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밖에서 배우는 것들
회사를 나와서는 무엇을 하며 먹고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원래 하던 일이나 취미생활, 관심있는 분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알려진 일, 오래 할 수 있는 일 같은 것들을 살펴보았다. 이런저런 시도도 해 보았다. 그러나 난 아직 기획이 너무 좋았다. 나 정도의 소프트웨어 기획 역량이면 어디 가서든 꿇리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아직은 기획으로 돈을 벌고 싶다고 결론지었다. 대신 어떤 분야의 기획이든 가리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프리랜서 생활을 이어오게 됐다.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자유가 아닌 공백이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생긴다. 난 이 시간이 처음엔 너무 불안했다. 이 시간은 곧 수입이 없는 시간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은 처음에 비해서는 불안의 정도가 덜하긴 하지만 여전히 마음 편하진 않다.
프리랜서의 일정은 일정하지 않다. 정규직 직장인일 때와 다르게, 당장 몇 개월 뒤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기가 어렵다. 이것도 나에게는 적잖은 스트레스로 다가왔으나 현재는 이런 삶을 즐기기로 했다.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없을 때도 있고, 하루에 여러 개의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할 때도 있다. 나는 하루에 여러 개의 동시에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인데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으면 스스로의 생산성을 자책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일이 없을 때는 스스로를 의심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일이 없을 때를 쉬는 시간이 아닌 준비하는 시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거나, 이전 작업을 복기하거나, 새로운 분야를 공부한다. 대비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대비한다. 반대로 일이 몰릴 때는 삶의 우선순위를 정리하고, 일정을 관리하고, 체력 관리에 집중한다. 결국 이 두 시간을 모두 견디는 것이 프리랜서의 일상이다.
프리랜서로 살며 '통제' 심리를 다루는 것에 능숙해져 가는 기분이다. 나는 이동진 문화평론가님의 블로그 소개말을 참 좋아한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요즘 누군가 내 좌우명을 물어보면 인용해 답하기도 한다.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흘려보내는 연습이 된다. 언제 무슨 일을 하게 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 어떤 일을 어떻게 하겠다고 통제하기 시작하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낙담하고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작업 산출물, 시간, 체력, 인간관계를 잘 조율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몇 가지는 프리랜서가 아니라면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것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나는 몇 가지 경로를 병행하고 있다. 재능마켓과 내 소개 페이지에 프로필을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헤드헌터에게 연락을 받기도 한다. 동시에 프리랜서 채용공고나 단기 프로젝트 공고를 수시로 확인한다. 좀더 부지런했다면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아직 여기까지는 도전해 보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계속 보이기' 이다. 한 번 잘한 작업보다,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그래서 작은 프로젝트라도 성실하게 기록하고, 다음 기회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리해둔다. 가끔은 포트폴리오로 공개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도 진행하는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부지런하게 정리해두어야 한다. 지체 없이 일하고 싶을 때는 광고비를 써서 스스로를 홍보할 때도 있다.
요즘 셀프 브랜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하지만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것보다는 나의 주력 분야를 명확히 하고 그 역량을 깊이 있게 다듬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고 느낀다. 예를 들어 교육 프로젝트 기획자를 찾는 공고에 지원한다면, 다양한 작업을 나열하기보다 교육 프로젝트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집중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결국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 분야라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선명하게 정의하고, 그 분야에서의 경험과 결과를 꾸준히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기록이 쌓일수록 자연스럽게 설득력을 갖게 된다고 믿는다.
회사에 있을 때는 몰랐던 몇 가지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먼저, 일을 잘하는 것과 일을 따내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라는 점이다. 실력이 있어도 일이 없을 수 있고, 관계와 타이밍이 더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가장 많이 보이는 사례는 단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일을 확보하는 경우다.
단가를 후려치면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진다. 어렵지 않은 일을 조금만 해도 되니 적은 보수로 일해달라는 의뢰가 굉장히 많다. 하지만 이 방식은 오래 가져가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사업적인 관점에서 기획을 한다는 것은, 클라이언트의 '돈을 벌 방법'을 대신 고민해주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기획을 할수록 요구사항이 점점 늘어나는 클라이언트들과 일하게 된다. 기획안을 전달하면 자연스럽게 추가 요청으로 확장된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붙여보고 싶은 욕심이 계속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갈수록 점점 할일이 많아질 것이라는 전제 하에 견적을 내야 한다.
또 하나는 시간 관리보다 에너지를 관리하는 법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일이 몰릴 때는 단순히 시간을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기획은 사람이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양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느 정도까지 고민했다면, 그 이상 붙잡고 있는다고 해서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일정 시간 이상 막히면 과감하게 손을 떼는 편이다.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돌아오거나, 아예 다음 날 첫 작업으로 넘기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붙잡고 있느냐가 아니라,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결과물의 질도 같이 무너지기 때문에, 스스로의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꾸준히 운동하는 이유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는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이다. 다음 달 수입이 확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일상을 유지하고, 인생을 바꿀 선택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도 계획을 세우는 법을 배우게 된다.
프리랜서이자 기획 전문가로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몇 가지 패턴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답을 찾고 있는데, 그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아쉬웠다. 나는 되게 쉽게 느껴지는데, 이 분들은 왜 이렇게 어렵게 생각할까? 그래서 조금 다른 방향을 생각하게 됐다.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의 양에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시간을 늘려도, 결국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의 범위는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내 능력을 내가 직접 쓰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 지점에서 사업을 고민하게 됐다. 처음부터 장사가 잘될 것을 기대하지 않기에 단순히 수입을 늘리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내가 가진 경험과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쓰일 수 있도록 만드는 일에 가깝다. 누군가의 일을 더 잘 풀리게 돕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가치가 만들어지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나에게 사업은 내가 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방식을 만드는 시도에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내가 직접 겪었던 한계와 그것을 넘어서고 싶었던 생각이 있다.
프리랜서는 자유롭지만 그만큼 모든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언제 얼마를 받고 일을 할지, 어떤 방향으로 커리어를 쌓을지 모두 본인의 결정이다. 그래서 이 생활은 누구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회사 밖에서는 누가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배운 것들은 농도가 진하다.
프리랜서를 시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삶을 운영하는 방식을 바꾸는 일에 가깝다. 돌이켜보면 나는 원래 이런 방식으로 살고 싶었던 것 같다. 처음 프리랜서를 결심했을 때도 '내 하루를 내가 설계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분명히 있었다. 오전에 결정이 필요한 일을 하고, 오후에 루틴한 일을 한다는 규칙 같은 것을 정하고 싶었다. 그리고 (적절한 예시일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생일에는 일하지 않고 보내고 싶다는 기준이 있다. 반면 내 배우자는 생일에도 늘 일을 해왔고, 그것에 큰 불만이 없다고 말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자율성이 꽤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회사에 있을 때도 비슷한 순간들이 있었다.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할까, 왜 이 결정이 늦어질까,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걸까 의문을 느끼는 일들이 반복됐다. 그때는 단순히 답답함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직접 결정하고 싶다는 욕구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프리랜서로 살아가면서 그 생각이 조금 더 분명해졌다. 나는 단순히 하루의 시간을 스스로 쓰고 싶은 것을 넘어서, 내 앞날을 내가 만들어가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떤 선택을 할지 스스로 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방식의 삶을 원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