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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Oct 21. 2022

오빠가 운전하는 차 타기 싫다고!

카프레제, 미안해.

난폭운전의 기준은 모호하지만 내 기준으로 남편의 운전은 과격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십여 년 전 어느 날, 남편이 모는 렌터카에 내 친구들을 태우고 놀러 가던 참이었는데, 1미터 남짓한 안전거리만을 유지한 채 앞 차를 바짝 따라가는 게 아닌가.


앞 차가 브레이크를 밟자, 우리 차가 거의 꽁무니를 처박을 뻔했다. 대학교 새내기로서 남이 운전하는 차는 거의 타본 적 없었을 때인지라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꽈악 잡으며 식겁했다.


"안전거리가 너무 가까운 거 아니야? 오토바이도 아니고~"


내 한마디에 잠시 진정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또 차선을 요리조리 바꿔가며 앞 차를 독촉하듯 달려대는 그는 흡사 양 떼를 모는 도로 위의 목동 같았다. 불길했다. 그땐 몰랐다. 12년째 그 문제로 싸우게 될 줄은.




남편은 매사에 느긋하고 물 흐르듯 살자는 주의라 여간해선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주변 문제나 타인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성격 급한 내 기준으로는 과하게 여유로운 사람이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운전. 운전할 때 돌변하여 딴판이 된다.


앞 차가 느릿하면 어떻게든 제쳐야 한다.

1차로는 추월 차로라며, 달려오는 뒷 차(=우리)를 보고도 비켜주지 않는 차가 보이면 몹시 열받아한다. 어떻게든 제쳐서 가르침을 준다.

2개의 차선이 하나로 합쳐지는 구간에서 보통 좌우 한 대씩 합류하곤 한다. 가끔 몰상식한 운전자들이 본인 차례가 아님에도 머리부터 들이미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이럴 때 경적을 울리더라도 끼워주긴 한다. 충돌해서 서로 피해를 입는 것 보다야 낫기 때문. 그런데 남편은 절. 대. 비켜주지 않는다. 깻잎 한 장 차이로 서로 붙기 직전까지 간다. 그나마도 내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 멈출 때의 이야기인데, 이런 길이 나올 때마다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 미칠 것 같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았더라도, 바로 앞으로 들어오려는 차가 있으면 사고 방지차 끼워주게 마련인데 남편은 더 속도를 낸다. '깜빡이도 안 켜는데 왜 껴줘야 하냐'며 열을 낸다.


등등. 매번 상대가 먼저 잘못했거나 매너가 없는 건데 왜 본인한테 뭐라고 하냐며 성을 내는 남편은 뭔가 모자란 정의의 사도 같다. 처음에는 달래고 얼러보려고 노력했다.


"오빠,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거잖아. 그렇게 충돌까지 불사해버리면, 옆 자리에 앉은 나까지 다칠 수 있잖아."


코딱지만큼도 먹히지 않았다.




결혼 후 아빠 명의의 조그만 차를 물려받았는데 대학원 생활 중인 남편이 주로 몰게 되었다. 어느 날 오전 바쁘게 업무를 하던 차에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 너 그 차 말이야. 난폭운전으로 신고당했대. 경찰서에 가봐야 할 것 같아. 내가 보내는 번호로 연락해봐"


누가 운전을 했냐는 둥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신 아빠는 연락할 번호만 알려주셨다. 업무로 정신없던 차에 어찌나 화가 나던지 남편에게 곧장 전화를 걸어 쏘아댔다. 대체 어떻게 운전을 하고 다니기에 아빠한테까지 전화가 가게 만드냐고.


나 또한 정지선 위반으로 경찰서 민원실에서 딱지를 받아온 적은 있지만, 이렇게 직접 서에 출두하여 조서를 써야 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억한 심정으로 촬영을 하여 신고했겠지. 그는 하루 종일 경찰서에 다녀와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경찰서 일일탐방 후에도 개과천선 하지 않았다. 경찰관님들이 따끔히 인생 교육을 시켜주실 줄 알았건만, 남편의 주장에 의하면 오히려 신고당한 것이 억울할만하다고 공감을 해줬다나. "상대가 먼저 잘못했는데 왜 내가 거기서 양보를 해야 하냐"지겹도록 들었던, 무미건조하고 로봇 같은 논리. 결국 어느 하루는 내가 폭발하고 말았다.




오랜 친구를 초대한 집들이를 앞두고 마트에 음식을 사러 갔다. 내 눈을 사로잡은 카프레제 샐러드는 너무 예뻤다. 얇게 썰린 모차렐라, 토마토, 바질이 번갈아가며 원형으로 줄을 서 있었고 그 위에 바질 페스토 소스를 한 바퀴 휘 뿌려놓았다. 함부로 들거나 흔들면 망가질세라 소중한 케이크 다루듯 계산까지 마쳤다.



차로 돌아와 구매한 물건들을 싣는 중에 샐러드는 안전하게 내 품에 들고 가겠다고 했지만 남편은 굳이 뒷좌석에 그냥 두라고 했다. 불안한 마음에 혹시나 망가지지 않도록 천천히 가자고 했다.



지하주차장을 나서 집으로 가는 길. 몰려나오는 차들로 북적이자 짜증이난 남편은 갑자기 가속을 해서 답답한 앞 차를 제치더니, 곧 유턴 구간이 나오자마자 핸들을 왼쪽으로 급격히 꺾었다.



