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보고 선택하면 놓치게 되는 것들
나는 여러 회사와 다양한 계약 형태로 일해 왔다. 정규직으로 근무해 보았고, 몇 개월 단위의 계약직도 경험했다. 사업자등록을 기반으로 기업과 수의계약을 맺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협업하기도 했으며, 개인 프리랜서로 고용되어 일한 경험도 있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조직 생활’을 고용 형태에 따라 비교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우선, 경력이나 근속 연수와 관계없이 정규직에게는 분명한 이점이 있다. 바로 ‘권한’이다. 이를 ‘책임’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핵심은 특정 일을 맡아야 할 명확한 이유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잘 알든 모르든, 정규직에게는 그 일을 수행할 권한과 의무가 동시에 주어진다.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은 영향 범위가 클수록 상급자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신입이나 저연차라 하더라도 자신이 맡은 영역 안에서는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다.
이 지점이 정규직과 다른 고용 형태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라고 느낀다. 계약직이나 프리랜서 또는 외부 업체의 경우, 역할은 비교적 명확하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는 판단이나 결정에는 자연스럽게 제약이 따른다. 일을 ‘수행’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방향을 ‘정의’하는 과정에는 깊이 관여하기 어렵다. 책임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동시에 권한 역시 제한된다.
결국 조직 생활에서의 경험 밀도는 단순히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권한을 가지고 의사결정에 참여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느끼기에 적어도 기획자는 그렇다. 같은 시간을 일하더라도,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로 참여했는지에 따라 얻는 경험의 깊이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내 경험상, 내가 몸담고 있는 IT 분야에서는 계약직이나 프리랜서가 정규직보다 더 높은 급여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도 회사를 다니지 않는 지금의 벌이가 더 좋다. 하지만 그 차이는 단순한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과 위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더 많은 돈을 받는 대신, 조직 안에서의 의사결정 권한이나 방향 설정에는 깊이 관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높은 단가가 항상 더 좋은 조건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정 범위 내에서 명확하게 정의된 일을 수행하는 데에는 유리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직을 이해하고 방향을 만들어가는 경험은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정규직은 (IT 분야의 경우) 보상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는 있어도, 조직 안에서 권한과 책임을 기반으로 더 넓은 맥락을 경험할 기회를 갖는다.
어떤 선택이 더 낫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하는지’를 명확히 인지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차이는 결국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로 이어진다. 회사를 다니며 얻는 것은 단순한 기술의 축적에 그치지 않는다. (회사에서 좋은 사수를 만났거나, 업무 관련 공부를 스스로 열심히 했다면) 특정 기능을 구현하는 방법이나 업무 처리 능력 같은 실무적인 기술은 물론이고, 조직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어떤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설정하는지, 그리고 하나의 서비스가 어떤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고 운영되는지를 함께 보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개인이 혼자 일할 때는 쉽게 얻기 어렵다. 프리랜서로 일할 때는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게 되지만, 회사에 속해 있을 때는 그 문제가 왜 생겼는지, 그리고 그 해결이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술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풀어내는 ‘도구’로 확장된다.
결국 회사에서 얻는 가장 큰 자산은 기술 자체라기보다, 기술을 바라보는 시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야는 시간이 쌓인다고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위치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내 경우는 조금 다르다. 회사 안에서 배운 것보다, 밖으로 나와 혼자 일하면서 익힌 실무 지식이 훨씬 더 많다고 느낀다. 실제로 손을 움직이며 문제를 해결하고, 바로 결과로 이어지는 경험은 혼자 일할 때 훨씬 밀도가 높았다.
특히 회사와 협업하는 형태로 일할 때는 오히려 더 많은 자율성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조직 내부에 있을 때보다, 외부에서 일할 때 회사가 나를 ‘전문가’로 보고 판단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방향을 제안하고 선작업을 진행한 뒤, 최종 검토만 받는 방식으로 일이 흘러가는 경험도 적지 않았다. 이런 경험만 놓고 보면, 권한이라는 측면에서도 반드시 정규직이 더 유리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외부인으로서의 권한은 ‘위임된 권한’에 가깝고, 프로젝트 단위로 제한된다. 반면 정규직의 권한은 조직 구조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더 넓은 맥락과 연결된다. 같은 결정을 하더라도, 그 결정이 조직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함께 책임지는 구조다. 결국 혼자 일하며 빠른 실행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쌓았다면, 조직 안에서 얻는 것은 그 실행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이해하는 시야에 가깝다. 두 경험은 서로 다른 방향의 자산이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의사결정이나 방향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선택일지라도 조직이 유지되기 위해 작동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개인의 기준으로는 이해되지 않던 판단들이, 조직이라는 맥락 안에서는 어떤 논리로 이어지는지 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회사는 단순히 일하는 곳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버티고, 조율하고, 살아남는지를 관찰하게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다소 이상적이다. 항상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경험이나 역량이 부족한 상사 아래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아직은 보고 배워야 하는 연차인데, 상사가 없는 경우도 있다. 또한 정규직이라고 해서 언제나 충분한 권한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조직 구조나 문화에 따라, 역할은 있지만 실질적인 결정 권한은 거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앞서 말한 권한이나 시야조차 온전히 경험하기 어려워진다. 오히려 반복적인 실행만 요구받거나, 납득되지 않는 방향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이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 어려워지는 순간도 생긴다.
그래서 회사라는 환경이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는지, 어떤 사람들과 일하는지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경험의 질은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고용 형태 자체보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가지고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다. 권한이 있는지,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야가 확장되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획자라면 더 그렇다. 뒤에 따라오는 유관 작업자들을 책임지고 이끄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까지는 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업해 오래 다닐 생각은 없다. 지금의 생활 방식이 나에게 더 잘 맞는다. 다만, 특정 조건이 충족된다면 한 번쯤은 조직 안으로 다이빙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첫째, 납득 가능한 수준의 금전적 보상이다. 개인사업자로 일할 때보다 급여가 낮을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 안정성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정규직으로 세 번의 권고사직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정규직이 더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회사 밖에서는 영업과 실무를 모두 해야 하지만, 회사 안에서는 주어진 역할에 집중할 수 있다. 그만큼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경력을 설계할 수 있고, 재무 계획을 세우거나 대출을 받는 데에도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물론 월급만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기대는 현실적이지 않다. 다만 최소한 내가 일한 만큼은 정당하게 보상받고 있다는 확신은 필요하다. 만약 당장의 현금 보상이 부족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형태의 보상이 명확하게 약속되어야 한다.
둘째,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는 조직이다. 나는 비교적 자유로운 성향이지만, 조직생활은 수직적인 위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직급 체계는 필요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완전한 수평 문화가 절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기에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정의하는 편이 낫다. 과장은 과장급에 해당하는 돈을 받으며 과장이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고, 사원은 사원의 일을 해야 한다. 직급에 따른 권한과 책임이 함께 주어지는 구조가 더 건강하다고 느낀다.
셋째, 권한이 실제로 작동하는 조직이다. 명목상 역할만 존재하고 실질적인 결정권은 없는 구조라면,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맡은 영역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닌 ‘결정하는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
결국 내가 회사를 선택한다면, 단순히 안정성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더 넓은 맥락을 경험하고 싶기 때문일 것 같다. 이제 경력이 10년쯤 쌓이니, 우스운 말일 수 있지만, 기술이나 업무 능력은 어디서든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정말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배울 수 있다. 다만 어떤 구조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지를 몸으로 겪는 경험은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속해 있느냐보다, 그 안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