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치 않은 '본인상'이라는 세 글자에 일단 눈이 동그래졌던 나는, 성함 석 자를 보고는 놀래 나자빠질뻔했다.
회사생활 중 유일하게, 진심으로 존경해 마지않았던 실장님이셨다. 입사 첫 해 1년간 함께 근무했던 게 전부이지만 그 여운과 영향력은 회사생활 전반에 걸쳐 남겨주신 분이다. 회사에 저런 분도 있구나- 라는 마음속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셨던 분이기도 하다.
실장님을 처음 뵀던 입사 첫 해, 발령받아 도착한 지점은 전임간부와 직원들의 횡령, 부정 담합 거래 등으로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고작 몇 주 전 입사한 내가 주무직원(이라 쓰고 막내라 읽는다)이라는 이유로 홀로 감사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몇 년치 자료 제출이 요구되었고, 본 업무도 파악이 안 됐는데 자료를 뽑느라 넋이 두 배로 나가 있었다.
그 쯤이면 다행이었겠지만 감사반 직원들은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쳐 위압적 분위기를 연출했고, 내가 앉아있는 의자 뒤를 빙 둘러싸고는, 마치 내가 잠재적 공모자 라도 된다는 듯이 자료를 뽑는 마우스 클릭질 하나하나 키보드질 하나하나를 지켜보았다.
어느 하루는 급히 뽑아간 자료 중 일부가 시간 순으로 정리가 안 돼있었던지, 탁자에 올려놓은 종이 뭉치들을 바닥으로 내던지며 역정을 냈다.
"이걸 보라고 가져온 거야!!?"
... 눈앞엔 어지러이 흩뿌려진 종이만 보이고, 내가 여기서 뭘 더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혼돈 속에 갇혀 우물쭈물 대던 그때, 지금의 실장님, 그때 당시의 팀장님이 갑자기 내 앞을 막아서며 나서셨다.
기껏 한 숨 돌릴 겸 국내 지방 지점으로 발령받아 왔는데 골치 아픈 일이 터지니 달가우셨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이 신삥직원이 혼자 버티기엔 무리라는 판단을 하신 건지. 내 직속 차장도, 선배 직원들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데 나서신 거다.
"잠시 기다려주시죠."
본인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임에도 정중히 양해를 구하시곤 일단 내 자리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리곤 자료를 다시 뽑아보자 하셨다. 양이 워낙 방대하니, 내가 인쇄를 하면 팀장님이 그때마다 쌓아서 시간 순서가 섞이지 않게 해 보신다 하셨다. 얼마 간의 작업이 끝나고 감사반 '상전'들에게 다시 들고 갈 때, 팀장님이 직접 자료를 손에 쥐고 가시고 나는 뒤따랐다.
조사실로 소환되어 바리바리 자료를 싸들고 가야 했을 때도, '나도 같이 가자' 하시며 당연스레 동행해주셨다. 팀장님 본인도 이제 전입해오셨지만 최선을 다해 설명하시고 조사를 받으시며 내가 한 발짝 뒤에서 배우고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주셨다.
그 사건은 결국 전임 지점장부터 직원까지 관련자 9명이 해고되고 나서야 마무리되었고 일부는 구치소 수감까지 되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가 얻은 것은 다름 아닌 실장님이라는 좋은 상사였다. 살벌한 상황 속 힘없는 직원을 감싸주시는 모습에 감동한 것도 있지만, 직접 행동하심에 놀랐다. 해당 사건뿐 아니라 모든 업무에 있어서 바로 아랫 간부나 직원을 시킬 법도 한데, 그러기보다 몸소 보이셨다. 무언가 설명이 안 되면 처음으로 돌아가는데 주저하지 않으셨는데, 종이에 천천히 써 내려가며 설득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랫 직원들에 대한 벽도 없으셨다. 일례로, 간부급들끼리 주고받는 회사 중요 현안들에 대해서 마치 당연히 내가 알고 있다는 듯 본인 의견을 자주 피력하시곤 했는데, 알은 체라도 하기 위해 서당 개 1년 세월 동안 그렇게 습득하고 관심을 갖게 된 현안들이 늘어갔다. 한 차례 아픈 시간이 훑고 지나간 우리 사무실에선 실장님의 온화한 리더십이 그렇게 빛을 발했다.
