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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Sep 28. 2022

두 분을 보내드리며

모르겠고, 일단 휴직.

외할아버지와 실장님을 연달아 보내드리며 처음으로 '죽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주로 내 머릿속에는,

 

이사는 어디로 가야 할지, 집은 언제 마련할 건지, 이번 달에는 저축을 얼마나 하고 내년까지 얼마를 모을 수 있을 것 같은 지, 아이는 언제 낳아야 최선일 지, 남편은 수도권으로 이직할 수 있을지, 지금 부서에 언제까지 있을 수 있을지, 이 회사에 언제까지 다녀야 할지, 뭘 배워야 나중에 써먹을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자문들이 가득해서 실제로 두통이 느껴지고 잠이 오지 않을 때도 꽤 많았다.

 

어려서부터 고민 뺀 내 인생은 상상할 수 없었고, 걱정은 세트였다.

 

하나가 해결되면, 곧장 또 다른 한 개의 미션을 일부러 끄집어내선 끙끙거렸다.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고 나면 집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집을 마련하고 나면 아이를 키우고 싶어지지 않을까, 남편이 수도권으로 돌아오고 나면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좀 더 나은 학군에서 교육받을 수 있게 이사를 해야겠지... 영어유치원은 어느 동네에 있더라... 그전에 부서이동을 신청할까..

 

내가 살고 있는 이 하루가, 현재가 뭘 위한 것이냐 묻는다면, 모두가 '나중'을 위한 것이었다. 근데 정작 그 대단한 나중이라는 게 뭘 의미할까 생각해보니,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된 '편안한 노년' 쯤 되려나, 도무지 또렷한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어느새부턴가 머릿속을 꽉 채운 고민들에게 현재를 내준 채 살고 있었으면서, 왜 그렇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그림이 없었다.

 

즉, 나한테는 쳇바퀴의 관성만이 남아있고 내가 햄스터인지, 다람쥐인지 왜 이 바퀴를 굴리고 있고 이 바퀴가 어디를 향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거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정신은 언제인지 모를 미래 어딘가에 가있고, 현재를 담보로 미래를 살고 있었다.

 

회사 생활도 어느새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울고 웃게 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고, 공기업 사무직으로서 경험해볼 수 있는 대부분의 직무를 다 겪어보았다. 승진을 향한 도전은 도저히 욕구와 의지가 생기지 않아 진작 접었다. 나보다 어린 직원들도 물밀듯 들어와 이제는 막내 축에 낄래야 낄 수가 없다.

 

가만있는다면, 내년 이맘때쯤에도 내후년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어느새 20주년을 맞고, 퇴직예정자 교육에 참석하겠지.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살면서 다른 결과가 펼쳐지길 바란다면 정신이 나간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뼈 때리는 격언을 되새기며 마침내 다짐했다.

 

다르게 살아보자. 소속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기본에 충실하며 순간순간을 오롯이 느껴보자. '나'의 생김새와 이름으로 사는 동안 좀 더 다채로운 경험과 배움을 얻자.

 

몇 개월간의 고민과 준비, 업무 인계인수를 거쳐 나는 1년의 휴직을 시작했다. 그리고 살림을 정리하고 남편이 있는 지방으로 이사했다. 함께 '행복하게' 살아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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