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스승 앤의 사랑의 힘과 인내가 가져온 기적

by 백경자 Gemma

오늘 문우들과 함께 쓴 글들을 나누어 읽고 난 후 다음 소재를 ‘기다림’으로 정했다. 집에 오는 길에 무엇을 써 야하나 곰곰이 생각하던 중, 헬렌 켈러의 스토리가 머리에 스쳐 갔다. 영화, 책으로 만난 그녀와 그녀의 스승 앤 설리 반, 감동 깊게 읽고 보았던 생각에 뭉클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만 기억하지만 그녀를 만들어 낸 스승인 앤 설리 반은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만약 그 스승이 없었더라면 이 세상에 헬렌 켈러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어떤 이유로 헬렌이 아주 어린 시절에 시력을 잃게 되면서 닥치는 어려움은 부모에게 엄청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갑자기 세상을 볼 수 없게 된 헬렌은 억제할 수 없는 분노로 나타내는 그 파괴적인 행동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부유하고 지위도 갖추고 부러울 것이 없는 부모들이지만 그 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대해서 고심 끝에 그 계통의 전문인을 통해서 딸을 사사할 선생을 찾는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앤 설리 반이란 젊은 여인이었다. 헬렌은 처음부터 스승으로 온 앤 설리 반에게 한 치의 양보도 보여주지 않는다.


스승으로서 앤은 아무도 다룰 수 없는 이 어린 헬렌에게 집요하게도 자신만이 구상한 과격한 훈련을 요구한다. 매일같이 딸에게 행해지는 이 힘든 교육은 부모에게도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앤이 딸에게 가르치는 교육이 할 수 있는 것과 절대로 허락할 수 없는 것을 분별시키는 일이 계속될 때 두 사람 누구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시간들로 이어지고 끝내 앤은 자기가 가진 상상력과 용기가 지금 헬렌에게 꼭 필요한 조건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지속적인 정신과 육체적 단련을 통해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들을 헬렌에게 강조함으로써 그녀는 선택의 여지없이 스스로 스승의 지시에 굴복하게 하고 말을 새로 배우는 과정에서 모든 배움은 체득을 통해서 깨닫게 해 준다. 우물가에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주면서 “워터 (물)” 라 고 헬렌의 손바닥에 단어를 써서 가르쳐 주고 물을 헬렌의 입에 맛보게 해 준다. 이렇게 모든 가르침은 행동과 감각을 통해서 스스로 깨닫게 함으로써 시작이 된다. 이런 경험을 통해 헬렌은 기쁨을 맛보며 뭔가 깨달으면서 그때부터 난폭한 행동이 서서히 줄어들고 스승에게 신뢰를 갖고 고분고분 따르게 되고 배우려는 마음을 나타낸다.


기나긴 세월 동안 쏟은 숨겨진 사랑과 인내, 그리고 앤이 가진 용기는 사람의 근육과 같이 헬렌의 훈련이 아무 저항 없이 적응되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될 때 스승 앤의 가슴이 저려 온다.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심정, 딸이 스승에게 굴복하고 스승( 앤)의 계획에 적응하면서 결국은 본래의 헬렌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적을 맛보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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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의 폭력적인 행위, 터무니없는 고집과 매 순간 싸워야 하는 스승의 끈질긴 인내와 결심, 이 두 축이 맞서는 시간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헬렌이 공부할 때 힘들었던 세월, 빠지지 않고 곁에서 모든 과목을 감각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맹인으로서 처음 탄생시킨 대학 졸업자, 보통 사람 같으면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을 자초하겠는가? 포기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스승 앤은 헬렌에 대해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 있었다. 한때 자신도 볼수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


헬렌의 기적 같은 이야기가 미국 전역에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스승과 함께 두루 다니면서 맹인도 정상인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세상에 알리고, 맹인을 위한 감각언어( Braille)가 있다는 것을 널리 전파시키는 일에 자기의 일생을 쏟았기에 세상사람들은 헬렌 킬러만 알고 있다.


그토록 스승의 오랜 기다림 때문에 헬렌이란 여성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빛을 잃고 세상에서 격리된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을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맹인에 대한 편견을 바꾸어 놓은 이 스승! 부모가 아니라 스승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던 헬렌의 또 하나의 인생을 출발시킨 은인이 되었다.


나도 45년 전 조국을 떠나올 때 커다란 희망이 있었다. 그 꿈은 지금도 나에게 기다림으로 남아있다. 내 안에 존재해 온 그 힘 내가 걸어온 길의 등불이 되어 주었고, 만약 내게 헬렌처럼 새로 태어나고자 했던 열망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사람의 마음도 훈련 속에서 다듬어지고 몸의 근육도 써야 튼튼해지고 건 강해 진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닫고 있다.


우리들의 의식 속에 갈망하는 어떤 동기가 없다면 그것 처럼 불행한 것은 없으리라. 정녕,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무엇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행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전쟁을 통해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꿈을 흑인들에게 실현해 주었고 나라를 하나로 뭉쳐 놓은 유일한 대통령이다. 이 전쟁에서 육십오만 명이란 생명이 (4 년동안) 희생되었지만 그 전쟁은 길이길이 미국역사에 기록되고 링컨 대통령은 역사에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만약 그가 전쟁을 승리로 끝내지 못하였더라면 영원 토록 그의 이름 앞에는 용서할 수 없는 또 다른 이름이 주어졌을 것이다. 다행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는데 이 전쟁이 그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기에 후세에 영원 토록 세계인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되어 살이 움직이고 있다. 헬렌 켈러를 향한 스승의 엄청난 노력과 인내와 기다림이 없었더라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보고, 듣고, 말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 없이 태어난 사람들은 지금쯤 어떤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숨겨진 스승, 앤 설리 반, 상상을 초월한 헬렌에 대한 꿈과 일생을 바친 엄청난 희생 앞에 그저 고개 숙여질 뿐이다.


2012-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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