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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Sep 27. 2022

환영식이라 쓰고 아수라장이라 읽는다.

연고 없던 타지에서의 회사 생활이 시작되던 참에, 격하게도 환영식을 열어준 K차장을 잊을 수 없다.


근무지도 배정받지 못해 불안에 떨던 나와 내 동기들은 밥 한 끼 사주겠다던 그를 덥석 따라갔다. 1차 삼겹살 식당에서의 식사는 평범한 듯 했지만, 돌이켜보니 K차장 본인 과거얘기를 주로 들었다. '과거에 총애했던 여직원이 호의를 오해한 나머지 성희롱 혐의로 감사를 의뢰해서 아주 괘씸하다'는. 챙겨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을 뿐인데 그렇게 배신을 하냐며, 결론은 '너희는 그러지 말라' 였다.


군기바짝 신입모드였던 우리 동기 일행은 사건 진위를 떠나 상심하셨을 그의 마음을 위로하며 편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 걸까. K는 1차식당에서 나오자마자 한 블럭정도 떨어진 곳의 화려한 네온사인들을 가리키며 2차는 저기로 가자며 이끌었다.


그의 손이 향한 곳엔 휘양찬란한 나이트클럽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슬슬 불길함을 느꼈고 이미 늦은 시각이니 여직원들은 빠지고자 했다. 근데 본인 학교후배인 S언니는 꼭 데려가겠다며 고집을 피우는 통에 차라리 전원이 2차에 참석하기로 하였다. 2차장소는 주점식 노래방이었다.


사단은 거기에서 터졌다. 한 눈에 봐도 '거한' 노래방에 단골인 티를 팍팍 내며 입장한 K차장은 테이블을 중간에 하나 두고 ㄷ자 쇼파의자가 배치된 방으로 우릴 이끌었는데, 본인은 정중앙 자리에 앉아 "남자 대 여자로 미팅하듯이 마주보고 앉아!" 라며 신이 난 채 지시했다.


흥분한 K는 사람을 부를때 더이상 OO씨 혹은 ㅁㅁ아 가 아닌 성씨로만 띡띡 불러댔고 왕놀이에 박차를 가했다. "야 최! 너 좀 대답이 늦다", "김 너 어디서 왔댔지.", "송, 너 더 마셔." 식으로. 노래가 시작되자 맥주 궤짝이 계속 들어왔고, 마셔도 마셔도 줄어들질 않았다. 한껏 흥이 난 K차장은 테이블 위로 신발을 신은 채 올라 뛰어다니며 중앙무대와 본인 자리를 왕래했고, 우리에게 '집적'대기 시작했다.


특히 기이했던 그의 행태는 다음과 같다.

- 두루말이 휴지를 풀어서 사람들에게 말아주거나 허공에 뿌리기.

 (내 어깨와 허리를 엇갈리게 감싸서 말아주곤 '미스코리아 같다 너' 라고 했었다.)

- 제 입을 귀에다 대고 귓속말 하기

  (나한테는 "여기 발령 받아서 좋아..? 좋지? 좋잖아" 라고 속삭(?)였다.)

- 노래하는 여직원 벽에다 밀치고 부비부비

  (S언니가 당했다. 몸서리를 치는 언니한테 계속 들이댔기에 남자 동기들이 K차장을 제지시키려 노력했다.)

- 급소 가격

  (노래를 하고 있는 동기오빠의 급소를 발로 가격했다.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음. 오빠는 주저 앉았다가

   열 받아서 뛰쳐나갔다.)


말 그래도 아수라장 이었다.



그 때 드라마처럼 한 동기의 조모상이 터졌다. 300Km에 달하는 거리를 밤 10시에 달려가려면 누가봐도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할 터였다. 나가 보겠다는 동기를 핑계삼아 우리 또한 다같이 가방을 급히 챙기고 택시를 잡아주러 함께 나갔다. 머릿 속엔 '이 틈을 타 무조건 파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상 당한 동기를 보낸 후 상황이 정리되나 싶던 찰나, K차장을 수행해온 B대리가 우리 모두를 다시 노래방 안으로 집결시켰다. 마음 가라앉히려 화장실에 가니 머리를 늘어뜨리고 매서운 화장을 한 도우미 언니들이 세면대에서 비켜주질 않는다. 심란했다.


잠시 숨을 돌리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보니 화가 잔뜩 난 K차장이 말했다.

 너네가 동기의 슬픈 일에 함께 슬퍼해주는 건 보기 좋아.  
근데 그건 그거고, 이제 애도의 뜻을 담아 슬픈 노랠 불러!

지금 생각하니 실소가 터지는데 그 때는 왜 그리 절망적이던지. 비상식의 끝을 본 것 같았는데, 정말 저건 시작일 뿐이었다. 모두가 쓰러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끝났다.




이후 이 사건이 소문나자, K차장은 그 날 참여인원중 '여직원들한테만' 메일을 보냈다. 심지어 그 날 몸이 안 좋아 참석하지 못한 여직원 2명도 수신인에 포함함으로써, 결국 본부 내 여자동기들에게만 메일을 보냈다.


