우선이 되었다.
네번째로 오는 이곳 방문은 많은 곳들이 그렇게 낮 설지 않고 낮 익은 싸인 들과 거리 들이라 한결 편안하게 다가왔다.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일은 나에게 더한 기쁨으로 채워졌다. 하루의 일과의 계획이 이런저런 나의 선택으로 이루워 질 때 오는 자유로움, 진정한 내면의 평화를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다.
아들이 직장을 나간 후에 나는 허드슨 강가를 거닐기 위해서 아파트를 나왔다. 가을 일기라 몹시도 청명한 높은 하늘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허드슨 강주변은 인파로 메워 있었고 배를 타고 뉴욕시내 구경을 할 사람들이 연인, 가족들과 함께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갑판에 가서 아들이 일을 한다는 도시를 바라보면서 뉴욕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면서 몇 해전 딸을 보러 왔을 때 남편과 함께 그곳에 와서 제2 차 대전 때 싸우고 돌아온 전함을 구경하던 그날이 떠 올랐다. 하늘에는 실세 없이 헬리콥터 관광객들이 날고 있었고 크고 작은 배 들에는 세계에서 뉴욕을 보러 온 구경꾼들로 가득히 채워 강을 메우고 있었다.
강바람을 쐬려 나온 나는 마음을 바꾸고 투인 타워가 있었던 그라운드 제로를 향해 산보객들을 따라서 함께 걷기로 마음 먹었다. 뉴욕시내의 번잡함을 떠나 강을 따라서 일구 워 놓은 온갖 색채의 아름다운 꽃들과 친구 하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곳의 한적한 외길의 아름다움을 나만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왠지 집에 혼자 있는 남편이 지금 이곳에 함께 걸을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나를 순간적으로 남편 곁으로 옮겨다 놓았다. 남편은 마누라가 정성껏 만들어 놓고 온 음식을 혼자서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잠깐 생각을 멈추었다. 지금 뉴욕은 40 년 전 우리가 신혼여행을 왔을 때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고 새로운 도시로 발전해 있었기에 나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맑은 하늘, 시원한 바람, 비행기 소리, 파도소리 이모두가 그래도 이곳이 낮 설지 않게 나를 반기는 존재로 다가왔다. 어느 듯 나는 무너져 사라져 버린 옛 쌍둥이 건물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8시 45분, 테러들의 비행기가 건물속으로 날라 들어가던 그 순간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나도 모르게 비명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 , 세상 사람들이 통곡하든 그날 나는 그 광경을 직장에서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었으니 지금도 그 기억이 현실처럼 내 앞에 재현되고 있음을 보면서 공사장 다리 앞까지 와 있었다.
이공사가 끝날 때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까?.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달랠 수 있는 기념관의 장소로 변모될 수 있을까? 불에 타고 남은 잔재의 건물조각들을 모아서 건물이 완성될 때 전시관으로 만들어서 영원토록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후세에 알리고 기념식을 할 것이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무표정으로 자기들의 현실속에 사로 잡혀서 종종 걸음으로 내 앞을 지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런저런 깊은 상념속에 한참을 보내다가 문득 아들이 올 시간이 가까워 옴을 깨닫고 석양의 지는 햇볕을 안고 종 종 걸음으로 서둘러 아파트를 향해 돌아왔다. 저녁에 만들 메뉴, 각종나물, 잡채,불고기 부침 등을 생각하면서 어떤 것을 아들이 더 좋아 할 것인지, 그것에 내 마음은 온통 행복감으로 뉴욕의 하루 해를 보내고 돌아왔다. 한편 그라운드 제로 을 방문하는 것도 그날 그 사건을 지켜본 나에게 엄청난 의미를 가져다 주니까 그것 만으로도 나의 산보는 잊지 못할 시간으로 기억될 귀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