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중국은 지리, 역사, 문화뿐만 아니라 고전문학과 전통사상의 측면에서도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수천 년 세월 동안의 교류와 영향은 냉전 시대를 거치며 단절되었다가, 바야흐로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상호 협력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불과 40년 사이에 중국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지속했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상과 역할은 G2의 반열에 올라 세계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격변의 아픔을 겪고 반으로 잘린 우리나라는 지금도 쉽지 않은 기로에서 여러 문제에 부딪혀 있다. 우리는 활짝 문이 열린 중국을 좀 더 자세히 알고 동반자적 관계를 위한 입지를 세워야 한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제대로 알고 교류하는 일은 날이 갈수록 더욱 긴요해질 터이다. 사드문제, 북핵문제, 무역전쟁 등 어떤 부분에서도 쉬이 예단할 수 없는 이웃나라 중국은 참으로 넓고 깊고 다양한 탐구 대상이다.
신년 벽두에 전국에서 모인 방송대 중어중문학과 만학도 60여 명이 우한대학교에서 2주(25명)와 3주(35명)로 나뉘어 단기 어학연수를 마치고 왔다. 대개의 중국 단기 어학연수가 그렇듯 오전에는 반별로 정해진 교수와 교재로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문화체험 또는 후다오(輔導; 정규 수업 외 개별 지도) 활동을 각 조별로 장소와 방식을 선택해 다양하게 전개하였다. 주말에는 관광이나 관람을 하게 되는데 후베이성은 특히 지척에 갈 곳과 볼거리가 많은 지역이다. 필자로서는 지지난해 안후이성(安徽省) 허페이(合肥)대학교와 지난해 톈진시(天津市) 톈진외국어대학교(天津外國語大學)에 이어 세 번째 어학연수가 되는데 지역과 대학마다 그 나름의 특징과 장점이 있으나 딱히 견주어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이국의 한 도시에 일정 기간 체류하며 그곳의 말과 사람과 문화를 체험하는 일은 늘 새로운 경험이 된다.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漢)대학교는 125년 역사를 갖고 중국에서 10위 안에 드는 명문 국립 종합대학이며 캠퍼스가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봄철이면 벚꽃이 장관을 이루어 일반인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야 한다.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의 3배가 넘는 크기라니 3개 코스의 영내 순환 버스를 타고도 다 돌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학교 안에 산(珞珈山)과 호수가 있고, 시장이 있고 곳곳에 은행과 식당과 상점들이 있다. 우리가 갔을 때 좀처럼 눈이 오지 않는 그 지역에 10년 만에 내린 폭설로 영내 버스가 운행하지 않아 우리는 식당을 가거나 바깥에 나가려면 보통 1~2시간은 걸어야 했다. 모두 1인실 유학생기숙사를 이용하였는데, 번화가와 전철이 가까운 정문(大門)까지는 30분을 가야 하고, 가까운 동문으로 나가면 동호(東湖)라는 엄청 큰 호수가 있고 자전거 길로 길게 이어진 건너편에 관광지로 유명한 매화원(梅花院) 등이 있다.
방학 중인데도 기숙사는 피부색이 각각인 여러 나라 유학생들로 북적였다. 그들보다 향학열에서는 뒤지지 않는 한국의 60세 전후 만학도들에게 우한대학 교수와 관계자들은 점점 경탄했다. 개인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중국어 공부에 욕심내는 한편 주변의 관광지 나들이에도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첫 번째 주말에는 중국 역사와 문학사에 빼놓을 수 없는 동파적벽(東坡赤壁)을 찾았다. ‘적벽’하면 대번에 삼국지의 ‘적벽대전’과 소동파의 ‘적벽부’를 떠올리는데, 이곳에 와서야 ‘원츠비(文赤壁)’와 ‘우츠비(武赤壁)’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가 간 곳은 ‘원츠비’로 ‘동파적벽’으로 알려져 있다. 얼푸탕(二賦堂), 포셴팅(坡仙亭), 류셴거(留仙閣), 베이거(碑閣) 등이 있으며 포셴팅 내부에 소동파의 유명한 ‘염노교-적벽회고(念奴嬌-赤壁懷古; 삼국시대 주유와 소교에 관한 소식(蘇軾/蘇東坡)의 사(詞)이다)’의 초서체가 적힌 서각이 있다.
