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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로 Feb 07. 2024

다시 직장생활을 할 뻔했다

스스로의 길을 찾아야겠다

출처: Carpano Argetina


왜 그렇게까지 해요?

 사실 나는 서비스 기획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바텐더 면접을 봤었다.


 내 것을 하기 위해 회사를 나왔었다. 나는 '내 것 = 내가 쓴 글'이라고 생각했었다. 집중이 잘 되는 낮에는 글을 쓰고, 낮 외의 시간에 돈을 벌 일을 찾았다. 밤에 일하는 직업을 찾아보다 바텐더가 내 적성에 잘 맞을 것 같았다. 결과를 바로바로 실험해 볼 수 있고, 접객하기를 좋아하고,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내 성향에 딱일 것 같았다.


 바텐더로 직무전환을 하기 위해 매일 서너 시간씩, 두 달 동안 칵테일 조주를 배웠고 조주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바로 점포를 열어서 내 가게를 운영하고도 싶었지만, 그러면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질 것 같아서 일단 직원으로 일을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일지급 고수익 토킹바가 아닌, 친구끼리 편하게 놀러 가는 칵테일바 같은 일자리는 <아이엠어바텐더>라는 네이버 카페에 많은 모집공고가 올라온다. 바텐더 일자리는 번화한 상권이나 구매력이 높은 동네에 있다. 저녁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기 때문에 업장마다 택시비를 하루 1만원씩 지급해 주는 곳도 있다. 차가 없는 나는 집에서 1만원 내외의 택시비로 퇴근할 수 있는 어느 번화가의 2층에 위치한 바에 면접을 보러 갔다.


 나는 너무 순진했다. 왜 좋은 직장 놔두고 이 일을 하려고 하냐는 사장의 질문에 '낮에는 글을 쓰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얘기해 버렸다. 그냥 사회생활이 처음이라고 둘러댈 걸, 너무 곧이곧대로 얘기하는 것도 안 좋은 것 같다. 사장은 내 이력서를 보더니 "이과인데 글이 잘 써지나 보네요?"라고 물었다. 내가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하니,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라고 다시 물었다.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아니, 궁금해서 그냥 물어봤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가 나를 자꾸만 시험하려는 것 같아서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울음을 참았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미래가 보장된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나서서 하느냐고 나를 다그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겠다. 그냥 해야 될 것 같아서 하는 건데, 하지 않았더니 너무 답답해서 하는 건데, 나한테 재능 따위는 없다는 것을 나도 아는데, 그냥 해야만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이 사람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때 정말 우울했던 것 같다.)


 나는 첫 면접을 보며 다시는 바텐더 면접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당연히 그날 이후로 사장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는 그냥 모아놓은 돈을 쓰면서 매일 여섯 시간 정도씩 여섯 달 정도 소설 원고를 썼다. 무슨 일을 해서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지 걱정도 많이 했지만, 이왕 회사를 그만뒀다면 내 인생의 여섯 달 정도는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시간으로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내가 다시 "멀쩡한" 회사에 취직하기를 원하는 내 부모님과도 사이가 조금 멀어졌다.


 원 없이 글을 써 보니까 알게 됐다. 내가 글쓰기라는 과업을 꼬옥 붙들고 있어야만 그것이 내게서 달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글쓰기라는 아이를 약간 풀어 주고, 시간 나면 다시 찾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 수는 없었다.

 목표하던 공모전에 원고를 내고서는 취업길에 뛰어들었다. 당장 돈을 벌고 싶었다.


 원래 밥 벌어 먹던 서비스 기획자 공고에 지원했고, 몇몇 회사에서 최종 면접을 봤다. 바 사장의 나이브한 질문 공격이 내게 꽤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나는 공백 기간 동안 글을 썼다는 얘기는 쏙 빼놓고, 그냥 자기 계발을 했다며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퇴사한 지 7개월 차였다.


 최종 면접을 준비하다가, 회사를 그만둔 직후에도 몇 군데 최종 면접을 보던 기억이 났다. 내가 이러려고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었는데- 생각하다가도 당장의 생활비와 은행 이자를 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건 여전했다. 나는 대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의 대표 내지는 임원들을 앞에 두고 그들이 나를 검증하려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며 또다시 회사의 틀에 나를 구겨 넣으려고 애썼다.


 면접은 다행히도 내 예상을 빗나가질 않았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가니 무슨무슨 그룹장, 인사 실장이라는 사람들이 가운데 앉은 나이 지긋한 대표의 눈치를 보는 분위기를, 그들을 처음 보는 나조차 느낄 수 있었다. 아, 스타트업은 가지각색으로 예상 밖이었다. 구직자들에게 단체메일을 보내며 인터뷰할 시간을 다 같이 조율하자는 대표, 인터뷰에 지각하는 대표, 내 직전 연봉과 희망 연봉을 듣고는 급하게 인터뷰를 종료하는 대표도 있었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챌 수 있도록 신이 두 번째 기회를 주신 것 같았다. 신께서 내게 또 직장생활을 하며 남의 일이나 대신해 줄 거냐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주도적으로 내 일을 하고 싶은 것뿐인데, 마음 맞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는 그냥 스스로의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다시 직장생활을 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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