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들에게 전하고 싶은 우리시대의 아픔

어려웠던 조국을 생각하면서

by 백경자 Gemma

얼마전 친구를 만나서 대화 중에 「국제시장」을 보셨나요? 하면서 우리는 "그 영화를 보러 갔다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울다가 나왔어요”라고 일러준다. 그리고 하는 말이 “꼭 가서 보셔야 해요”라고 우리에게 의무가 있는 듯 들려 주었다.


오래전 이야기다. 이곳에 몇 차례의 한국영화가 상영되었지만 매번 실패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그리도 겨울」이라는 영화가 이곳 영화관에서 상영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그래도 조국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많은 호기심을 갖고 영화를 보러 갔었다. 그때 극장에 들어갔을 때 온 관람객은 고작 6명에 달한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랐다. 작가는 사계절을 인간의 성장에 비교해서 이끌어 나갔는데, 나는 그때 나름대로 깊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 영화인데도 안타깝게 이곳 백인들에게는 전혀 관심밖의 동양인의 단순한 영화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너무나 허전하고 쓸쓸한 느낌을 받고 집에 돌아온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옛 추억으로 남는다. 그 다음에 들어온 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였고, 남편의 권유로 2004년 11월에 보러

가다가 젊은 아이들이 붉은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와서 우리들의 목숨을 앗아갈 뻔 했던 대형사고를 만나서, 기적적으로 우리 신상에 상처없이 살아났지만 우리의 사랑받던 캐딜락은 견인차에 끌려 폐차장으로, 나는 오랜 세월동안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런 세월이 지난 얼마 후에 다운타운에서 국제영화제 축제가 있었고, 또 그곳에 한국영화도 초청받아 선보이는 기회가 왔다 하여 구경을 간 적이 있다. 그때 참석자들의 대부분이 젊은 층으로 극장을 가득히 메운 것을 보고, 시대의 변화를 느끼고 돌아왔던 기억도 새롭다.


그런 후, 작년에 명량(이순신 장군 이야기) 이 이곳에서 상영되었을 때, 미디어를 통해서 엄청난 흥행소식을 접하고 극장을 찾았을 때, 뜻밖에도 표가 매진이 되어 참으로 가슴이 뿌듯함을 느꼈다. 그때 표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으니 이렇게 세월이 변해서 조국의 영화가 이곳에서 매진되는 시대를 보니, 참으로 기쁜 마음 한량 없었다. 한류시대가 이곳에도 온 것이다.허나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많은 허전함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영화의 내용이 소문에 비해 너무나 빈 풍선을 터뜨린 것처럼 그런 느낌을 안고 극장을 나왔다. 그런데도 군중 심리로 매진이 되고 만나는 사람들은 이야기가 그것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인간의 심리, 군중심리란 그렇게 묘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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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국제시장은 우리가 봐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마음을 움직여서 파킹장이 편한 북쪽에 위치한 극장을 선택해서 갔는데 이게 웬일이야. 파킹장이 없어서 한참을 헤매고 극장 안을 들어섰을 때, 또 만나는 긴 줄의 한국인들. 요즈음 나는 우리 민족이 대단한 군중 심리의 영향을 받는 민족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 시간들이다.


극장 안은 사람들로 빼곡히 차 있어서 우리 부부가 앉을 자리가 보이질 않아 또 빈 좌석을 채우면서 구경을 해야 했다. 기다리는 시간없이 바로 영화가 상영이 되면서 나오는 두 늙은 노부부가 부두가 의자에 앉아서 부산 국제시장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영화는 시작되는데 마지막도 그렇게 끝나는 영화다. 감독이 상당히 방대한 내용을 2시간이란 제한된 시간에 다 담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다보니 좀 이해가 어려운 사람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나왔다.


노부부가 국제시장을 걸어가는데 폭발음이 나면서 주인공 덕수가 그 옛날 시절로 돌아가면서 시작되는데 노인이 된 덕수의 모습에서 영화가 말해줄 스토리를 보는 듯했다. 1·4후퇴 때, 흥남부두에 몰려온 수 십만의 인파, 자신들이 가진 것을 이고 지고 목숨을 내걸고 살겠다는 그 한 가지의 집녑으

로 아비규환 阿鼻叫喚의 모습, 무기를 나르는 배가 인간의 목숨을귀히 여겨서 인간 운반배로 변하면서 일어나는 처절한 장면, 거기에서 주인공 덕수(10살?)는 아버지가 딸을 찾아 다니다가 생이

별을 하고 가장이 되어서 살아가야 하는 그 불확실한 미지의 삶,아마도 그런 순간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눈물로 이어지도록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안전한 곳이 국제시장이란 미지의 곳으로 가야 하는 가족들, 그곳에

서의 매일같이 힘겨운 삶, 피할 수 없는 젊은 대학 졸업자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선택한 파독 광원(9천명 ?) 간호사( 1 만명? )로 조국의 발전을 위해서 떠나야 하는 젊은 남녀들, 월남 파병과 인력수출, 그리고 이산가족이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방대한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로 담으려고 한 작가, 제작진들의 노고를 보는 듯했다. 그래서 깊은 내용보다 감성 쪽으로 더 치우친 것은 아닌지…. 하여간에 관객자들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는 것은 성공한 영화라 말하고 싶다.


이야기가 만들어진 무대가 국제시장, 그래서 모두가 경상도 사투리라 표현이 조금 어색할지 몰라도 그것이 나에게는 더 구수하게 들려왔다. 또 그 시대가 6·25전쟁을 치룬 후라 너무나 가난했고, 삶이 척박했기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여유있는 그런 모습을 영화에서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그 시대를 반영하는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무리가 될 것 같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이 영화를 통해서 어떻게 조국이 지금 여기까지 왔는지를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만약 우리 시대가 그때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조국이 G20 강대국 대열에서 세계의 1등 가는 주인공으로 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나는 독일대신 캐나다로 와서 수 십년 동안 조국 부모님, 친척들에게 많은 외화를 송금했다. 이렇게 우리는 조국의 산업 발전을 위해 작으나마 외국에서 오랜 세월 조국을 잊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해 본다. 아마도 그래서 이 영화가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눈물없이 볼 수 없었던 이유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45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의 눈물을 평생동안 두 번 보았지만 이 영화에서 남편이 눈물 흘리는 것을 보고 아들에게 지난 주에 이메일을 보냈다. 내용인 즉 우리가 보고 온 이영화가 아빠와 엄마의 눈물을 많이 빼앗아갔다고, 그러니 한번 기회봐서 가 보라고 하였더니 아들에게서 긍정적인 회답이 왔다.


아빠나 엄마가 그런 이야기를 영어로 어떻게 자식들에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그런 역활을 충분히 해낸 내용의 실화이다. 바로 우리 시대의 이야기며, 삶이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대신 들려주는 아픔이기에…. 마지막에 덕수가 아버지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아직도 내 가슴에 메아리쳐 온다.

“아버지 제가 예, 가장 노릇 잘했지 예, 저 고생 많이 했어 예.” 라고 말하는 어린 덕수가 할아버지가 되어서 아버지의 유언을 다 잘 지켰다고 고백하면서 그려낸 한 폭의 우리들의 삶을 그린 인생

이야기를 읽는 듯 했다.


201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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