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키워키 Sep 28. 2022

밥좀 혼자 먹고 싶어요.

대부분의 우리회사 사람들은, 특히 기성세대분들은 혼자 보내는 점심시간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밥을 혼자 먹는 것을 싫어한다. 밥을 함께 먹으며 친목을 다질뿐 아니라 나는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 같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본인의 인맥현황을 보여주려는 정서도 작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식사자리의 '질' 보다는 빈도나 점심약속의 존재 자체에만 연연하는 경향이 있다. 구내식당에 가더라도 무리를 지어 함께가고, 한 곳에 모여 먹곤했다.


사회생활의 일부이며 다수의 생각이 그러하니 나 또한 제안해주시는 자리는 거절 없이 다 나가곤했다. 그러나 먼저 만들거나 주도하는 자리는 거의 없게끔 했다. 일단 나간 이상에야 MC모드로 돌변하는 스스로가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 자리의 주최자도 아니면서 '예의'라고 믿는 오지랖을 한껏 발휘해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했다. 연배와 직위, 성별에 따라 맞춤형 주제들을 제시했고 질문했다. 무슨 얘기를 하든 나의 경험을 비춰보면서 공감대를 형성했는데 이왕 만난 사람들이니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아야만 시원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요구한 것도 아닌데, 나는 그냥 절로 그렇게 생겨먹고 작동하는 대화 머신이었다.


적어도 밥을 먹자고 제의했거나 그 자리에 초대받아 앉았다면 적극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럴 의사가 있는 대상과 그럴 의지를 갖고 모여야 비로소 돈과 시간을 쓰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불행히도 회사에 만연해 있는 밥 문화는 이보다는 가벼운 의미인듯 했다.


주로 어떤 자리든 MC를 맡는 사람은 정해져있는데 우리 부서의 경우 나나 S선배, K선배 등이다. 그래서 그 선배들과 밥을 먹을 때가 가장 편했다. 이외 먹자고 했으면서 마치 돈을 내는 것이 모든 것을 커버하고도 남는양 우리의 핑퐁 대화들을 가만히 듣고만 있는 사람. 돈도 내지 않으면서 본인이 흥미없는 주제가 나오니 곧장 폰에 코를 박는 친구도 있었다(나도 MZ세대지만, 정말 요즘 것들 소리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반대로 내 이야기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때 리액션 노동을 센스있게 분담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들도 야속했다.


물론 내가 원하는 적극성을 쌍방 모두가 가진 자리도 당연히 있다. 진심으로 타인의 이야기에 몰입하스스로의 마음도 터놓는. 이 경우 느끼거나 배우는 것이 있었으며 자연스레 다음을 기약하게도 되었다.


그러나 많은 식사 자리가 에너지를 앗아가는 느낌이었다. 가만 있자 다짐 했다가도 침묵을 견디지 못해 다시금 사회자 역할을 자청하게 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는 그래서인지 기가 빨렸다. 딱히 무슨 얘길 했는지 집어낼수 없는데, 1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이유로 '친해졌다'여기는 사고방식은 수긍하기가 끝내 어려웠다.




나를 비롯한 '자발적 사회자' 들은 어느 날 이에 대해 터놓고 얘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무척이나 크게 공감대 형성을 했더랜다.


한 선배는 오죽하면 고요한 점심을 위해 '결혼 다이어트겸 당분간 도시락을 혼자 사무실에서 먹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매일 같이 점심을 먹던 '짝꿍'이 삐졌버렸다. 꼭 도시락 먹어야 하냐며, 점심 때마다 나가서 외식하는 게 낙이라고 했단다. 아니 혼자 나가도 될텐데..


굴하지 말고 점심시간만큼은 주체적으로 운영하자며 혼자 먹는 점심에 도전을 하기로 했다.


왕따로 보일까 잠깐 소심해지기도 했지만, 구내식당에 혼자 내려가서, 혼자 먹었다. 물론 혼자 먹는 나를 보고 놀란 중년 아재선배들이 식판을 받자마자 우루루 곁에 와 앉으셨지만. 먹자마자 각자 갈 길 가는 남자선배들의 문화 덕분에 혼자 회사 주변 돌기까지 완수했다. 무리지어 걸어다니는 선배들을 발견하고 황급히 방향을 꺾어  돌아서 왔지만 괜찮은 성과였다.


처음이 어렵지 조금씩 바뀌는 내 마음가짐처럼 그들의 시선도 바뀌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빨린 기를 충전해야 또 쓸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선배님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맙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