차와 함께 내 몸도 오른쪽으로 훽 기울었고... 



스르륵- 툭....



카프레제 샐러드가 떨어졌다... 마트에서 나선 지 1분 만에 뒷좌석을 슬라이딩하다가 추락했다.


고개를 돌렸다. 형태만이라도 알아볼 수 있기를. 제발. 너를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


뒤집힌 채 처량히 바닥에 처박혀있는 카프레제를 얼른 뒤집어보았다.


초록 페스토 소스가 용기 뚜껑에 덕지덕지 묻어있고, 일렬로 다소곳이 줄 서 있던 토마토와 치즈, 바질들은 클럽의 무아지경 젊은이들처럼 뒤엉켜있었다.



내 안의 마지막 '인내'라는 것이 툭 끊어졌다.


당장 차를 세우라고 했고, 그는 들르기로 한 다른 마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서야 멈춰 섰다. 엉망이 된 샐러드를 들이밀며 뭐가 그렇게 급해서 급가속과 급선회를 한 거냐고 따졌다.



"앞 차가 답답하게 어쩌고 어쩌고.."


"내가 천천히 가랬지? 누가 잡으러와? 내가 애 낳으러 가? 대체 뭐가 문제야? 이딴 식으로 운전할 거면 내가 한다니까?"


"너가 하는 운전은 답답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내가 조수석에서 항상 무섭고 불안하다고 했지?"


"이게 뭐가 무서워, 60킬로로 간 거였어! 60킬로. 그게 뭐가 빨라?"


지겹다. 화가 났다. 뭐가 무섭냐니. 공감능력이란 전생에 두고 온듯한 저 말투.



"내. 가. 무섭다잖아!!!!!!!! 내. 가!!! 조심하랬잖아. 사고 나면 어쩌게? 왜 내 목숨까지 위협받아야 돼? 샐러드 사러 간 건데 박살 났잖아. 혼자 있을 때나 그렇게 하라고. 오빠가 운전하는 차 타기 싫다고!!!!!"


"사고 나면 개이득이지, 그쪽이 잘못했는데 우린 보험 타고 쉬면 된다니까?"


사고 나면 개이득이라니, 진짜 초딩인가.


"돌았어? 너나 그렇게 살아. 어디서 부인 태우고 그딴 식으로 운전해!!!!!!!!!!!!"


차 밖으로 소리가 새 나갈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악악거리기 시작했다. 모든 말을 얄밉게 받아치던 남편은 내 우렁찬 분노에 화들짝 놀라 날 쳐다보았다. 수년간 그가 운전할 때마다 차곡차곡 쌓아온 불안감, 두려움이 한꺼번에 터졌고 이제 남편은 '오빠'라는 호칭이 아닌 '너'라고 불리고 있었다.


분이 안 풀린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지갑이네 영수증이네 다 발아래로 집어던지며 말했다.


"누군들 내키는 대로 하고 살고 싶지 않겠어? 근데 그러지 않아야 될 때가 있다고. 나한테 다쳐도 되겠냐고 물어본 적 있어? 왜 내 목숨 가지고 니 맘대로 하는데?"


박살난 카프레제를 보니 더 화가 나서 한동안 소리를 질러댔다. 이렇게 악을 쓴 적은 처음이었기에 남편은 다소 놀라 얌전해졌다. 성대가 허하는 최대 한도의 볼륨을 내니 신기하게도 묘한 쾌감도 들었다. 아 이래서 산 정상에서 소리를 지르는 건가. 사람마다 갖고 있는 배설욕, 분출욕이 있는 것인가. 남편은 그걸 운전으로 표현하는 건가. 아이고 뭣이 중헌디.




놀랍게도 몇 년이 더 흐른 지금까지도 남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안전을 위해 가장 보수적이고 느긋하게 움직여야 하는 운전에서, 평소에는 가장 거리가  조급함, 난폭함, 과격함 포텐이 터질 건 뭐람. 평소에 사회 문제에 관심 갖고 정의 구현에 힘쓸 것이지, 왜 하필 운전할 때만 그놈의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지.



그런데... 얼마 전 놀러 온 친구들을 관광시켜주고자 7인승 대형 SUV를 렌트했는데 놀랍게도 남편의 운전이 다소 온화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목숨을 많이 태웠으니 조심해서 운전한 영향도 있겠으나, 다음 날 같은 구성원을 우리의 조그만 경차에 태우고 다니게 되었을 때,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오빠 어제랑은 운전이 다른데요?!"


동일한 구성원을 동일한 운전자가 이끄는데, 내 친구들 역시 어제보다 오늘 더 과격하다 느낀 것이었다.


혹시...... 그래 혹시, 어쩌면, 남편의 운전은 우리 차의 조그맣고 왜소한 사이즈 때문에 실제보다 더 난폭하고 과격해 보이는 것일까? 모든 게 우리 차의 문제였나. 결국 답은 큰 차였던 건가? 그러면 되나? 실낱같은 한 줄기 빛이 보이는 것도 같다.



커다란 차 타는 그 언젠가 우리도 종전 선언할 수 있을까.


일단 그전까지 우리 둘 다 무사해야 한다.


가이드 겸 운전기사 역할을 해주어서 고마웠지만 간헐적 안전운전의 순간이어서 더 고마웠다. 제발 매일 이렇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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