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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Sep 29. 2022

하루에 한 마디도 안 하는 삶

극내향형의 행복

휴직 전 나는 하루에 정말 많은 말을 해야했다.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단 업무적으로는 직원들의 복지와 급여 제반사항, 4대보험 등을 담당했기에 그들로부터 내부 민원전화를 받아야했다. 적게는 열 통 많게는 50통이 넘어갈 때도 있었다. 그 이전부터도 내부 민원과 밀접한 업무를 해왔었다. 회사 내에는 외부민원 보단 내부민원을 상대하는 것이 낫다는 의식이 지배적이었으나 내부민원 담당의 경우 업무 해결뿐 아니라, 친밀하고 사적인 대화도 반드시 곁들여야 한다는 고충이 있다. 왜냐? 그에따라 본인 평판이 갈리기 때문이다. 실제 업무 능력이 아무리 좋을지언정 살갑고 붙임성있는 응대를 덧붙이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고, 되레 욕을 먹는 분위기였다.


"걔는 일은 그냥저냥하는데, 좀 정이 없어~" 이런식이다. (실제 내가 들었던 말)


문제는 한 번 입사하면 끝을 볼 때(정년) 까지 대부분 다니는 우리 회사의 특성상 무조건 나이=서열 이고, 수두룩한 선배님들은 말동무를 회사 안에서 그렇게나 찾아댄다는 것이다. 모든 조직이 그렇다지만, 내가 몸 담아봤거나 친구들이 몸 담고있는 타 조직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 회사 사람들은 특히 남 일에 관심이 많으며 본인보다 어리고 젊은 직원들이 '주요 세력' 이 되는 것을 불안해했다. 우리 조직에서 MZ세대란 말이 화합이고 협력이지, '경계해야 할 대상'들이었다. 게다가 난 남의 시선에 매우 민감하고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점차 안 그러려고 노력중이지만.)


그래서 더욱이 가면을 썼던 것 같다. 처음 전입왔을때 나를 향했던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를 잊지 못해서. 그리고 보수적인 이 조직에서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에. 어느 샌가 가면을 쓰고 원래 얼굴인냥 생활하고 있었다. 그 분들의 사생활이 그다지, 어쩌면 하나도 궁금하지 않지만 처음에는 궁금한 척 했고, 나중엔 나도 모르는 새 '관성' 비스무리한 걸 갖게 됐다.


자녀와 싸운 문제는 어찌되었는지, 남편과 다툰 건 해결되었는지. 집을 파신다고 했는데 잘 되가는지, 학원 설명회는 어땠는지 등등... 관심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는, 내 세대의 문제가 아닌 윗 세대들에게 그렇게나 파고들어 관심을 기울이곤 했다.


처음엔 애를 써야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힘들지가 않았다. 내가 한 마디 던져놓으면 알아서 본인 얘기를 줄줄 어놓으시는 거다. 거기서 내 마음이 동해 나까지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야말로 1시간 '순삭'이었고, 우리는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거였다.


그렇게 나는 '요즘 애들 같지않다' 는 영광의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고, 어른들 사이에서 신뢰높은 직원이 되었다. 애정과 배려를 한껏 받았다.


또래 직원들이 많아진 이후에도 되려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신 언니들, 아저씨들과 매일 이야기하고 주로 식사하는 삶을 택했다. 또래들과 마음 편히 놀고 몰려 다니는  기성세대 선배들을 서운하게 할 것 같았고 그냥 뭔가 익숙치 않았다. 조숙하다는 평을 어렸을 때 부터 종종 들었기에, 내 특징인가보다 하며, 잘 살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 출근할때 정말 죽을 것 같이 피곤했다. 그냥 그저그런 일상의 피로가 아니라 정말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어서, 지각하지 않는 마지노선의 마지막 1분까지 침대에 있다가 세수도, 화장도 하지 않은 채 출근하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체력이 떨어진줄알고 퇴근 후 남은 힘을 쥐어짜 필라테스를 하고, 골프채를 들고 주변 연습장까지 걸어가선 연습 하곤했다. 되도록 저녁도 직접 만든 집밥을 먹었다. 그러나 컨디션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옷은 월,화,수,목,금 다섯 벌만 정해두고 아침마다 돌려입었고, 머리는 전 날 감고 자서 대충 말라있는 상태에서 고무줄로 질끈 묶었다. 옷을 사고 싶거나, 머리를 하고 싶다거나, 먹고 싶은 게 있지도 않았다. 오직 빨리 퇴근해서 드러눕고 싶었다. 한 가지 더 특이한 건, 10월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너무 추워서 매일 솜이불을 덮고 자야했다. 11월이 되자 사무실에서 제일 먼저 롱패딩을 꺼내입었고, 다들 안 덥냐며 놀려댔지만 그 정도로 몸이 뭔가 이상했다.


미스테리는 의외의 곳에서 풀렸는데, 검진 차 찾아간 산부인과에서였다. 갑상선기능저하증. 이상했던 모든 게 설명되었다.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가 체온조절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곧장 약을 처방받아 매일 먹기 시작했고 의사샘은 추후 임신, 출산 등을 위해서도 꼭 고쳐놔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위대한 호르몬 약을 몇 달 먹고 나니 수치는 정상화 되어갔지만, 그 기간 중 휴직을 생각하게 됐다. 주말부부 생활을 하며 이어지는 남편과의 다툼도 지겹고 회사에서는 업무적, 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줘야한다는 주제 넘은 각오로 지내왔는데 명백히 버거워졌다. 괜찮은줄 알았던 몸은 생전 앓지않던 호르몬 불균형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이를 가지든, 혹은 딩크로 살며 다른 꿈을 향해 나아가든 지금은 정신적, 신체적인 난관에 봉착한게 분명했다. 한 개씩 고치고 싶었다.


남편에게 의사를 전달하자 원래도 쿨한 성격이지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응했다. 그리고 예상밖으로 반기기까지 했다. 혹여나 내 휴직이 가져올 '경제적 손실'을 따져 꺼려하지 않을까 우려됐는데, 기우였다. 다행이었다.


'내가 사는 곳으로 네가 와 준다면 정말 고마운 일' 이라며 집을 알아보고, 이사를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내가 휴직하기 전 부모님 댁에 얹혀사는 동안 매 주말마다 상경해주었다.


그렇게 무엇에 홀린 듯 갖게 된 1년의 휴직.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 친구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격려 속에 마침내 10년 만에 찍게 된 쉼표.


요즘들어 회사동료들, 친구들이 종종 연락해서 물어온다. '아는 사람 없는 타지에서 너무 심심하지않냐'고.


나는 정말 너무 괜찮다. 그리고 심심해서 좋다. 하루에 한 마디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은 처음이라,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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