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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양섭 Nov 19. 2022

아! 계룡산…

  동서울터미널에서 예매한 표를 찾아 6시 30분발 버스에 타니 승객은 나 혼자였다. 설핏 졸다가 눈을 뜨니, 훤해진 창밖 멀리 산등성에 해가 솟았다. 햇살을 받으니 며칠 전 취중 통화 중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신년 산행의 서막이 환히 열리는 듯했다.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원인 김 박사는 거의 매주 산을 오르며, 열 몇 시간씩 여러 봉우리를 종주하는 산 마니아이다. 수원에서 오는 장 작가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산중에서 살다시피 심취하며 교감을 즐기는 산악인으로 여러 권의 책을 낸 소설가이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은 산에 관해서는 내로라할 만한데, 우습게도 저질 체력이며 어중이인 내가 셋이 닭띠 동갑이랍시고 ‘닭 벼슬을 쓴 용의 산’ 산행을 주선하였다.

  계룡산은 내 청춘의 단면에 각인된 산이다. 1977년 여름날, 자취방을 얻어 버겁게 독학하던 친구 셋이 점심을 먹다가 삼국지 얘기가 나왔다. 조조는 열여섯 살에 도사를 찾아가 자신이 장차 무엇이 되겠냐고 물었다. 태평성대에는 성왕이 될 것이고 난세에는 간웅이 될 것이라는 대답을 듣고 옳다구나 하고 나아가 위명을 떨쳤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하는 공부와 가진 꿈이 맞는가? 우리의 포부가 정녕 이루어질 것인가? 우리도 도사를 찾아가 물어봐야지 않겠나? 요새 세상에 그런 도사가 어디 있나? 계룡산에 있다더라!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 빨리 가보자! 그날 설거지도 미뤄두고 나와서 나는 돈을 빌리고, 친구는 등산 장비를 빌려와 바로 출발했다. 대전역에 내려 동학사 쪽으로 산에 드니 밤이 되었다. 밥을 지어 반주를 곁들여 먹고, 물이 마른 계곡에 텐트를 치고 자는데 폭우가 쏟아졌다. 물은 무섭게 불어나 깜깜한 밤중에 텐트를 걷고, 홀딱 젖은 채 길도 없는 비탈을 수없이 자빠지고 헤매며 도사님, 도사님을 외쳤다. 다음날은 남매탑에서 닭띠 동갑 처녀가 파는 당귀주에 홀려 여비를 뭉텅 써버리고, 식량은 떨어져 쫄쫄 굶으며 사흘 동안 산을 헤매었다. 기도하는 사람을 방해도 하고 이상한 노인과 입씨름도 했다. 결국, 도사다운 도사는 만나지 못하고 갑사로 내려와 식당 주인에게 사정해 밥을 얻어먹고, 길거리에서 구걸하여 차비를 마련해 돌아왔다. 나중에야 신도안 쪽이 유력하다고 들었지만, 다시 갈 순 없었다.     

  경유지에 들를 필요가 없어진 우등버스는 30분 일찍 유성 터미널에 도착했다. 복 받으실 겁니다! 기사에게 덕담을 잊지 않았다. 김 박사에게 일찍 도착했음을 알리고 요기할 데라도 있나 어정거리는데 장 작가도 일찍 도착했다. 대합실에서 그의 소설 『화이트아웃』을 선물 받아 읽고 있을 때 김 박사의 차가 왔다. 학림사 쪽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 9시가 조금 지났다. 김 박사는 계룡산 전체를 환히 꿰고 있어 수시로 설명해 주는데, 변치 않은 이름들이 반가웠다. 계속되는 오르막에서 나를 가운데 세운 두 사람은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산책하듯 걷는데, 나만 온몸이 땀에 젖고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갓바위를 지나고 나타난 바위 위에 활개를 펼친 소나무는 영물이었다. 다가가 경이로운 생명의 나무에 잠시 안기었다.

