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순간을 묘사하기
사과 한 알과 500ml 생수 한 병이 들은 오렌지 색 백팩을 가볍게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작년 가을 이후로 등산은 처음이다. 계단 구석구석에 노랗게 쌓인 송진가루를 못 본 척하며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주차했던 곳을 찾아내면 흰색 투싼이 경쾌한 휘파람으로 나를 맞이한다. 가방은 조수석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는 투싼을 깨워 액셀을 밟는다. 오디오에서는 어제 듣던 팝펑크 플레이리스트가 흘러나온다. 굳이 선곡을 바꾸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나만 겨우 들릴 정도로 오디오 볼륨을 낮추고는 운전석 창문을 모두 연다. 왼손으로 창틀을 살짝 닦아내듯 매만지면 손마디 사이사이로 부드러운 바람이 통과하는 게 느껴진다. 나는 나른한 바람이 콧잔등을 간질이는 것을 느끼며 목적지로 향한다.
삼십 분 정도를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곳은 아빠와 처음으로 함께 등산했던 산이다. 오늘은 나 혼자 이 산을 정복해 보겠다며 아빠에게 큰소리를 치고 나왔지만 혼자 산을 타는 건 처음이다. 운전대를 잡은 검지손가락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계속 틱틱거리며 운전대를 괴롭힌다. 타이어가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는 모래바닥이 겹쳐진 어느 길가의 구석에 차를 세워두고는 백팩을 챙기며 운전석을 떠난다. 등산화가 발목을 조이는 정도를 의식적으로 느끼며 콧구멍으로 바람을 집어넣는다. 그래, 정말 나 혼자 왔구나. 돌아오는 길에 잘 찾아올 수 있도록 지도 앱을 켜서 현재 위치를 저장한 후, 핸드폰을 백팩에 넣으며 땅을 밀어낸다.
발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작은 돌끼리의 진동이 약해질수록 허벅지에 더 많은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점점 좁아지는 산책로 사이로 잘 자리 잡은 솔방울을 발로 차내고는 멈추어 서서 온 길을 돌아본다. 길게 뻗은 흙바닥은 내 쪽으로 올 수록 점점 넓어지며 내 등을 밀어내는 것 같다. 정상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걸까? 맞은편에서 가벼운 표정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저쪽의 발걸음은 내가 먼저 말을 꺼낼 용기를 내기도 전에 나를 지나친다. 그냥 생각을 비우고 걷다 보면 언젠가 도착하긴 하겠지, 말을 붙여 보기를 단념하고 허리에 둘러맨 바람막이의 팔을 양쪽으로 당기며 가장 멀리까지 보이는 길을 바라본다.
언덕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눈썹 위로도 모자라 이제는 가슴께에 흘러내리기 시작한 땀방울을 알아채며 대충 묶어 올린 머리끈을 꽈악 조인다. 잔머리가 귓바퀴를 간지럽히며 바람의 방향대로 흩날린다. 보이지 않는 계곡의 물소리와 새들의 구구거리는 울림이 청명한 공기 속으로 들려온다. 끝없이 이어지는 소리를 배경으로, 숨을 들이내쉬는 속도는 표지판에 적힌 정상까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빨라져 간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며 어느덧 산 정상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아챈다. 곧 산을 올라오면서 볼 수 없었던 끝없이 펼쳐진 도시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나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음에 안도하며 숨을 푸우 내쉬고는 나보다 살짝 앞선 사람의 뒤를 따라가 나무 울타리에 몸을 기댄다. 내쉬는 숨이 정상에 흐르는 맞바람과 어우러지며 모든 순간이 영원한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눈을 감고 있다가 백팩에서 사과 한 알을 꺼내어 손에 쥐고는 입을 크게 벌린다. 사과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달콤한 향기가 입 안에 퍼져나간다. 시원한 조각들이 목구멍으로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입가에 웃음이 번져나간다. 나는 옆의 아주머니께 핸드폰을 건네며 입을 뗀다. 눈꼬리와 입매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주체할 수 없다.
“사진 좀 찍어 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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