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는 대로 해서 그런가 보다
병원을 다녀온 너는 이제 먹는 약이 줄었다고 말했다.
너는 이제 아침약을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됐다.
잠을 푹 잘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저녁약 반 알은 그대로였다.
그동안 네가 먹던 아침약은 세로토닌의 합성을 돕는 약이었어서
햇빛을 덜 본 날의 너를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한 것 같다.
그 약을 더 먹지 않아도 된다니, 그럼 너는 스스로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약을 처음 처방받던 날과 요즘의 너를 비교해 보면 많은 환경이 달라졌다.
너는 디자이너로 일하던 회사를 그만뒀고, 잉크를 쓰는 만화가 데뷔를 준비한다.
너는 매일 저녁 아이스크림 먹기를 그만뒀고, 주 3회 필라테스에 다닌다.
너는 사용한 물건을 점점 제자리에 두고,
동네 친구들을 더 자주 만난다.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가는 날이 덜해졌고,
누군가가 직전에 뭐라고 말했었는지 되묻는 일도 줄어들었으며,
일찍 잠자리에 드는 날도 많아졌다.
너는 다 내 덕분이라며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너와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
약을 줄일 수 있었던 원인이라고 고마워하지만
나는 그냥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했었다.
회사에 속하기 싫어서 회사를 그만뒀고,
너와 함께 보내는 일상이 더 소중해서 집에 있는 시간을 늘렸고,
집에서 해 먹는 밥이 더 맛있어서 매일 요리했고,
깔끔한 게 좋아서 매번 앉은자리를 정리했고,
루틴을 지키는 게 좋아서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 생활했을 뿐이다.
네가 먹는 약이 줄었다는 성취를 나 하나 때문에 이뤄낸 것은 아닐 것이다.
너 역시 네 모습을 찾아가려고 애썼고,
네 방식에 맞는 삶을 꾸려가면서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을 채우고 있으니까
그게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
네 것도 아닌 일로 스트레스받아하고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