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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로 Aug 11. 2023

다들 어디서든 어떻게든 사는데

홋카이도를 여행하고 느낀 점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 시


 소속이 없는 상태로 살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무한한 자유에서 비롯된 공포감과 두려움.

 다시, 무언가를 스스로 일구어낼 때마다 얻는 자기 효능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부끄러움.


 마음속으로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나는 내 본성을 이어갈 수 있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싶은데,

 내 사업을 영위하고 싶고, 내 속도와 방향으로 배를 몰고 싶은데

 매일 수십 번씩 고민하고 또 가정한다.


 꿈을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하던데 나는 객기를 부리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많이 걷는 길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는 왜 보통 사람들이 걷는 길을 버텨내지 못할까,

 나는 왜 그럴까.

 머리에 든 생각이 많아서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다 일본 홋카이도로 일주일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홋카이도의 면적은 한국의 80% 정도인데, 인구는 500만 명으로 한국 인구의 10%이다.

 인구밀도가 낮고 낙농업이 발달해 기계 농업이 대부분인 조용한 지역이다.

 그런 곳에서 관광업과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할까 궁금해졌다.


 다들 어디서든 어떻게든 사는데

 나라고 어디서든 어떻게든 살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어쨌든 살아내고, 건강하고, 행복하고, 사랑하고,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살고 싶은데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한국말을 못 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좋아'라며 반말해도 웃어넘기면서

 외국에서 용기 내어 길을 묻고 난 후에는 힘들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면서

 나는 왜 항상 내게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왔던 걸까.

 나는 무한한 우주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작고 유한한 생명체일 뿐인데.


 일본에 갈 때마다 발견하는 재미있는 풍경 중의 하나는

 아침 8시의 삿포로, 도쿄, 하카타 역에는 흰색 셔츠에 남색 정장바지를 입은 아저씨들과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스탠다드 핏의 옷을 차려입은 언니들이 많은데

 관광지에 가면 형형색색으로 화려한 팬티를 팔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힘겨움을 억누르다가 곪아터져 버린 마음의 밑바닥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매일의 하루 대부분을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일로 채우고

 내가 사용하는 시간과 있을 공간을 내가 정하고 싶을 뿐이다.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스트레스에만 노출되고 싶다.

 곪아터진 곳을 완벽하게 치료하기보다, 견딜 수 있는 정도의 상처만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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