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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Oct 31. 2022

여행 전 날, 엄마가 생각난다

그토록 고대하던 스페인 여행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편하다.


일정 짜기, 교통편 예약, 카드 발급, 환전.. 여행에 필요한 준비를 나름 꼼꼼하게 마쳤고 이제 짐만 싸면 되는데 왜일까.


- 아무리 좋다한들 혼자 가서 무슨 재미일꼬 5% (재미는 있을듯.)

- 혹시 발생하는 변수나 돌발상황에 나 혼자 대처해야 한다는 불안감, 두려움 15% (뭔 일 있겠어..)

- 혼자 남아 밥을 챙겨 먹고 출퇴근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 80%....



그랬다. 결국 남편에게 내가 없는 2주 동안 원래의 역할을 해주지 못함에 미안한 거였다. 같이 가면 좋을 텐데 혼자서라도 마음껏 누리라던 남편의 말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소매치기가 많지 않겠냐며 웬 아저씨 같은 힙색을 꺼내와 매보게하고, 관련 영상을 찾아서 틀더니 함께 시청하는 그 마음이 고맙다.




출발 하루 전, 일어나자마자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켰다. 싱크대 물때도 갑자기 눈에 들어와 박박 씻어댄다. 화분에 물도 준다. 분리수거를 하고 묵은 쓰레기를 갖다 버린다.


다음은 냉장고 처분. 2주간 운명할 우려가 있는 식재료들을 다 꺼냈다. 호박과 부추 한 단이 나왔다. 썰어서 물기를 제거한 후 냉동하기로 했다. 다녀와서 찌개나 볶음에 바로 쓸 수 있겠지.


이제 가장 중요한 남편의 비상식량 만들기. 어젯밤 자기 전 해동해 놓은 불고기거리를 양념에 재운다. 남편은 불고기에 부추 올려 먹는 걸 좋아하는데 먹기 직전 넣어야 식감이 살아있을 테니 손질만 해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카레와 밥은 소분하여 얼린다. 고구마와 과일은 일부러 보일만한 곳에 잔뜩 가져다 놓는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4시. 허리가 뻐근하다. 이제 정말 짐을 싸야 한다. 캐리어를 펼쳐놓고 보니 문득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는 가끔 친구들과 여행을 가시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남아있는 우리 식구들의 밥 걱정을 떠나기 몇 주 전부터 했다. 특히 아빠 아침식사를 챙겨드리지 못하면 무슨 사단이라도 나는 양 그렇게나 걱정과 미안함을 표했었다. 미역국, 육개장, 곰탕 등 한 솥 가득 대량생산하시고, 냉장고엔 반찬을 꽉 채워두고도 걱정이 가시지 않았는지 '아침에 아빠 계란 프라이라도 하나 해드리고 너네도 꼭 챙겨 먹으라'며 우리 남매에게 신신당부를 하시곤 했다.


막상 엄마가 떠나고 나면 해놓고 가신 밥은 인기가 없었다. 아빠와 외식을 하고, 동생과 피자를 시켜먹고, 라면을 끓여먹었다. 그저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덥혀먹기만 하면 되었는데도  엄마가 없는 부엌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싫었던 것도 같다.



다녀와서 거의 줄지 않은 국이나 반찬을 보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나 첫째인 나를 혼내진 않을까 불안해하곤 했는데, 그러길래 우리가 어차피 다 먹지 못할 걸 알면서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국과 반찬을 준비해놓고 간 이유는 뭘까.


추측이지만.. 그리고 난 아직 자식도 없지만, 엄마도 왠지 지금 내 마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안함. 떨어져 있음에 대한 불편한 마음. 짧은 부재에 대해서도 최선의 성의와 정성을 다하고 싶은 마음. 준비해둔 것을 먹든 먹지 않든, 식구들이 최소한 배를 곯지는 않을 거라는 안도감. 한편으로는 '역시 내가 없인 식구들이 제대로 먹지 않는다'며, 스스로의 역할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까지도 느꼈으려나. 한 마디로 애정이고 사랑이었던 거라 믿는다.



2주 뒤 내가 돌아왔을 때 불고기와 카레가 그대로 남아있은들, 혹은 싹 다 먹어치워 냉장고가 텅 비어있은들 어떤 쪽이든 미안하고 고마울 것 같다. 근데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는 쪽이 더 좋겠다. 나도 엄마밥을 더 열심히, 더 잘 먹을 걸 그랬다. 돌아오자마자 고스란히 남은 음식 처분을 어찌할지 고민했을 엄마. 가볍게 떠나야 할 여행길마다 가족에 대한 무거운 미안함과 동행했을 엄마 생각이 오늘따라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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