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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Sep 28. 2022

주말부부 전쟁 : 남편의 행방불명

두 번째 집에서의 2년(후반전)

남편의 이직으로 인해 주말부부 생활을 시작했다. 장단점이 고루 있지만 굳이 정하자면 '불호'에 가깝다(남편의 의견은 다를 수도 있지만).


처음에는 주말마다 먼 길을 운전해서 왔다가 다시 내려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짠해 볶음밥, 카레, 밀키트 등 덥혀서 먹기만 하면 되는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주곤 했다. 남편 또한 낯선 곳에서 적응하랴, 대학생 때로 돌아간 마냥 작은 원룸에서 지내랴, 우리의 집이 그리운 것 같았다. 금요일이면 업무를 일찍 마무리하고 서둘러 올라와선, 내 회사 앞에서 기다렸다가 함께 퇴근하곤 했다.   


바쁠 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그의 케어와 다정함에 또 쉽게 감동해버린 나는 최선을 다해 남편을 챙겼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행방불명


술과 사람 마다하지 않는 그는 대학원과 회사원 시절에도 간혹 아래와같이 인사불성이 되어 나를 속상하게 했었고, 그때 받은 크고 작은 실망감이나 충격 때문에 트라우마가 맘 한 켠에 남아있다.                  

집에 왔으니 다행



주말부부 생활중에는 알아서 주의하겠거니 간절히 믿었건만, 기대를 보란 듯이 내팽개치는 일이 발생했다.

 

주중 어느 날, 선배님들과 회식이 예정돼있다며 남편이 연락해왔다. 남편이 술자리에 가면 먼저 연락해올 때까지 되도록 카톡이나 전화를 먼저 하지 않는다.


그날은 저녁 8시경 생존신고 카톡 접수를 마지막으로 밤 12시가 넘도록 내 답장 카톡을 읽지도,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으나 나도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고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기에, 포기 후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뭔가 이상했다. 응당 와 있어야 할 사과문 카톡이나 부재중 전화는 흔적조차 없었으며 휴대폰은 평온했다. 화가 났지만, 제 아무리 회식을 거하게 했더라도 출근은 할 테니 나 또한 일단 출근하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9시가 되고, 10시가 되고, 10시 반이 가까워졌지만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에, 어젯밤 내가 보낸 카톡 풍선의 수신확인용 1만이 굳건히 버티고 있다.


그때부터 화보다는 걱정이 앞서고 머릿속에는 최악 시나리오 1,2,3 들이 그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남편은 고지혈증이 있어 입사 신체검사 때도 처방약을 부랴부랴 복용하며 몇 번 재검 후 겨우 통과했는데, 혹여나 과음 후 어디서 쓰러진 건 아닐까. 나쁜 사람이 취한 남편을 어디론가 끌고 가서 해코지 한 건 아닐까.

술 집에서 시비 붙거나 싸움이 난 건 아닐까..


가만있느니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남편이 재직 중인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성함을 자주 들었던 분의 연구실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분이라면 어제 남편의 행적에 대해 뭐라도 아시지 않을까 싶어서. 근데 연결이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편이 사는 원룸 건물의 주인 할아버지께 연락해보는 일이다. 이사해주러 갔을 때 한 번 뵌 적이 있었는데 연락처는 모른다. 방을 구할 때 도움 주신 공인중개사를 지도를 뒤져 찾아냈고 전화를 걸었다. '급한 집안 사정이 있는데 연락이 안 돼서 그렇다'며 미심쩍어하는 부동산 사장님으로부터 주인 할아버지의 연락처를 겨우 알아냈다.


전화를 받으신 주인 할아버지는 다행히 날 기억해주셨고 구구절절 사정을 들으시더니


 "어제 내가 차 세워져 있는 걸 봤고, 다니는 것도 봤는데..."   

 라며 곧장 301호로 가보신다고 하셨다.  

 

 몇 분이 흘렀을까 주인 할아버지로부터 전화가 다시 왔다.


"아무리 두드리고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다"  

 하시며 혹시 문을 열어보아도 되겠냐고 물어보셨다. 곧장 그렇게 해달라 말씀드리곤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할아버지의 전화를 기다렸다.  


전화가 다시 울렸다.


