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만에 날아온 어느 가을날의 편지

잊어버린 세월을 담은 사랑의 편지

by 백경자 Gemma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고 귀뚜라미 소리를 처마끝에서 듣는 저녁, 가을이 성큼 다가옴을 알릴 때 나에게는 외로움과 캐나다의 긴 겨울이 가까이 옴을 알리는 계절이다. 숨막히게 내려 쬐던 뜨거운 열기운도 서서히 물러가고 가을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준비해 온 앞뜰의 국화 꽃나무는 꽃 몽우리를 맺기 시작했다. 마지막의 생을 꽃으로 장식하는 이 국화는 가을이 다가옴을 제일 먼저 전해준다.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가을은 인생의 성숙기와도 같은 계절이기에 자신을 돌아보는 시기이기도 하다. 가을이 오면 어디론 가 연인과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싶은 계절이기도 하다 . 내가 결혼을 했던 시기도 가을이었다. 멀어져 가는 햇살과 푸른 하늘, 가볍게 부는 가을 바람, 오색가지 색깔로 갈아입은 나뭇잎들은 철부지 신부가 하얀 신부복을 입고 내 아버지 대신 어떤 분의 손을 잡고 토론토에 있는 한 성당에 들어가던 나를 무한히 축하 해 주었다. 1969년 10월에…


아이들이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을 가면서 하나, 둘 서서히 집을 떠나가고 부모들이 빈 둥지를 맞이하는 시기도 가을이다. 집을 떠나 자기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아이들, 반면에 부모들은 외로움을 맞이하는 첫번째 시련이기도 하다. 가을은 누구에게 든 나누고 베푸는 사랑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농부들의 땀의 결실로 얻어지는 오곡의 추수 감사절이 있기에 더 감사하는 계절이다.


생물들은 겨울을 맞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서 피워온 잎과 꽃들을 모두 내려놓는 작업에 들어가는 시기이기에 나의 마음은 어 느듯 시간의 흐름에 공허함을 느끼곤 한다. 오래전 이야기다.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 나는 어머님과 위험한 약속을 했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밤을 지새며 잊혀 가는 조국어로 일년동안 매달 한국에 계신 어머님과 약속한 사랑의 편지를 써야 하는 스트레스는 나의 삶의 원동력이 되었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그때가 그리워 온다. 다시 올 수 없는 그런 시기가 주워 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old_writers_desk.png


지금 우리는 디지털이란 새로운 정보시대에 들어와서 이제 펜을 들고 손으로 쓰는 글은 서서히 사라져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히려 카드를 쓰고 편지를 쓴다는 것이 옛 시대에 사는 것 처 럼 되어가는 이 시대. 그래서 우리 세대는 컴맹이란 이름까지 하나 더 얻게 되는 바보가 되어가는 이현실을 매일 경험해야 하는 지금, 펜으로 나자신의 생각을 종이위에 쓴다는 것은 점점 나와 멀어져 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 현대판 정보 디지털의 노예가 되어서 삶에 인내도 줄어들고 이것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면 정말 직장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시대가 도래했다 . 앞으로 어떤 시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만 해도 불안해 진다. 보내오는 이메일이나 전지 문자에서 이 시대가 어떻게 이 첨단의 기계로 인해서 인간의 대화가 단절 되어가는 가족의 모습, 부부 간의 대화 까지 기계 사용으로 이어지는 일상, 인간 관계에서 끊어져가는 접촉이 가져오는 소외감, 방문객이 방문하는 집의 초인종 대신 바깥에서 전화로 신호를 보내주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정성을 드려서 손수 써서 보내오는 카드가 내 마음에 더 많은 감동을 안겨준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상대를 위해서 내가 그만큼 시간과 애정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12월이 오면 수십장의 성탄 카드들을 손으로 써서 내가 사랑하는 지인들에게 수십년 보내왔다. 나는 카드를 쓰는 동안 삶에서 베푼 그들의 사랑에 대한 고마움에 감사 하면서 일년에 한번이라도 내 마음을 예쁜 카드에 전하면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한국에 있는 고종 사촌 여동생으로 부터 헤어진지 55년 만에 뜻밖에 편지가 날아왔다. 오랜 세월 수소문하여 내 주소를 알아 내어 정성 어린 사랑의 편지를 손수 써서 보내왔다. 첫 대목이 “보고 싶고 사랑하는 언니” 라 시작 했다. 이 편지는 며칠동안 내 가슴을 저려 오도록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 동생은 어린 시절에 나를 무척 좋아해서 맛있는 음식을 엄마 몰래 싸 가지고 와서 소풍 가는 날 내 가방에 몰래 넣어 주곤 하던 동생이다. 학교가 끝나면 우리는 산에 올라가서 꽃잎도 따먹고 더운 여름철에는 개울에 가서 멱도 감고 물장난도 하던 어린시절을 나에게 속삭여 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동생의 안부가 내 마음을 옛날 그 시절로 되돌려 놓았다. 나는 이런 사랑이 깃든 편지를 쓰고 싶고 받고 싶다. 가을이 오면 왠지 나도 모르게 먼 거리에 있는 사랑하는 내 친구들에게 안부나 글을 쓰고 싶어 진다. 고차원의 디지털 시대가 온세상을 지배 한다 해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펜으로 편지를 쓰고 짙어 가는 가을에 커피 한잔을 만들어 놓고 만날 수 없는 지인들에게 내 삶을 나누고 싶다. 온 세상이 이 기계에 노예가 된다 하더라도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편지를 쓰고 싶은 계절이다.


2011-09-14

keyword
작가의 이전글후세들에게 전하고 싶은 우리시대의 아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