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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Sep 27. 2022

회사에서 가족과 친구를 찾으시면 안 됩니다..

지나고보니 애잔한 언니 : Y대리

연고지로 발령받아 첫 출근하던 날. 팀장님 예하 전 부서 직원이 회의실에 모여 돌아가며 첫 인사를 나누던 때에, 내 귀에 자꾸 심심찮게 들리던 그 이름 Y.


"Y씨는 출근 아직 안했나?"

"Y씨 오면 따로 소개해주겠지만..."


팀장님은 자꾸 Y선배의 행방을 부서원들에게 확인했고 나에게 따로 소개하겠다고 말씀하시는걸로

보아 직감적으로 부서 내 '비중이 크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를 주고받던 중,

"딱딱딱딱"


신발 굽소리를 굳이 숨기지 않으며 회의실로 들어오시던 화려했던 Y선배의 등장이 잊혀지질 않는다.


큰 이목구비를 가진 미인상의 Y선배는 기세등등한 고음의 목소리로 나에게 인사를 건네셨다.


알고보니 나와 같은 파트에서 근무하게 될 선배셨고, 직급고하 보다는 '짬' 즉 근무연한으로 서열이 갈리는 공기업 직원의 세계에서 단연 내가 잘 모셔야 할 분이었다.




갓 상경하여 의욕이 넘치던 2년차 신입으로서 늘 매미처럼 붙어 그녀의 시야에 들고자 했다. 업무시간엔 업무로, 퇴근 후엔 술 한 잔과 함께. 그러나 점차 힘이 들다못해 모든 기운과 활기를 빼앗기기에 이르렀다.


스콜성 기후처럼 변덕이 심한 그녀는 기분이 좋으면 아침에 인사를 받아주었고, 그렇지 못하면 본 체 만 체 했다. 여름이면 내 눈을 의심할 정도의 시스루 복장으로 돌연 출근하시기도 했고, 자꾸 부서원들을 본인 집안 소유 별장이나 리조트로 초대하시려 했다. 결국 어느 한 번은 그 별장에서 부서체육행사를 했고,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시고 5시에 일어나서 콩나물국을 끓이며 아침상을 준비해야 했다.


부서내 어떤 행사든 본인이 담당하는 다과, 꽃, 음식 셋팅 등의 부분이 메인이 되어야 만족했고 "Y대리 덕분에 행사가 빛이나고, 윗분이 좋아하셨다" 는 말로 공로를 인정받을 때 가장 행복해했다.




어느 날, 집에 데려다주신다기에 차를 얻어탔는데 갑자기 본인이 다니는 피부과로 향했다. 그리곤 삼십 만원짜리 듣도보도 못한 1회성 관리를 해주셨다. 관리를 받는 내내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했다. 곧 다가올 연휴를 낀 워크숍(이라 부르지만 내 눈엔 최상위자 내외 결혼기념일을 기념하며 모시고 떠나는 접대성 나들이로 보였다)에 나를 포함하시고자, 강제로 안겨주시는 '소화 안 될 선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보다 관리가 조금 일찍 끝난 Y선배는 우리팀 다른 여자대리에게 전화를 걸어 워크숍에 같이 가자며 포섭중이었다. 내가 아무리 힘 없는 막내여도 연휴를 통째로 바쳐가며 나들이 무수리로 끌려가는 것은 죽어도 싫었기에 못 들은 체 했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같이 갈 '여자'동지를 구하지 못해 기분이 좋지 않으신지 내 말에 대답을 안 하시기 시작한 Y선배를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자신이 어찌나 작게 느껴졌는지, 방금 관리하고 나온 얼굴이 화끈거리고 불편했다.




집에와서 냅다 의지하는 동기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톡 치면 다 터질 것 같은 물풍선 상태의 마음을 언니에게 모조리 쏟았다. 자초지종을 들은 언니는 말했다.


"야, 그거 니가 해달랬어? 자기 마음대로 갑자기 준 거잖아. 받아줬음 됐지, 왜 끌려다니기까지 해야돼? 종속 되지마. 그런 식으로 사람 마음 못 사."


오랜만에 전활 걸어 다짜고짜 울먹거리는 동생이 안쓰러웠는지 언니는 내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물광 나는 번지르르한 얼굴에 눈물을 뚝뚝 흘리니, 잔뜩 바른 비싼 화장품들이 녹아내려 볼만했다.