실장님은 술을 드시지 않는 분이었다. 정확히는 잘 못 드셨다. 노력해보셨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안 되신다며 사이다를 소주잔에 따라 드시며 멋쩍게 웃으시곤 했다. 업무 자체보다는 술자리에서 많은 역사가 꾸려지고 승진을 위한 발판 및 정치판이 벌어지는 우리 회사에서 '비음주자'로서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오직 '일' 뿐이셨을 거다. 능력과 영어실력을 인정받아 중동 등 해외에서 중요 계약을 성사시키며 보내신 세월이 대부분이셨고, 그래서 어린 딸 둘 그리고 사모님과 함께한 시간이 많지 않으셨다.
이제는 그때 보다도 더 높아지셨으니, 가족분들과 조금 더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계시기를 바랐었건만 난데없는 부고 문자라니.
한 달 전쯤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것이 떠올랐다. 실장님은 늘 그렇듯 붙임성 없고 먼저 잘 연락할 줄 모르는 직원한테 잘 지내냐며 전화를 주셨다. 현재 지방에서 근무 중이신데 아버님을 모시고 사신다 했다. 몇 년 전 실장님 모친상 문상을 갔었는데, '남아계신 아버님께 마지막 효도를 하시려나보다.' 생각했다.
부고 문자를 받은 이튿날 아침,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보니 2년 전 실장님 어머님 장례가 치러진 곳이었다. 어머님을 보내드린 장례식장에 이렇게 금방 직접 오시다니. 기가 찼다.
옷매무새를 다듬으려 화장실에 들렀는데, 반쯤 열린 창문으로 곡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정말 뱃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처음 듣는 정도의 서럽고 억한 심정이 절절이 담긴 소리였다. 애가 끓는다는 게 이런 걸까. 분명 사모님이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마도 가까운 곳에서 실장님의 입관이 이루어지고 있는 걸 거다.
빈소에는 예상대로 사모님과 따님들이 안 계셨다. 같은 사무실 분들이 그나마 자리를 지켜주고 계셨다.
일주일 전쯤부터 소화가 잘 안 되신다 하셨고 금요일 오후까지 잘 버티시곤 피곤하시다며 마지막으로 회사를 나서셨다고 한다. 새벽에 깨어나 하반신 마비를 인지하시고 아버님께 알리셨는데 119가 아닌 근처의 여동생 댁에 연락을 하셨다고 한다. 아마도 이렇게까지 중대한 긴급상황일 거라 예상을 못하셨던 것 같다. 연락을 받고 온 여동생의 차편으로 인근의 중소병원으로 뒤늦게 도착했지만, 더 큰 병원으로 이동 조치가 내려졌고 대학병원에서 대기하시던 중 심장마비가 왔는데 소생이 안 되셨다고 했다.
새벽 무렵 여기저기 전전하시며 실장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제가 마지막 출근이었다는 걸 직감하셨을까. 사모님, 따님들과 지난 주말 헤어질 때가 마지막이었다는 건 받아들일 수 있으셨을까. 굳어져 가는 몸을 스스로 인지하며 얼마나 두렵고 버거우셨을까. 매사 긍정적이고 온화한 태도를 가지셨지만, 속으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와 격무에 지치셨기에 돌연 이렇게 가셔야 했던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황망함과 하늘에 대한 야속함에 장례식장 로비에서 몇 시간을 앉아있었다.
산다는 것은 죽음을 향한 한 발짝이구나, 정말 언제 가게 될지 감히 알 수가 없는 거구나. 외할아버지를 보내드리며 느꼈지만, 그새 잊고 살던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