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마 선생님, 잘 견뎌 냈어요

저항의 세계가 가르쳐 준 귀한 인생의 지혜

by 백경자 Gemma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나는 혼신을 다해서 일하던 병원들을 등지고 내 노후를 생각하면서 가톨릭 계통의 만성환자 병원으로 옮겼다. 떠나온 병원들과 이곳의 병원 운영은 너무나 다른 것이 많았다. 매일같이 뛰고 달라지는 대학병원들의 환자 간호와 죽음을 바라보고, 또는 불치병 때문에 인생을 마치려는 느린 템포의 간호임무는 새로운 많은 지식을 요구했다.


이곳에 환자들은 병이 치유되어서 퇴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삶을 간호사가 하루하루 먹여주고, 씻겨주고, 필요한 간호를 해 줌으로써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돌봐 주는 그런 직무였다. 그런데 나는 노인병에 대한 간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로 돌아가 노인들을 간호하는 노인학 공부( Gerontology, Studying of Aging)를 하게 되었다. 노인이 되면서 일어나는 스많은 일들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딸에게 어머니께서 늘 들려주신 “너도 늙어 봐라”라는 말씀이 새롭게 되살아 왔다.


소싯적에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신 것처럼 , 우리 아이들이 같은 일을 할 때 나는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나도 그 나이에 저들처럼 행동을 했으니 말이다. 일에 미친 사람처럼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빠른 속도로 내게 맡겨진 환자를 돌보는 일 밖에 염두에 두지 않고 그렇게 달려왔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내용인 즉, 이병원에 두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한국간호사가 필요한데 내가 그 적임자라고 했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누구로부터 추천을 받고 전화를 했을까? 꿈같은 일이 일어난 셈이다.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이 꿈을 기다려 왔든가?


밤낮없이 바뀌는 삼 교대,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연속된 스트레스 속에서 오랜 나의 기도가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을 한 후 나는 조건 없이 옮길 것을 약속했다. 3회에 걸친 인터뷰, 현재보다 적은 임금 등은 나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의 신체적 제한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이상적인 직업이 찾아온 나에게는 금상첨화의 기회였다. 독창적인 일, 누구의 간섭도 없이 스스로 배우고 창조해 가면서 내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직책이었다.


새로운 환경으로 옮겨갈 것을 생각하니 며칠 동안 벅찬 가슴을 억제하기도 힘들었다. 긴 세월 동안 기다려오던 꿈같은 일이었기에… 나는 새로운 얼굴들의 만남을 위해서 뛰는 가슴을 안고 출근했다. 그런데 첫날 만난 얼굴 들에서 풍겨오는 느낌, 미묘한 감정과 그 시선들은 뭔가 나를 힘들게 할 것 같은 느낌을 안겨다 주었다. 나는 외래 간호(Out patient Clinic)라는 또 다른 세계에 들어온 셈이었다. 아침 8시로 시작하여 퇴근시간이 오후 4시다. 일반 공무원들의 시간처럼 나도 처음 맞는 스케줄 속에 새로운 간호를 배워서 독창적인 일을 해야 하는데 나에게는 많은 것이 생소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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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월간이 내가 그들에게 인정을 받도록 해야 하는 수습기간( Probation Period)이었다. 이곳에서 행해지는 많은 분야의 색다른 간호를 배워야 하는데 동료들은 그들의 지식을 나에게 알게 해 주는 과정에서 지식을 나누는데 너무나 인색하게 과시를 피우고 저항을 보였다. 마치 내가 그들의 전문지식을 도둑질이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매일 배워야 하는 크리 닉은 힘든 반면 나에게는 그지없는 도전이었고 꿈같은 일들이었다.


한국환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를 번역하는 일과 교육하는 재료를 만드는 일은 밤과 낮이 모자랄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내 정열을 앗아갔다. 그래도 나는 기쁨으로 일했고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그 시간들을 둘러싸고 있는 내 주위는 너무나도 나의 세계와 동떨어져 있었다. 새로운 한국 크리닉을 만드는데 필요한 교육재료, 밀려오는 환자들, 시간이 갈수록 일터의 환경은 나를 힘들게만 만들어 갔다. 나는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혼자 일속에 버려진 사람처럼 그런 견디기 힘든 시간으로 흘러갔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서 혼자 항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시간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의 파도가 몰아치면 타고 있는 배는 그 힘을 감당할 수 없어 물속으로 삼켜버릴 것 만같은 하루하루… 오래전 일하던 병원은 그 힘든 일속에서도 동료들의 따뜻함 때문에 십 년이란 긴 세월을 즐겁게 일할 수 있었는데 …이런 좋은 환경 속에서 서로 화목하게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갔다. 그 외로움의 스트레스, 긴 굴속을 혼자 몸부림치면서 빛을 찾아 나가야 하는 내면의 아픔, 나는 이 세월 속에서 나를 포함해서 인간들의 속성과 잔인함을 또 한 번 경험했다. 내가 그토록 품어왔던 아름다운 세계는 그렇게 서서히 무너져 갔다. 마음을 열고 동격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한 동료를 만나지 못한 직장, 그런데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는 현실, 이것이 내가 장기간 걸어야 했던 외로운 시간들이었다.


함께 일하던 의사는 “ 젬마 선생님, 잘 견뎌 냈어요”라고 5 년이 지난 뒤에야 일러주었다.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수년간 고난을 감내해야 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이다. 결혼을 했던, 독신으로 살아가던, 우리 모두는 각자의 몫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아플 때에 위로하고 기쁠 때에 서로 기뻐하고 작은 것도 나누며 살아갈 때 상처받은 마음은 치유되고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그런데 이곳은 그런 분위기가 사라진 지 오랜 듯했다. 이 조직체의 잘못된 점을 알면서도 그 누 구하나 용기를 가지고 고치려 들지 않는 최고의 지성인들이 일하는 이곳, 모든 일에 상대방의 인격을 의식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일터에서 어떻게 그토록 오랜 세월을 버티고 왔는지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나 자신과의 싸움, 내가 매일같이 당면한 이 굴레의 일터에서 대응하는 동안 쌓이고 쌓인 내면의 고독을 통해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많은 지혜를 터득했기에…


201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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