遙想公瑾當年. 小喬初嫁了, 雄姿英發. / 요상공근당년, 소교초가료, 웅자영발.
아득히 주유가 살던 그 시절을 떠올리니, 소교와 막 혼인하고, 영웅적인 자태가 만발했으리.
‘우한’의 가장 명소이며 ‘강남 3대 명루’의 하나인 ‘황학루(黃鶴樓)’는 삼국시대 오(吳)나라 손권(孫權)이 군사적 목적으로 성을 쌓고 황학루라 하였다고 전한다. 신선이 황학을 타고 올랐다는 전설이 있는데, 도도히 흐르는 장강(長江)가에 자리 잡아 역대의 저명한 시인 최호, 이백, 백거이, 가도, 육유 등의 작품을 통해 천하절경으로 평가되어왔다. 많은 작품 중에 이백이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는 성당(盛唐)대 최호(崔顥, 704~754)의 시가 가장 유명하다. 또한 1927년 마오쩌뚱(毛澤東)이 우창(武昌) 방문 시 남긴 시도 있다. 전쟁과 화재로 십수 차례 중건과 수리가 이루어졌으며, 도교의 명산성지로도 이용되었다. 지금 모습은 1981년 우한시와 정부가 중건을 결정하고 1985년 낙성하였다. 황학루에서 장강대교 건너 오른편 선착장 위의 누각은 청천각(晴川閣)인데, 우왕의 치수(治水)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장강을 조망하기 좋은 위치였다.
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 / 석인이승황학거 차지공여황학루
옛사람 황학 타고 이미 떠나버려, 이 땅에 부질없이 황학루만 남았구나.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 황학일거불부반 백운천재공유유
황학은 한 번 떠나 다시 오지 않고, 흰 구름만 천 년 그대로 유유히 떠도네.
晴川歷歷漢陽樹 芳草萋萋鸚鵡洲 / 청천력력한양수 방초처처앵무주
맑은 내 건너 한양의 나무숲 뚜렷하고, 꽃다운 풀 앵무주에 더부룩 자랐구나.
日暮鄕關何處是 煙波江上使人愁 / 일모향관하처시 연파강상사인수
날은 저무는데 내 고향은 어디멘고, 안개 낀 장강 언덕에서 시름겨워 하노라.
(최호, 황학루, 「한시작가·작품사전」에서 발췌)
중국의 어느 지역에서나 꼭 가봐야 할 곳은 박물관과 공연장이다. 우한대학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호북성 박물관’이 있는데, 천천히 3개 관을 다 보려면 한나절이 더 걸린다. 여기에 ‘월왕구천검(越王句踐劍; 越王句踐自作用劍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음)’과 증(曾)나라 제후 을(乙)의 고분에서 출토된 엄청난 크기의 타악기인 편종(編鐘)이 있다. 복제품 편종을 위시하여 옛 악기로 연주회를 하는데 여느 악기와도 다른 그 소리는 청량하면서도 은은하고 고즈넉했다. 우한의 번화가는 야경이 화려한 한지에(漢街)인데, 그 초입에 한슈(漢秀)라는 엄청난 규모의 공연장이 있다. 세계 3대 쇼에 들어갈 만하다는 그 공연은 입장료가 센 편이었지만, 공중곡예와 수중쇼와 무대쇼가 어우러지는 그 규모와 연출력과 무대장치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태 전 시안(西安)의 장한가(長恨歌)를 보고 혀를 내둘렀는데 그것과는 또 다른 맛의 공연예술이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인 장강 삼협댐(三峽大灞)에 가보길 많은 학우가 원했으나 겨울이라 시간과 조건이 맞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주 팀이 귀국하고 남은 3주 팀 중 일부는 고속철을 타고 위에양(岳陽)으로 가서 그 유명한 둥팅후(洞庭湖)를 한눈에 바라보는 악양루(岳陽樓)와 동정호 속의 섬 군산도(君山島)를 돌아보았다. 악양루 또한 ‘강남 3대 명루’의 하나로 ‘동정천하수(洞庭天下水), 웨양천하루(岳陽天下樓)’라는 영예를 지니고 있다. 삼국시기 동오(東吳)의 명장 노숙(魯肅)이 건립한 군루(軍樓)가 그 시초로 남북조시기에 파릉성루(巴陵城樓)로 개명되었다가 당대에 악양루라고 칭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장구령, 맹호연, 가지, 이백, 두보, 한유, 유우석, 백거이, 이상은 등 무수한 문인들이 시와 글을 남겼으며, 특히 두보의 ‘등악양루(登岳陽樓)’가 뛰어난 작품으로 마오쩌뚱(毛澤東)의 필체로 벽을 장식하고 있다.
