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하지 말자

너무 과도한 죄책감을 느끼는 분들께

by 제나로
_ (1).jpeg 내가 더 잘할 걸, 머릿속에 돌고 도는 죄책감


내가 전부 해결할 수 있었으리라는 착각

“아까 신입한테 그 말은 좀 심하지 않았을까요? 줏대가 없다니.”

“뭐가 심해요? 오히려 나는 본인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라고 판을 깔아준 건데, 자꾸 누가 했던 얘기만 계속하니까 그렇죠.”

“그래도 그렇게 공개적으로 뭐라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요?”

“여럿이 있는 데서 참교육을 해 줘야 똑바로 알아듣죠. 갑갑하네.”

혹시라도 신입이 들었을까 염려돼 뒤를 돌아본다. 회의실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나왔을 신입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노트북을 들고 성큼성큼 제 자리를 찾아가는 동료의 뒷모습이 작아진다. 나라도 저 동료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했어야 했는데. 아니, 내가 좀 더 시간을 내서 신입에게 미리 이것저것 알려 줬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니, 내가 뭐라고 누구를 가르치려고 드는 거야.

사무실에서 신입의 바로 옆자리에 앉는 내가 신입을 더 신경 써 줬더라면 신입이 싫은 소리를 듣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신입의 옆자리에는 나 말고도 두 명이나 더 있다. 하지만 항상 귀에 이어폰을 꽂고 업무를 보거나, 외근이 잦은 동료보다는 내가 더 챙겨 주는 쪽이 맞는 것 같다. 내가 더 잘 알려 줬더라면, 회의실에서 신입을 옹호해 줬다면, 하다못해 회의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내 의견을 더욱 강하게 말했더라면 앞으로 신입이 상처받을 일은 없었을 테다. 신입이 상처받았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괜히 신경 쓰인다. 내가 더 잘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죄책감이 든다.



죄책감이란

죄책감은 내 잘못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감정이다. 잘못한 것도 아닌데 죄책감을 느낀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나는 가끔 내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심지어는 내가 피해자인데도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다. 사실을 직시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탓하는 게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그건 사실을 외면하면서 다른 쪽으로 주의를 돌리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내 마음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하며 수치심을 느낀다.


민감한 사람들은 어떤 착각 속에서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개입했더라면,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막말을 하는 동료를 둔 건 내 잘못이 아니다. 한 달치 강수량이 이틀 만에 쏟아져서 부모님 댁에 가지 못하는 건 날씨를 조절하지 못하는 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무고한 사람에게 욕을 하는 사람을 방치하는 것은 분명히 따돌림을 동조하는 잘못이다. 부모님의 생일날 찾아가지 않아서 부모님이 서운해하셨다면 그것 또한 내 잘못이다. 목소리를 낼 수 없거나 도로가 물에 잠긴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진짜 죄책감은 내 잘못이나 실수와 비슷한 정도의 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진짜 죄책감을 느낄 때는 상대방에게 용서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설혹 내가 도울 일이 없더라도, 상대방에게 내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어쩔 수 없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말자.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새끼 돼지가 굴러내려 오는 바위에 맞아 죽어갈 참이어도 내가 시속 120km/h로 달리는 기차 안에 있다면 죄책감을 느끼지 말자. 나는 곧바로 기차를 멈추거나 기차에서 뛰어내릴 수도 없으며, 늪까지 단숨에 달려 돼지를 꺼낼 신체적인 능력도 없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을 때 죄책감을 느끼지 말자. 부모님이 기대한 직업이나 회사를 다니지 않아서 부모님을 실망시켰더라도 죄책감을 느끼지 말자. 사기를 치거나 남을 해치는 직업이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나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부모님에게 경제적인 이유로 무작정 기댈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좀 기댄다 한들 어떤가? 우리는 너무 지나친 죄책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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