결국 이 워크숍은 구설수에 오를 여지가 충분하다는 판단 때문인지, 날이 가까워진 어느 아침, 팀장이 전격 취소해버렸다. 그 날 Y선배는 점심시간 내내 술을 먹으며 꺼이꺼이 울어댔다. 말 그대로 대.성.통.곡을 했고, 본인이 비행기표(제주도)를 몇 번이나 개인카드로 결제/취소를 했으며 리조트 확보를 위해 수고했었는지를 읊으며 분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뒤늦게 달려온 내 직속차장은 그 상황을 보고서 '더 시간을 가지라'며 그녀와 선배 한 명을 내버려두고 나만 데리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이후 이 분에 대해서는 경계와 부담이 앞서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미묘한 기류 변화를 귀신같이도 알아채시는 분이었다. 다른 파트, 다른 부서 직원들과 점심 한 끼라도 먹을라치면 티가 날 정도로 싫은 티를 내셨고, 그 사람과 무슨 대화를 나눴고 얼마나 친한 지에 대해 집착하셨다. 본인과 사이가 틀어진 어떤 선배와 내가 가까워지자, 퇴근 후 2~3시간씩 취한 채로 전화를 걸어 울고, 화내며 본인 입장을 설명했고, 같이 '한 패가 되어' 그 선배를 배척하길 바라셨다. 퇴근 후 그 분의 이름이 전화기에 뜨면 두렵고 또 두려웠다. 부모님께 들릴 세라 한 겨울에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놓고 통화했다.


근본적으로 외로움을 심하게 타시는 분이셨고,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회사에서 모든 유대감을 찾으시려했다. 결국 나 또한 직장 후배이자 한 사람으로서 소유하시려는 느낌을 받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몇 년 간, 이 모든 것을 방관하고, 되려 이용하는 간부들이 정말 괘씸했다. 각종 행사를 필요이상으로 벌이고, 그럴때마다 사비를 털어서라도 구색에 완벽을 기하는 Y선배 덕을 톡톡이 본 것이다. 그녀의 실질적 업무 역량, 실적에는 관심 없고 행사, 각종 술자리의 대동 멤버로만 그 역할을 한정하고 고정시켜버렸다. 그녀의 본 업무에 생기는 빈틈들은 자연스레 나와 옆 직원들이 떠안아야했다. 그러는동안 그녀는 점점 사무실 내 본인의 포지션과 정체성을 굳건히 하고자 '과한' 행사와 술자리, 직급이 높은 사람과의 교류에만 치중했고, 때론 먼저 주도했고, 결국 간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기세가 등등해져 제주도 워크숍때와 같이 팀장과 정면 충돌을 하기도 했다. 팀 전체를 들었다놨다 하는 Y선배를 만든 건 결국 간부들이었다.




집요하고 겉잡을 수 없는 변덕이 있지만, 어쨌든 주어진 미션에 완벽하고자 했고 사람에 대한 정과 사랑을 '적당히' 표현하실 줄 몰랐던 분이었다. 그 시절의 나에겐 너무 버겁고 부담스러워 거리를 두기 시작했었지만 말이다.


워크숍 취소 사건으로 상심이 크셨던지, 그녀는 돌연 휴직 후 딸 아이를 데리고 유럽여행을 떠나버렸다. 휴직으로 인한 공백은 오롯이 내 몫이 될 것이 자명한데 본인이나 차-팀장으로부터 제대로된 설명이나 양해는 없었다. 휴직계까지 내가 작성해서 대신 내줬을 정도이니 뭘 바랄까.



어떤 사람이든 이유가 있어 나에게 다가오고 인연을 맺게 된다


신기하게도, 지금와 돌이켜보니 당사자간의 숨겨진 이야기들이야 다 알 수 없지만, 각자 어떤 마음이었을지 좀 더 선명히 보인다. 이래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는 걸까. 지금의 나라면 조금 더 포용하되, 조금은 더 의연하게 거리를 둘 것 같다. 이들과 부대끼며 나부터가 많이 달라지긴 했다. 그들도 미약하게나마 힘 없는 막내의 영향을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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