"문을 열었더니 신발이 가지런히 벗어져있는데.. 불러도 대답이 없고.. 솔직히 좀 불길한 생각이 들었어."   

라며 운을 떼셨는데 심장이 철렁해서 발 끝까지 다녀온 듯했다.



".. 들어갔더니 화장실 앞 널브러져 있길래 흔들어 깨워봤어. 다행히 탈이 있는 것 같진 않고 정신 차리는대로 가족한테 연락하라고 했어요."



정말 구세주 같은 할아버지셨다. 아침부터 전화를 해서 실례를 무릅쓴 건 나인데, 문을 딴 것을 되려 미안해하셨다. 번거롭게 해 드려 너무 죄송하고 어려운 일 해주셔서 감사하다 말씀드린 후 전화를 끊었는데 왠지 모르게 안도의 한숨과 눈물이 나서 화장실 칸막이 안으로 몸을 숨겨야 했다.



이윽고, 전화를 걸어온 남편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과음한 나머지 연락 못하고 잠들었다며 횡설수설했다.  


폭발한 나는 정제되지 않은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전화기를 무음으로 해놓는 주제에 알람 못 듣고 출근 못할 만큼 마시고 뻗은 게 그냥 과음이라고 할 수 있는 거냐. 이게 까놓고 성인의 모습이냐, 주인 할아버지가 아침부터 왜 그런 꼴을 볼 수밖에 없게 만들고 무엇보다 같이 사는 나에 대한 예의가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을 수 있는 거냐. 내가 일도 정신없는 와중에 자식도 아니고 출근 안 한 남편 찾아 수소문을 하러 다녀야 하냐"



사실, 남편이 별 탈 없이 무사함을 알게 된다면 그냥 다 용서하고 감사히 생각하겠다고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하늘에 바랐었는데, 내 마음 또한 상황처럼 변해버렸다. 그간 여러 차례 과음하는 술자리나, 적정선을 모르고 마신 채 날 실망시키는 언사를 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나 분노에 불을 제대로 지피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일을 들은 친한 회사 동료 언니 중 한 분은, 어느 하루 나를 부르시더니 포장도 안 뜯은 호신 및 비상용 목걸이(?)를 건네주셨다. 남편에게 주라며 말이다. 갑작스러운 몸의 이상이나 상황이 생겼을 때 목걸이의 버튼 하나만 누르면 미리 지정해둔 번호와, 119, 112 등에 접수가 자동으로 가게 되는 물건이라 하셨다. 내가 하도 행불 남편을 걱정하니 본인도 심장이 안 좋은 남편에게 하나 걸어주었다며 선물 주신 거다.


주말에 만난 남편에게 상황 얘기를 하며 물건을 보여줬는데, 그는 무슨 이런 걸 차냐면서 '너나 차라'를 시전 했다. 그리곤 괜히 본인이 또 한 소리 들은 것 마냥 심통이 나서는 딴청을 피웠다. 예상대로 였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니 포기할까도 싶지만, 자존심 챙긴답시고 상대에게 원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하지 않으면 얻는 것과 나아지는 것이 전. 혀. 없다는 것을 지난 5년간 반복해서 배웠다. 꾹 참고, 내 생각을 얘기해주기로 했다.


긍정적 반응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이 물건을 굳이 보여준 이유는 오빠가 얼마나 동거인인 나에게 불안정감과 걱정을 끼치는지, 내 동료들이 공감을 해주고 있는 정도라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러고 보니 나만 오빠 걱정을 하고 오빠는 부인인 내 걱정을 이렇게까지 해본 적 없다는 걸 깨닫길 바랐어.



곰곰이 듣고 있던 남편은 주섬주섬 상자를 뜯어 조립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 목걸이를 내가 차는 게 더 맞다며 손에 쥐어주었다.


결국 그 목걸이는 누구도 차지 않는 장식용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볼 때마다 선물 주신 선배의 따뜻한 마음과, 부부라면 서로의 안위를 챙길 줄 알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래서 간과하기 더 쉬운 책임을 상기시켜준다.


남편은 행불 사건 이전보다는 '더' 조심하고,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더' 노력한다. 분명한 건 5년 전 신혼 초 대충돌 때보다는 훨씬 더 열려있는 자세로 들을 줄 알고, 미안함을 표현할 줄도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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