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 시작하기
먼저, 내 재능 중에서 판매할 만한 재능을 찾아야 했다. 내 재능이 돈이 되려면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무언가가 있거나, 내 노하우 또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재능마켓을 둘러보면 의외로 초급자들이 있다. 보통 초급자들은 남들과 비슷한 퀄리티에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마케팅하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초급의 재능으로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할 줄 아는 것들 중에서 중급 이상의 재능은 그동안 회사 안에서 밥벌이하던 서비스 기획이었다. 재능을 판매할 때,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평가지표가 있어야 하는 관료사회에서는 과정도 중요할 수 있겠으나, 나는 턴키 도급 방식(알아서 한 다음 결과물 전달하는 방식)으로 일하고자 했다. 서비스 기획자로써 낼 수 있는 산출물인 상위 기획서, 정보구조도, 플로우차트, 와이어프레임, 스토리보드를 비롯한 웹이나 앱 개발에 필요한 기획서를 만들어 팔기로 했다.
그다음엔 내 서비스를 차별화할 전략이 필요했다. 나는 글로벌 기업 재직 경험과, 글로벌 앱 서비스를 구축했던 경험을 살려 글로벌 서비스 기획 전문가로 스스로를 홍보했다. 실제로 기획 단계에서 글로벌 서비스인지, 국내 대상 서비스인지를 정하고 시작하는 프로젝트와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는 고려할 점이 다르다. 또, 나는 밑바닥부터 쌓아 올리는 것을 잘하고 좋아하는 성향을 살려 스타트업 서비스 기획 전문가임을 내세웠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 몇 개를 정했고, 그에 맞춰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어떤 재능을 팔 지 긴가민가하면,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서 할 수 있는가를 반문해 보면 쉽다.
내 서비스 비용은 얼마로 할지, 작업 시간이나 문의 응대 시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로 할지, 고객 응대 방안은 어떻게 할지 같은 것들을 정한다.
내 서비스 비용은 내 지출, 수입, 근로시간을 고려해 계산한다. (자세한 계산 방법은 [퇴사일기 9]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까 에 적었다) 다 계산한 다음에는 나와 비슷한 수준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얼마의 가격에 판매하는지 비교해 보면 객관화하는데에 도움이 된다. 이렇게 가격을 정하면 클라이언트에게 비용 견적을 안내하거나, 희망 금액을 협상하는 데에 수월하다. 또, 터무니없이 값싼 용역 모집 공고를 피할 수 있다.
정해 놓고도 가장 지키기 어려운 방침은 작업 시간이다. 나는 하루 6시간을 일하고 싶은데, 8시간짜리 일이 들어오면 더 많은 비용을 받는다. 6시간 미만의 일이 들어오면 클라이언트에게 '기간이 부족하여 게시한 포트폴리오만큼의 퀄리티가 안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사전 안내한다. 적당히 일해야 내 작업의 퀄리티를 점진적으로 상향해 갈 수 있다.
응대 시간은 오후 9시를 넘기지 않기로 정했다. 24시간 응대 가능하다고 열어 두었더니, 심야에 말도 안 되는 문의를 하는 고객이 너무 많았다. 내가 상식적인 선에서 영업해야, 상식적인 수준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되는 것 같다.
프리랜서는 개인사업자를 내야 할까? 꼭 사업자 등록을 해야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도 프리랜서 계약으로 3.3% 떼고 일을 하기도 했다.
나는 여러 이유로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사업자 등록을 했다. 이유는 경력 관리를 하고 싶어서였다. 서비스 기획자라는 경력을 나중에 활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같은 것 때문이었다. 사업자를 유지하고 매출을 일으키는 것으로 경력 증빙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 프리랜서로 그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막상 사업자등록을 하고 나니, 생각하지도 못한 장점과 신경 써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있었다.
가장 큰 장점은 정부지원사업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입찰하기 유리해졌다는 것이다. 프리랜서로 비용을 정산할 때는 때 되면 클라이언트가 내 통장으로 입금을 해 주는데, 사업자 대 사업자로 비용을 정산해야 하면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한다. 보통 월말에 내가 세금계산서를 청구발행하는 방식으로 클라이언트에게 공급가액과 세액을 작성하는데, 클라이언트 측에서는 비용처리하기 수월한 장점이 있어서 선호하는 것 같다. 또, 나는 여성기업 확인을 받았다. 대표자가 여성인 기업은 여성기업 확인서를 받으면 좋다. 공공입찰 관련으로 수의계약을 맺을 때, 여성기업의 한도가 일반기업보다 높다. 스타트업은 정부지원사업을 받는 곳이 많아서, 스타트업 분야에서 활동하는 내겐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두 번째로 체감하는 장점은, 비용 처리가 간편해졌다는 것이다. 사업을 영위함에 있어서 일부 지출이 업무상 경비로 인정된다.
관련하여 신경 써야 할 것은 같은 부가가치세나 종합소득세 납부 같은 세금 관련 이슈다. 기획자를 비롯한 IT 계열 개인사업자는 내 지식과 재능을 파는 사업자이므로 매입이 잘 잡히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세무 처리가 어려워, 나는 세무회계법인에 매월 기장을 맡기는 식으로 모든 세무업무를 세무사님께 위임하고 있다. 사실상 지금은 세무사님이 도와주셔서 비용 처리가 간편한 것이긴 한데, 나도 잘 배워서 스스로 비용 관리를 할 수 있게 되면 좋긴 하다.
초기창업패키지(초창패)와 같은 정부 지원금 사업에 두드려 봐도 좋다. 다만, 제공하는 용역과는 조금 다른 결의 사업 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고 개인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초창패보다 경쟁률이 낮은 예비창업패키지에 도전하는 방법도 있다.
나는 사업자등록을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회들이 열리고, 무엇보다 일단 일을 벌이고 나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서 더 부지런해진다. 대출받기도 더 좋아진다.
완벽히 준비되지 않았어도 재능마켓에 내 서비스를 오픈한다. 심사 피드백을 반영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고 일단 오픈하고 나면 개선할 것이 많아서 일찍 오픈하는 게 좋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몫이다. 서비스를 오픈한다고 해서 클라이언트들이 몰려들지는 않는다. 홍보하고, 버티기도 해야 한다.
일하다 보면 종종 '프리랜서는 어때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프리랜서는 1인 개인사업자나 다름없다. 자기가 알아서 다 해야 한다. 일감 구하는 것도, 계약도, 일하는 것도, 정산도, 마케팅도 다 알아서 해야 한다. 회사에서 반 내주는 연금저축도 없고 퇴직금도 없으니, 알아서 관리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할 수 없다면, 적어도 일만큼은 자유롭게 하고 싶다.
내 일과 인생의 주인이 나인 세계를 살면서 한 번쯤 경험해 봐도 좋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