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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Sep 27. 2022

엄마 나 이제 뭐하지? 3/3

1년 좀 넘는 지방생활을 뒤로 하고 꿈에 그리던 근무지 이동에 성공했다.


당시 내 옆엔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입사 이전부터 함께해준, 교제한 지 5년이 돼가는 남자 친구, 지금의 남편이 있었다. 타지 생활을 하며 유아독존 + 내성적인 나에게도 엄청난 외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고 난생처음 그 외로움을 마주하느라 뻘쭘하고 낯설 때, 단 하루도 거르지 않는 전화로 내 마음을 달래주던 착한 사람이다.


이제부턴 엄마의 배웅 속에 출퇴근하고, 주말엔 남자 친구와 맛집 데이트를 하며 미래를 논하면 되는 거였다. 평일에도 지인과의 약속을 잡을 수 있고, 더 이상 일요일 저녁마다 버스 타고 5시간을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온전한 주말을 비롯한 손꼽아 고대하던 일상이 내 것이 되었다. 정말 감사해야할 일이었다.


그런데 너무 허전했다.


해가 거듭하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주먹구구식으로 배운 컴퓨터 문서 기술과 20여 년 간 가정에서 교육받은 "사회생활을 위한 기본적 예의" 를 활용하여 직장에서의 생명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조직은 내가 평생 있을 곳이 아니란 생각이 머리 속을 전세 낸 채 나갈 줄 몰랐다. 근무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신발을 신어 발과 신발 모두가 고역이듯, A행성이 B행성과 공전 궤도가 달라 영원히 맞딱뜨릴 수 없듯,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가진 라디오 채널들이 절대 동시에 또렷하게 흘러나올 수 없듯, 나라는 사람은 이곳에 어울리지 못한다.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다.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비축하는 내향적 성향 영향도 있지만, 몇 년이 지난 후 곱씹어도 상식 이하 희롱과 언사로 멘탈을 흔드는 사람들을 겪어왔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좋은 사람들이 나에게 미친 영향과 기운보다 큰 잔상과 상처를 남겼다.


그들이 아무리 부조리하고 비상식적일지라도 회사 안에서는, 그것도 공기업이라는 공고하고 단단한 담장 속에서는, "조직의 생리" 이자 "관행" 으로 소화가 되고 용인이 되는 것을 계-속 봐야했다.



"그럼 너는 그렇게 살지 않으면 되잖니"


엄마를 비롯한 나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었다. 상관말고 "마이웨이" 하라는. '그래도 되는 직장'이지 않냐는 예상했던 타이름이자 위로였다.


그랬다. 눈을 감고 이 조직이 주는 이점들을 취하되 닮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면, 어쩌면 그러면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언제부터인가 나를 숨긴 채 어울리고 견딜 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척'일 뿐이지 않나. 부여받은 시간 동안 가면만 쓰고 살다가는 건 너무 버거운 일이다. 쌩얼로 살아보고 싶다.




이 커다란 절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중은 나이기에, 더 이상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비판의식과 고민으로 인한 부정적 기운을 전염시키지 말고 터전을 옮겨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선후배들이 나에게 공감해주고 힘이 되어주기 위해, 함께 슬퍼해주거나 울분을 토하느라 "감정 노동"을 하고 있단 점을 어느 순간 깨닫기도 했다. 그랬기에 수없이 이직에 도전했고 직장에 쏟던 관심과 에너지를 분산시킬 다른 곳을 찾아헤맸다.


몇 년 간 고민뿐이었지, 아무것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다른 것을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아서,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갑자기 끊기면 좋아하던 여행을 다니지 못할까 봐, 남들이 좋다는 직장 박차고 나가선 그토록 겁냈던 백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기에, 학위를 위해 고군분투 중인 남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까봐, 엄마의 큰 자부심인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딸' 포지션을 차마 저버릴 수 없어서. 무엇보다 엄두가 나지 않았고 용기 내지 못했다. 박차고 나가 다시 땅을 일굴 힘이 남아있노라 장담할 수 없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어느 순간 심각한 수준의 경각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조직 안에서 극렬하게 혐오하는 인간유형들과 나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매일의 쳇바퀴를 굴리며 주말만 바라보는 삶을 살면 1년은 금방 10년이 될 것이란 위기감이 들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왜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돈 벌기 위해" 외의 다른 이유를 진.심.을 담아 읊을 수 있는 업(業)을 절실하게 찾고 싶다.


고민끝에, 나에게 괴로움과 가르침을 동시에 줬던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은 세상 도처에 또 존재할테니 내 경험과 생각을 공유해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제 내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 소멸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사람 인(人) 과 사이 간(間)이 합쳐져 인간이 완성되듯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비로소 인간다울 수 있다고 한다. 나 또한 좋든 싫든 사회생활을 통해 맞딱뜨린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고, 지향하는 바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마음 속을 틈날 때마다 정리하여 정제된 기록으로 갖고 있으면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쓸 때 근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 때가 많던 사회생활도, 새로운 페이지를 향해 발을 떼는 순간 과거가 될 수 있다. 나의 끝은 여기가 아닐 것이란 다짐을 상기하니 일상속에서도 여유있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


"엄마, 아빠, 오빠 나 이제 뭐하지?, 이 길이 정말 아닌 거 같다는 확신이 드는데..."


지겨우리만치 내 고민상담 요청과 질문에 지쳤을만도 한 우리 엄마, 아빠, 남편을 위해서라도 이젠 내 안에서 답을 찾을 때다.


이렇게 계속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은 온다더니 서른이 오기 전에, 그래 뭐라도 하자!




(이렇게 야심차게 써놓고선, 이제 곧 서른 넷. O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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