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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에서는 이제 회사생활 안하고 내 꺼 하겠다고 해놓고 다시 취업을 했다. 세번째 회사를 그렇게 그만두고 개인사업자까지 내면서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비수기에 버틸 힘이 없었다.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내 일에 비수기라는게 있는지도 몰랐다.
몇달동안 고민하다가, 일단 회사에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회사일 열심히 안하고, '내 일'도 반드시 병행하겠다고 다짐했다. 회사 일과 내 일을 같이 하다가, 내 일만 할 준비가 다 되면 회사를 그만두고 내꺼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유튜버들이 '무작정 회사 그만두지 마세요' 라고도 말하니까,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다시 구직활동을 했다.
네번째 회사를 정하는 기준은 꽤 단순했다. 내가 팀장을 할 수 있거나,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회사일 것. 그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조직 인사관리 권한이 있는 팀장 역할을 내가 할 수 있거나, 아예 재택근무만 하면서 동료들과 물리적으로 멀어질 수 있는 방법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몇군데의 회사에 최종 합격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면접 경험이 모두 좋지는 않았다. 우리가 다 알만한 어느 회사에서는 면접 중에도 갑질을 해댔다. 그래도 그 면접은 팀장을 뽑는 자리여서 그랬는지 대표가 직접 나왔는데, 난 그게 정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살면서 그렇게 큰 회사의 대표님과 직접 대화할 기회는 별로 없었으므로. 그래서 이 회사에는 합격하더라도 입사하지 않을 작정으로 정말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사실은 제가 회사를 오래 못 다니는 것이 고민입니다. 이 회사에는 가능하면 오래 다니고 싶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을지 대표님의 의견이 듣고 싶습니다.'
대답이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원래 IT 업계라는 것이 불안정하다. 당신이 제조업에서 일하거나 원양어선에서 일했으면 짤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쪽 산업은 안정적이고 변화가 크지 않아서 그렇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IT 업계다. 변화가 많은만큼 잘될 기회도 많지만 잘못될 기회도 많다. 그건 감안하는게 좋다.'. 이 말이 내 멘탈 회복에 큰 도움이 됐다. 애초에 나는 변동성이 큰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지. 성장이라는 이점만 취하려 했고, 실패라는 반대급부는 무시하고 있었던 거다. 베네핏이 크면 리스크도 큰 건데, 왜 이런 단순한 법칙을 일터에 적용하지 못했을까.
인생의 교훈을 깨닫고 선택한 곳은 재택근무만 하는 작은 회사에서의 사원 역할이었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입사했다. '어차피 재택근무 하니까, 시간나면 내꺼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큰 오산이었다. 출퇴근할 시간이 모자랄 만큼 일이 많기 때문에 재택근무만 하는 거였다. 그리고 나도 스스로를 과소평가했다. 회사라는 곳에 들어오니, 인정받고 싶어서 무리했다. 입사할 때 '내꺼 해야지' 라는 다짐은 점점 옅어졌다.
이번 회사에는 다행히 팀장님이 계셨다. 팀장님은 대표님과 20년지기 동료였다. 우리 기획팀은 팀장님과 나, 2인 체제였다. 난 돌아보면 '왜 그랬지?' 싶을 정도로 무리해서 일했다. 회사 대표로 출장을 나가야 하면 늘 내가 외근을 갔다. 파트너사와 클라이언트를 만나서 우리 회사를 대표로 현재 개발중인 서비스를 설명하고 그들을 돕는 일이 재미있었다. 파트너 회사 사람들, 클라이언트 회사 사람들,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용자들, 박람회에서 만난 잠재 사용자들까지.. 내가 일하며 1년동안 만난 사람들은 최소 300명이 넘는다. 서울, 대구, 제주도 까지 전국 출장도 갔다. 다시 말하지만 난 영업사원이 아니라 서비스 기획자다.
재택근무를 하니 출퇴근 시간을 아꼈다고 생각하면서 매일 초과근무를 했고, 60시간 넘게 밤을 샌 날도 있었다. 당연히 추가근무수당이나 야간수당은 없었다. 식사 시간 없이 대기시키는 날도 많았기 때문에 한 달 동안 8kg가 빠지기도 했다. 지금은 남편이 된 당시의 애인이 날 많이 걱정했다.
한 번은 팀장님이 내가 외근을 나갔던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친구는, 팀장이 해야 할 일을 내가 대신해 준 건데 그걸 기억도 못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화를 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팀장님이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설령 그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답답한 순간 중 하나는, 권한은 없는데 책임만 져야 하는 상황이다. 나는 그걸 직접 겪었다. 우리 업무 방식은 파트너사에서 개발한 코드를 가져와, 기획에 맞게 수정하는 구조였다. 형식상 내가 기획 담당자였기 때문에 모든 작업은 내가 세부적인 방향을 정해야 했지만, 작은 회사에서의 기획자는 결국 손의 역할이다. 실질적인 방향은 대표의 입맛대로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자체에 큰 불만은 없었다.
문제는 별다른 인사이트도 없이 계속 이래라저래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지쳐서 “대표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진행하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정작 그는 책임은 나에게 넘기면서도 계속 보고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기준을 하나 정했다. 메인 화면처럼 눈에 띄는 부분이 아니면 그대로 두고 진행하기로.
