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진행 중..
브런치북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렇게 많은 글을 쓰게 될 줄 몰랐다. 연봉을 깎아가며 이직하고, 권고사직을 세 번 겪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환경에서 혼자 배워야 했다는 사실들을 꺼내놓고 나니 생각보다 할 말이 많았다. 쓰면서 정리가 됐고, 정리가 되면서 또 쓰게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결국 가장 솔직한 것을 쓰기로 했다. 혼자 일한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돌이켜보면 혼자 일하게 된 것은 아주 치밀한 계획에서 나온 결정은 아니었다. 세 번의 권고사직이 있었다. 첫 번째는 팀이 없어졌고, 두 번째는 사업부가 없어졌고, 세 번째는 사업이 해체됐다. 매번 내가 먼저 나왔다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어쩌면 조직이 나를 내보낸 것이 아니라,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던 것일 수도 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불안정한 일에 끌린다. 그렇기에 만약 다시 직장생활을 한다면, 또 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솔직히 말하면, 구조 탓만은 하기 싫은 마음도 있다. 나는 원래 납득이 안 되는 것을 그냥 넘기기 어려워한다. 나에게만 해당되지 않는 관심사만 반복되는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했던 것을 지금도 후회한다. 전 직원 앞에서 공개적으로 질책을 받았을 때, 그 자리에서 내 입장을 말했다. 조직 안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때로는 참고 맞춰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잘 안 됐다.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는 심성이야말로 내가 혼자 일하게 된 큰 이유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원하는 만큼 해야 후련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하고 싶은 일을 멈추기가 힘들고, 하기 싫은 건 아무리 해야하는 일이더라도 손이 잘 안 간다.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생각해서 고치고 싶은데 잘 안 된다.
이 심성은 조직 안에서 마찰을 만든다. 혼자 일하면 그 마찰이 줄어든다. 하고 싶은 방향으로 일할 수 있고, 맞지 않는 관계는 정리할 수 있다. 대신 이 심성의 단점도 고스란히 내 몫이 된다. 흥미가 생긴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다른 것을 놓치기 때문에 우선순위 관리가 중요하다. 하기 싫은 일을 외면하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노심초사할 때도 있다. 나를 조율해줄 구조가 없으니, 이 심성을 다루는 것도 결국 내가 해야 한다.
혼자 일하면서 처음으로 얻은 감각은 홀가분함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졌다. 항상 긴장되고, 무언가를 소모하는 기분이었다. 누구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생길지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게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를 내가 설계한다. 어떤 일을 먼저 할지, 언제 밥을 먹을지, 오늘 어떤 운동을 할지.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게 전부 내 결정이라는 사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내게 된 것에 감사하다. 타인과 일하다 보면 그의 모니터 위로 반사되는 태양빛, 웅성거리며 돌아다니는 발자국 소리, 원하지 않는 냄새 같은 것들에 너무 많은 신경이 쓰인다.
납득되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도 크다. 회사를 다닐 때는 하루 업무시간이 끝나도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일을 했는지 잘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회의를 하고, 보고를 하고,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리다 보면 하루가 갔다. 지금은 하루가 끝나면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안다. 잘했든, 못했든, 오늘은 내 것이다.
그렇다고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힘든 것도 많다.
가장 힘든 건 불확실성이다. 일이 몰릴 때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하다가, 일이 없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분명 항상 바쁜데, 돈을 벌고 있다는 감각이 없으면 불안하다. 루틴대로 살고 있어도 돈이 안 들어오는 날은 스스로가 초라해진다. 돈을 벌 때는 루틴이 무너질 때도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다. 어느 쪽이어도 온전히 만족하지 못했던 시간이 길었다.
수입으로 환산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것도 쉽지 않다. 아무도 시키지 않지만 일하고, 공부하고, 사람을 만나는 시간들. 그게 나를 쌓아가는 시간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끔 흔들린다.
그러면 왜 계속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이 방식이 더 낫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가끔 만나는 전 직장 동료들은 내가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 궁금해한다. 그 질문에 확실하게 있다/없다 라고 명확하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다만 이것만은 안다. 지금 이 방식이 나에게 맞는 방식이다. 경제학과에서 컴퓨터공학과로 전과했던 것도, 개발자 경험을 바탕으로 기획자로 전직했던 것도, 그때는 그 선택들이 어디로 이어질지 몰랐다. 그냥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었다. 지금 혼자 일하는 것도 그렇다. 이 선택이 어디로 이어질지 아직 모른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이 방식이 가장 나답다고 느낀다.
다행히도 나는 쉽게 나태해지는 사람이 아니며 항상 무언가를 사부작거리는 편이다. 일이 없는 날에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읽다 만 책을 꺼낸다. 그게 내 기본값인 것 같다. 혼자 일하는 방식이 나에게 맞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조가 없어도 움직이는 사람이라서, 구조가 없는 환경이 오히려 더 넓은 공간이 된다. 물론 사부작거린다고 해서 다 잘 되는 건 아니다. 방향이 맞는지 모른 채 혼자 열심히 하고 있을 때도 있고, 나중에 돌아보면 헛수고였던 것들도 있다. 그래도 멈추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트레바리의 로그아웃 클럽에서 매달 열여섯 명 남짓한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한다. 모임을 시작할 때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다. 처음에는 이렇게 말했다. '소프트웨어 기획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꼭 누군가가 묻는다. '직원은 몇 명이에요?'
그 질문을 받으니 아차 싶었다. 에이전시라는 말에는 어딘가 규모가 있을 것 같은 뉘앙스가 있다. 사실과 다른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서 요즘은 말을 바꿨다. '저는 혼자 일합니다' 라고. 신기하게도 이 말이 더 편한 것 같다. 설명할 것도 없고, 덧붙일 것도 없다. 혼자 일한다는 말 안에 내가 하는 일의 방식이 다 담겨 있다.
혼자 일하는 것을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이 문장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이 문장을 처음 꺼냈을 때와 지금, 이 말의 무게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처음에는 선언에 가까웠다. 나는 이제 혼자 일한다고. 지금은 그보다 조금 더 담담하다.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일하고 있다고.
어떤 선택은 나중에야 의미가 생긴다고 썼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선택도 언젠가는 뒤늦게 이유가 생기는 것들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