  신선봉에서 사진을 찍고 남매탑으로 내려오니 아련한 감회가 어렸다. 당귀주를 팔던 움막은 어디였을까, 두 개의 탑은 울타리를 둘렀을 뿐 그대로인데 탑 아래엔 기억에 없는 절이 있었다. 우리는 등산객을 위해 마련된 탁자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김 박사가 취미로 제조한 와인과 막걸리가 곁들여졌다. 김 박사는 삼불봉에 올라 경관을 보여주고 싶어 했는데 나는 이미 무릎이 아팠다. 차선으로 김 박사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심우정사(尋牛精舍)로 안내했다. 나는 십우도(十牛圖 ; 尋牛:소를 찾아 나서다 - 見跡:소의 발자국을 보다 - 見牛:소를 발견하다 - 得牛:소를 붙들다 - 牧牛:소를 길들이다 - 騎牛歸家: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 忘牛存人:소는 잊고 자신만 있다 - 人牛俱忘:소와 사람 모두 잊다 - 返本還源:자연 그대로의 근원으로 돌아오다 - 立廛垂手:거리로 들어가 중생을 제도하다)가 벽화로 그려진 암자를 상상했다. 흰 소의 해(辛丑年)을 맞는 의미와도 맞아 졌다.     

  길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경사가 심하고 눈 덮인 산비탈일 뿐인데 김 박사는 손바닥 넓이의 길을 잘도 찾아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그저 그의 발자국에 발을 얹으려 애쓰며 따라가는데, 나사가 풀린 다리와 짚으면 푹푹 들어가 버리는 스틱에다가 살짝 오른 취기가 더하여 오금을 못 쓸 지경이었다. 눈대중으로 경사가 칠십 도는 되어 보였다. 내가 후들거리며 더디게 가자 뒤에서 장 작가가 “여기서 미끄러져도 죽지는 않아, 나무에 걸릴 거니까.” 농담을 던졌다. ‘그러면 시범적으로 한번 미끄러져 보시지.’라고 대꾸하려는 순간, 분명히 김 박사의 발자국에 얹은 내 왼발이 쭉 미끄러지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얼마나 미끄러지고 몇 바퀴를 굴렀는지 모르는 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뭘 어찌할 수도 없었다. 쾅, 배낭과 어깨가 동시에 나무 밑동에 부딪히며 몸이 멈추었다. 윽, 소리가 저절로 나왔고 당장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심호흡을 한 다음 나무를 붙들고 상체를 일으키려는 순간, 나무를 잡은 손은 맥없이 풀어지고 몸은 다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이번에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뭐라도 잡아보려 했지만, 발버둥질도 되지 않았고 다시 나무에 걸려서야 멈췄다. 스틱 끈은 손목에 감겨있고 스틱이 몸에 깔려 있어 팔을 쓸 수도 없었다. 장 작가가 급히 내려와 손목에서 스틱 끈을 빼내고 뒤에서 받쳐주어서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

  두 번이나 아뜩했음에도 걸을 수 있으니 몇 군데 까지고 욱신거리는 정도야 대수롭지 않았다. 장 작가는 내가 더 용감해졌다고 했다. 험난한 길이 한참 더 이어지고서야 비닐을 둘러친 단칸 너와집 형상의 심우정사가 보였다. 나는 옹색한 법당에 들어가 지갑을 털어 불전함에 넣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삼배를 올렸다. 심하게 다치지 않은 건 쌓인 눈 덕분이기도 했고, 배낭, 선글라스, 옷 덕분이기도 했고, 계룡산의 지기와 지령과 아까 바위 위의 영험 어린 소나무 덕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를 위해준 친구들의 배려 덕분이었다. 인기척에 법당 옆방에서 스님이 나왔다. 까무잡잡하고 자그마한 여승이었는데 말이 고팠는지 쉼 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다. 장 작가가 책을 선물했고 우리는 한글금강경을 보시받았다. 몸과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우리는 천천히 동학사 쪽으로 내려가며 불교 이야기, 소설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학사 아래에 신축한 기와 건물의 단청이 빛나는 끝에 기와마다 올올이 맺힌 고드름이 희붐한 허공을 여백 삼아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다. 이 세상 삼라만상이 시간과 공간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음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러하니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데는 까닭이 있다. 또한, 이 일이 나중에 일어날 어떤 일의 까닭이 되기도 하리라. 상념이 이어지다 보니 이번에도 계룡산이 나를 불렀나 싶었다. 집에 오니 밤 11시 반이었다. 샤워를 하려니 팔다리가 제대로 움직여주질 않고 쓰린 데가 많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김 박사가 일러준 대로 무릎과 발목에 찬물을 몇 차례 끼얹고 세수만 했다. 독한 술을 머그잔에 따라 마시고 침대에 들어가니 온몸의 근육이 속삭이듯 뭉근한 아픔을 전해온다. 아픔이 아니라 살아있으매 뿌듯한 쾌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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