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쌓이는 것들
나의 하루를 내가 설계한 대로 살고 싶었다. 자유를 꿈꿨던 것 같다. 그래서 홀로서기에 도전했다. 혼자 일한다는게 자유롭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자기 자신을 관리하는 일이 전부라고 느낀다.
기획을 하며 느낀 것은, 좋은 아이디어는 제한된 상황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두면 시작도, 끝도 분명히 할 수 없다. 기준이 필요한 셈이다. 그렇기에 예산이나 기간의 범위를 설정해 두고, 서비스의 주요 사용자를 정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일해 왔다. 이런 태도가 내 삶을 대하는 방식으로도 자리잡아 가는 듯하다.
회사에서는 구조가 사람들을 움직인다. 아무리 체계가 없고 구조가 없는 집단이더라도, 일단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기 때문에 절차와 규칙이 점차 만들어진다. 하지만 혼자 일하면 그 구조를 내가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일상의 규칙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몇 시에 일을 시작하고, 어떤 순서로 처리하고, 언제 쉰다는 기준들. 처음에는 그게 자유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 규칙들이 나를 안정시키는게 아니었다. 일이 너무 많고 바빠서 규칙을 지키지 못한 날,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감옥은 내 마음속에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감옥에는 문이 두 개 있었다.
한쪽 문은 일이 없을 때 열렸다. 루틴대로 하루를 보내고 있어도 수입이 없는 날은 불안했다. 오전에 사업 준비를 하고, 오후에 공부를 하고, 점심이나 저녁에는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었다. 누가 봐도 성실한 하루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행중인 (돈을 받는) 프로젝트가 없으면, 그 하루는 어딘가 헛된 것처럼 느껴졌다. 잘 살았는데도 잘 산 것 같지 않은 기분. 계속 누군가에게 지배 받고 싶어하는 노예 근성이 남아있는 것 같다.
다른 쪽 문은 일이 많을 때 열렸다. 프로젝트가 몰리면 루틴이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일하는 꿈을 꾸고, 식사도 대충 때우고, 운동을 빠진다. 수입은 생기는데 내가 정해둔 기준들을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도 스트레스였다. 돈이 없어도 불안하고, 돈이 생겨도 찜찜했다. 어느 쪽이어도 온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그제서야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로 원하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고민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고 검색해보며 여러 의견을 접수했다. 먼저, 일이 없을 때 열리는 문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다행히도 누군가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큰 빚도 없고, 당장 돈이 벌리지 않는다고 해서 생활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큰일이 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상황도 아니었다.
일이 많을 때 열리는 문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하루에 한 끼 정도를 내가 요리해 먹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가? 운동 좀 안 간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가? 생각해보니 이 두 가지는 나한테 큰일이었다. 난 하루에 한 끼는 내가 직접 해먹고 싶은 사람이고, 가끔 수영을 하고 싶다. 루틴 몇 번 안 하는 것쯤이야, 그렇게 해서 돈 많이 벌어서 내 가족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거 사주고 먹여줄 수 있다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생활이 평생 지속돼야 한다면 힘들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문을 들여다보는 동안, 정작 내가 놓치고 있던 게 있었다. 불안하다고 느꼈던 그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보니, 나는 사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 않았다.
일이 없는 날에도 나는 계속 뭔가를 한다. 관심 있는 서비스를 만들거나,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거나, 모임을 열거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만난다. 그 시간들이 낭비처럼 느껴졌던 건, 큰 수입으로 환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나를 쌓아가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내가 가진 기준이었다. 돈이 되지 않는 것은 가치 없다는 기준.
기획을 하다 보면 한 가지를 알게 된다. 좋은 서비스는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 사용자를 이해하고, 반응을 보고, 방향을 다듬는 과정이 먼저다. 그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서비스가 자리를 잡는다. 출시 첫날부터 돈을 많이 버는 서비스가 얼마나 될까? 그걸 알면서도 나는 내 삶에는 그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서비스를 기획할 때는 오늘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지금 이 작업이 나중에 어디로 이어질지를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에게는 매일 결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오늘 수입이 없으면 오늘은 실패한 날이 되는 식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불안하다고 느꼈던 그 시간들은 사실 가장 나다운 시간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서비스 기획을 한다.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분야를 공부한다. 언제 도움이 될 지 모르는 사람을 만난다. 직접 장을 봐서 요리해 식사를 준비한다. 내 몸이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며 운동을 한다. 수입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쌓이고 있었던 거다.
기획자는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 것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용자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흐름을 미리 그리고, 지금은 없지만 있어야 할 것들을 채워나가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일을 하면서도, 내 삶은 오늘 눈에 보이는 숫자로만 판단하고 있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거다.
그래서 기준을 바꾸기로 했다. 오늘 수입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오늘 나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당장 환산하지 않아도,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나를 쌓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물론 이 기준이 항상 잘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여전히 불안해지는 날이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불안을 다르게 읽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불안한 것은 잘못 살고 있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그 기준을 바꾸는 데 나 혼자의 힘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남편은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시도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지해줬다. 대단한 말을 해준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다. 그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렇다고 무한정 기다릴 수는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나는 미리 기준을 정해둔다. 몇 개월 안에 일이 없으면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것을. 기획을 할 때 예산과 기간을 먼저 정하는 것처럼, 내 삶에도 범위를 설정해두는 것이다. 이것은 나를 압박하는 규칙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마음껏 시도할 수 있게 해주는 울타리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제한이 있어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기획 일을 통해 배웠고, 삶을 통해 다시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