군산도(君山島)는 예전에는 배를 타고 들어가던 곳인데, 지금은 다리가 놓여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넓고 볼거리도 많아 셔틀버스를 타고 돌았는데, 천천히 요모조모 살피며 종일 거닐어도 좋을 곳이었다. 순임금의 두 아내 아황과 여영은 요임금의 딸인데, 순임금이 남쪽으로 치수를 나갔다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두 사람도 그곳으로 달려가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이곳은 그 두 비(舜帝二妃)를 기리는 사당과 그와 연관된 유적이 주를 이루었다. 우리는 우한으로 돌아가는 고속철도(高鐵)의 시간에 맞추느라 주마간산 격으로 보고 나올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특히 역사와 관련된 유적지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유머 있고 박학다식한 지도교수의 식견과 재담에 귀 기울이며 시종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가졌다. 좀 일찍 도착한 악양역 대합실에서 담소를 나누며 먹는 값싼 도시락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직업 일선에서 물러나 다시 맛을 들인 만학의 재미는 참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고 실감하는데, 첫째, 교재와 강의를 통해 배우는 학문의 함양과 지적 욕구 실현에 따른 성취감이다. 둘째, 각계각층의 다양한 학우들과 교우하며 자신의 틀을 벗고 낮은 자리에서 새롭게 인성과 사회성을 고양함이다. 셋째, 공동의 목적으로 함께하는 여행을 통하여 낯선 지역의 말과 문화와 풍광을 체험하는 기쁨이다. 단기 어학연수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누릴 기회이다. 공부는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지만, 그 지역이 아니면 체험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세 번의 경험을 통해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허페이(合肥)대학 연수 중 황산(黃山)에 올랐던 감격, 톈진외국어대학(天津) 연수 중 톈진 시내를 가르는 강물 위 유람선에서 본 야경과 톈진 만리장성에 올랐던 사건, 그리고 이번에는 강남3대 명루 중 황학루와 악양루를 보고 또 청천각과 군산도를 본 것이겠다.
어학연수랍시고 다녀와서 여행 위주의 후기를 쓰다 보니 놀러만 다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평일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의 정규 수업과 격일로 오후에 따로 하는 후다오(輔導) 수업을 대하는 만학도들의 학습열은 대단했고 중국인 교수들뿐 아니라 각지에서 온 젊은 유학생들도 감동하였다. 심취한 중국어 학습과정과 재미난 에피소드로 연수 후기를 쓸 수도 있겠는데, 아무래도 나중에는 여행의 기억이 더 선명할 것이다. 감기 환자나 부상자가 생기면 서로서로 약과 음식을 챙겨주고 독려하여 수업과 단체 일정에 빠지지 않게 돕는 동료애는 참 흐뭇하고 아름다웠다. 여행은 특별한 시공을 함께하는 동료와 나눈 교감, 현지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서툰 대화, 재미난 일화와 감탄과 감동으로 완성된다. 아름다움은 도처에 있고 기적은 매일 일어나는데, 사람과 사람은 만나야 한다. 어우러져 보람과 기쁨을 같이 누리는 삶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