제목 : 몇자 적습니다.
(생략) 정말 화가 많이 납니다. 그 날 집에 일이 있었는데..여러분들과 함께 얘기하고펏습니다. 원래 스케쥴이 있었는데, (생)구구절절(략) 어렵게 취소를 해가면서까지 삼겹살에, 술에, 노래방에... 그 날 뿌듯했고 기뻤습니다. 근데 돌아오는 말이 성희롱 유의자더군요. 경고합니다. 주의하세요. 지금까지 대략 들으려했고 또 그로인해 맘 아팠던 것은 이 메일을 드리는 순간으로 끝내겠습니다. 그러나, 한 번 더 어떤 경로든지 제 귀에 들어올 경우 회사에 정식으로 감사조사 의뢰하겠습니다. 문제를 삼겠다는 말입니다. 여긴 잠깐 말이 와전되어도 술한잔 먹고 아님 커피한잔 하면서 대강 풀수 있는곳이 아닙니다. 응당 말과 행동에 조직인으로서 책임을 져야하는 곳입니다. 저는 직원때부터 명예, 승진, 돈, 영향력,,, 그중에 명예를 가장 중시했던 사람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겁니다. 없는 시간내서, 돈들여가, 이런저런 이야기 했던 말들, 행동에 지금생각해보니,,, 깊은 조소와 또한 자괴감을 느낍니다. 댓글살인이라는 말을 실감하면서..(생략) 이 메일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 있거나 당일 어떤 사실이 있었음에도 은폐, 말로 때우는 듯한 생각이 드시는 분은 정식으로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호의를 이렇게 받아들이다니 앞으로는 신입 직원들 챙겨줄 필요 없다. 이게 답입니다.
No Reply!!! Please
-OOO 드림-


해괴한 메일이었다. 이의 있으면 말 하래놓고 'No reply PLZ' 라니. 맞춤법, 띄어쓰기에도 성의가 없어 한숨이 나왔다. 업무 익히느라 바빠죽겠는데 갑작스러운 메일 테러에 어이가 없었다. 감사의뢰 당할 사람은 본인인데 우리한테 경고를 한다니? 남자 동기들도 화가 났는데 왜 여직원들만 골라서, 심지어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여자동기들까지 포함해서 오직 여자들에게만 그 메일을 보냈는가. 그 날의 일을 '여직원들의 근거없는 모함' 정도로 격하시켜 억울하다는 프레임을 쓰려는 거겠지. 스스로를 '소문에 희생된 마음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며 피해자 포지션에 놓으려는 뻔뻔하고 비겁한 의도가 메일에 잔뜩 묻어났기에, 읽는 내내 미간이 오그라들었다. 삼겹살집에서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여직원 뒷담화를 할 때 진작 눈치챘어야했는데, 이상한 놈이란 걸. 한 번 진상 피웠으면 되었지, 메일까지 보내서 협박을 하다니 정말 패주고 싶었다.


폭발한 나는 밤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그 날 일을 시간 순으로 정리했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 회식장소에서 앉았던 자리 배치도도 그려두었다. 정식 사과하지 않으면 나야말로 감사과나 외부 경로로 신고하겠다는 대응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한 동기가 인사과에서 성희롱, 징계 등을 담당하는 학교선배가 있다며 도움을 주어 신고절차도 익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뜻밖의 난관이 닥쳤다. 가장 많은 심적, 물리적 피해를 입었을 것 같은 한 명을 포함한 일부가 불이익을 받을까 고민된다며 주저한 것이다.



나 또한 폭발한 분노를 원동력으로 엉겁결에 여기까지 끌고왔으나, 모두를 등에 업어도 겁날 판인데 몇몇이 주저하니 맥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 구실로 시간이 흘러갔다. 그 날의 기록과 K차장의 망언 메일만 고이 쥐고 분노를 삭히며 신입의 바쁜 하루하루는 지나갔고, 안타깝게도 통쾌한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몇 년 후 우연히 알게 된 그의 행방이었다. K차장이 속한 부서에 연락할 일이 있어 인트라넷 조직도를 보던 나는 그가 사라졌음을 발견했다. 전근 갔겠거니 그의 이름 석 자를 검색해보았더니, 아예 안 뜨는 것이 아닌가. 그가 사라졌다. 수소문 해보니 다른 일에 또 연루되어 지병을 핑계로 퇴직했다고 했다. 급하게 회사 코 앞 의원에서 떼온 진단서로 지병 이야기를 했다는데, 그는 아주 멀쩡했고, 다들 안 믿는 눈치라고 했다. 더 긴밀한 정보로는 퇴직 전부터 주변 직원들에게 빚을 졌다고 했다. 어느 시나리오가 진실이든 간에 말이 명예퇴직이지 불명예퇴직이 분명했다. 명예를 가장 중시한다던 그가, 명예만큼은 지키지 못한 것 같았다. 진실되지 못한 말로가 꼭 그 사람 다웠다.




아무리 힘 없는 신입이라 한들 비상식적 언행에 기죽고 눌릴 필요까지 있었을까. 그 때 그를 찾아가서 우리가 왜 그 저녁이 힘들었는지에 대해 또박또박 말했다면 일말의 반성이라도 했을까. 돌이켜보면 후회스러울 때가 있지만 기억을 지우고 10년 전으로 순간이동 한들 또 그 즈음에서 멈출 것 같다.


지난 일이 후회 된다는 건 그만큼 달라지고 있고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믿는다. 10년 전은 '당하고도 아무 말 못하는 경험'을 해보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이후로 경험하게 될 수 많은 '을'의 서막이었다. 덕분에 어디까지 참는 것이 맞는 가에 대한 기준이 생기기 시작했고, 지나고나서 이렇게 누군가에게 얘기해 줄 수도 있다.


K차장, 우리에게 늘어놨던 삼겹살집 한탄처럼 어디엔가에서 또 우리를 안주거리 삼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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