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 댁 유리창은 특출나게 깨끗하다. 그 창으로 밖을 내다보면 시력이 좋아진 것만 같다. 새시(샷시)의 투명도가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리라곤 생각지 못했지만, 완벽한 시댁의 창문을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아버님은 본업과 별개로 청소에 몹시 진심이신데, 특별한 기술 중 하나가 유리창 청소이다. 모든 새시가 좌우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도록 돌출된 손잡이를 해체하시곤, 못 쓰게 된 와이퍼와 퐁퐁 섞은 물을 이용해 난간 가까이 오르셔서는 안팎의 얼룩을 모두 제거하신다.
이외 방충망 모헤어(털 부분) 교체, 현관문 말발굽 설치, 주방 후드 해체 청소, 바닥 흠집 제거, 수압 조절 등 웬만한 생활 하자까지도 자체 개발하신 방법이나 유튜브를 보고 연구하셔서는 뚝딱 해결하신다.
지방에 내려오며 처음으로 새 아파트살이를 시작한 우리를 위해 아버님과 어머님이 입주청소를 도와주러 오셨다. 아버님만의 전매특허 유리창 청소를 지켜보면서 남편이 떠올랐다.
남편은 다른 청소에는 관심이 크게 없지만, '온/습도'에 굉장히 예민해서 하루에 최소 두 번 이상 샤워하고 본인을 보송한 상태로 유지한다.사용한 수건은 욕실 밖에서 따로 건조하고욕실 슬리퍼는 반드시 벽에 기대 세워놓아야 한다. 세탁기 세제통은 매번 꺼내 말리며 빨래에서 약간이라도 쉰내가 나면 베이킹소다 범벅을 해 다시 빤다. 온습도계를 매일 주시하며 주거복지 증진에 집중한다. 군대 생활을 어떻게 버틴 걸까의문이지만 그런 사람이란 걸 받아들였다.
철이 바뀌면서 지난여름 동안 덮던 이불을 빨았다.
건조기는 이불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지바짝말려주진 않는다. 결혼 이후 주말부부 등으로 자주 떨어져 있었기에, 주로 혼자 이불빨래를 했었고 덜 마른 이불을 대충 소파에 널어두거나 침대 위에 펴두곤 나중에 퇴근해서 덮고 자곤 했다.
평소처럼 살짝 덜 마른 이불을 소파에 널어두었더니남편이 질색팔색을하는 게 아닌가. 이러면절대 안 마른다며 다급히 걷어낸다. 식탁에 다시 널기 시작한다.
"오빠가 여태껏 덮은 것도 다 그렇게 말렸던 거"라고 얘기해줄까 하다가 입 밖에 내진 않았다.
다시 널려진 이불은 체계적으로 건조되고 있었다.
과학 건조
식탁 중앙에2리터 생수병을 세워두어 식탁면과 이불 면이 맞닿지 않게 했고 틈틈이 이불을 펄럭거려주라며 나에게신신당부했다. 식탁 아래에는 제습제를 두 개나 매달아 두었다. 한치의 잔여 수분도 허용치 않으려는 의지였다.
이불을 이렇게까지 말릴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덕분에매끄러운 이불이 되어 진공팩으로 들어갔고 다음 여름을기약하고있다.
아버님과 남편, 분명히 닮았다. 그리고 또 한 명이 생각났다. 다름 아닌 미국에서 크고 있는 우리의 두 살배기 시조카. 아버님이 청소하시는 모습을 딱 한 번보고선 두 발로 서자마자 청소 욕심을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