파트너사는 기획자가 20명이 넘는다는데, 우리는 고작 두 명이었다. 아무리 숙련된 사람이라도 감당하기 벅찰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럼에도 우선순위를 나누고, 중요한 것부터 처리하면서 검수할 건 최대한 검수했다. 그런데 마감이 다가오자, 대표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견됐다며 전 직원이 있는 자리에서 나를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내가 프로젝트를 망칠 뻔했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 기준을 정한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메인 화면 아니면 건드리지 말라고 했던 것도, 알아서 하라고 했던 것도 결국 그쪽이었다. 솔직히 말했다. 그 자리에서 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그런 모습을 보이는 대표와 팀장 모두에게 한 번씩 실망했고, 결국 나는 할 말은 하는 싸가지 없는 MZ 직원으로 낙인찍혔다.
열심히 일했지만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쌓이면서 점점 지쳐갔다. 처음 연봉 계약을 할 때는 별도로 스톡옵션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1년을 꽉 채워 일하는 동안 관련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물어봤더니, 그런 말을 한 적 없다는 식으로 넘어갔고 내부 기준에 따라 일부 인정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답이 돌아왔다. 주말도 없이 1년을 일했지만, 그만큼 연봉이 오르지도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마음이 틀어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주도적으로 일하고 싶지 않아졌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도 점점 나빠졌다. 업무를 진행하고 있으면 중간에 끼어들어 보고를 요구하고 업무방향을 바꾸는 여성분이 계셨는데, 정작 내 상사도 아닌 사람이었다. 왜 별다른 역할이나 전문성이 없어 보이는데도 그 회사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업무를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이었고, 그럼에도 회사 내에서는 영향력이 큰 데다 정치적인 움직임까지 더해졌다. 팀장님에게 하소연해도 나더러 참으라 하고, 외근 나가서 지켜본 여러 정황상 그녀는 대표와 불륜 관계인지 의심될 정도였다. 스트레스가 쌓여 갔다.
재택근무라는 방식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사람 때문에 힘들어서 재택근무를 바랐던 건데, 막상 해보니 오히려 다른 종류의 피로가 생겼다. 마치 사람과 대화하는 방식을 잊어버린 것 같은 사람들이 모인 느낌이었다. 모니터 너머에도 사람이 있다는 걸 잊은 듯, 모욕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마이크를 잡으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 이야기만 이어갔다. 일하는 티를 내기 위한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이 주도하는)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회의도 지나치게 많았다. 하루에 두 개 이상의 화상회의를 동시에 들어가야 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회사생활은 ‘을’의 입장에서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수 없다는 사실은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처음 정했던 기준인 '재택근무를 한다' 라는 기준과, 오르진 않지만 처음 합의했던 '연봉' 은 변하지 않으니 그것에 만족하면서 조용히 회사 생활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또래에 비하면, 일반적인 기획자의 연봉 인식에 비하면 꽤 높은 급여를 받고 있는 덕분이었다.
재택근무 위주의 환경에, 나를 제외한 대부분 직원들의 나이는 나보다 15살 이상 많았다. 그래서 회사 생활에 대한 좋고 싫은 감정을 동료들과 편하게 나누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경력이 많은 사람들과 일하는 점은 분명 장점이었다. (그 한 사람만 제외하면) 업무는 전반적으로 시원시원하게 진행됐고, 처음 겪는 상황에서도 그들에게 의지하며 헤쳐나갈 수 있어 한편으로는 편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켠으로는 '내 것을 해야 하는데' 라는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아직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과거의 나와 한 약속을 어기는 마음이 들었다. 이쯤 했으면 그만두고 내 것을 키워도 되는데,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너무 편했다.
국가사업을 위해 회사 인원의 절반 이상을 새로 채용했지만, 결국 이 사업은 엎어졌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더 이상 이 사업에 큰 비용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회사는 이미 여기에 전력을 쏟고 있었다. 입사 전부터 뚜렷한 비즈니스 모델이 없는 회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 상황을 직접 겪고 나니 왜 개발 에이전시에게 안정적인 수익 파이프라인이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됐다.
회사는 비용을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권고사직 대상자를 선정했다. 스무 명 중 두 명이 첫 대상자로 지목됐고, 그중 하나가 나였다. 내가 개겨서였을까? 내가 비싸서였을까? 그 소식을 팀장에게 들은 날은 충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더 이상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책임지지도 못하고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리더 아래에서, 새끼들이 굶어가는데 밖에 나가서 사냥하지도 않고 오히려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가장 밑에서 계속 버티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이미 쌓여 있었다.
돌이켜보면, 직접 일을 해본 경험도 있고 이 회사에서 영업까지 배웠다. 혼자서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번도 아니고 세 번째 권고사직이다. 첫 회사를 제외한 모든 회사에서 나더러 꺼지라는데, 이제는 내가 혼자 해보는 게 맞겠다고 받아들였다. 어쩌면 그때는 버티기보다는 밀어붙이는 쪽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왜 나만 이런 일을 겪는지 이해하려고 했다. 왜 나는 회사를 오래 못 다닐까, 남들은 다 잘만 다니는데 난 뭐가 문제인걸까. 난 왜 이렇게 생각이 많은 걸까.
이제는 굳이 이유를 따지지 않기로 했다. 이 업계는 원래 그렇고, 회사는 언제든 나를 내보낼 수 있고, 평생 직장은 없다. 직장인은 몇 살이 됐든 언젠가 퇴직을 하고, 난 그게 지금일 뿐이다. 65살에 정년 퇴직하는 것보다, 지금 퇴직하고 한살이라도 젊을때 빨리 자리 잡는게 훨씬 낫다.
나는 조직 안에서 버티는 사람이 아닌 선택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어쩌면 이번에도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남의 선택이 아닌 내 선택으로 움직여보려고 한다. 모든 일에 인력과 척력이 있다면, 이번엔 둘 다 있다고 느낀다. 회사 밖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회사도 날 거부한다. 모든 상황과 조건이 '나는 내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 혼자 버티고 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