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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Sep 27. 2022

4년 걸린 클릭

브런치 작가 신청

브런치가 지금보다 덜 알려졌던 4년 여전, 내 인생의 방향도 훨씬 희미했다.


남편과의 사이는 기대처럼 달달한 신혼의 것이 아니었고, 회사의 빌런들은 끊임없이 나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하고 있는 업무는 적성과는 완전 거리가 멀었고 그마저도 열심히 하고 나면 더 많은 업무가 닥쳐오는, 미스터리한 구조였다. '모두가 함께 일 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공산주의 초기 이상은 '보다 적게 일하고 보다 많이 챙기자'로 변질되었는데, 적어도 우리 회사의 기득세력은 공산주의자인 것인가.


여하튼 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스스로 불만인지 가늠할 수 없는,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욕지거릴 한가득 품은 욕구불만의 개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음 포털 메인에서 부부관계와 회사생활에 대한 글 몇 개를 접하며 큰 위안을 얻었다. 지금 내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콕 집어내서는 마침 이 글이 내 앞에 뜬 걸까. 정확한 알고리즘은 모르겠지만, 브런치는 그렇게 나에게 처음 다가왔다. 정신 사나운 이모티콘 없이 진솔하고 담담하게 스스로의 이야기를 잘도 담아내는 분들. 자연스레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의 속내에 들어갔다 나온 듯 같은 감정을 느끼고, 어쩔 땐 뭐라 댓글이라도 달고 싶어 졌다.




남편과의 다툼, 가족 간의 불화, 회사에서의 봉변 등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정말 극적인 순간을 제외하곤 혼자 속으로 삭이는 편인데, 나만의 '서랍'을 배정받은 이후부터는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다. 거진 30년간 내 안에 쌓인 모든 이야기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식하듯 불어났다. 어쩔 땐 너무 많아 감당이 안 되었다. 대체 언제 나를 다 설명하지? 근데 이걸 먼저 써야 할 것 같은데. 그나저나 읽는 사람들이 있긴 할까? 생각의 끝은 대부분 부정적 귀결을 맞곤 했다.


내가 글 한 편에서 위로를 받았듯,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경험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으로 근근이 채워가던 서랍은 결국 몇 년간 방치되었다. 가끔씩 접속해 글을 다듬다가도, 막상 작가 신청을 목전에 두고 이런저런 핑계를 스스로에게 대곤 했다. 화려한 스펙과 특이한 이력을 지닌 브런치 작가들은 매해 늘어갔고, 나의 죄 없는 서랍은 괜스레 비루해 보이곤 했다. 이건 나라는 한 개인의 배출욕, 배설욕에 불과하지 않을까. 특정 분야에 지식도, 전문가도 아니면서 작가라니.



대현타의 날이 쏘아 올린 클릭


올봄, 휴직 후 남편이 근무하는 지방으로 내려와 살면서 내 안의 문제와 처음으로 직면했다.


이른 아침 아이들이 재잘대며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오후 4시 하원길에 데릴러나온 엄마와 상봉하기까지 혼자 소파에 누워 주구장창 넷플릭스를 보던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을 한 대 쎄게 얻어맞은 듯했다. 저토록 작은 아이들이 하루 종일 사회생활을 배워오는 동안 나는 무얼 했는가. 대체 며칠 째 이러고 있는 건가. 대현타가 나를 덮쳤다.


이제 그만 나를 속이며 흘려보낸 시간에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하고 싶은 걸 못 찾고 있는 원인은 결국 회사도, 브런치도, 가족도 뭣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눈앞에 두고도 스스로의 눈을 가리며 지체해왔다. 솔직하지 못했다. 시도조차 하지 않고 안 될 이유만 찾아댔다.


내 안의 문제를 인정하고 나서 일상은 바뀌었다. 남편이 출근한 후,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들 소리를 들으며 오랜 노트북을 꺼내 든다. 글 한 편을 썼을 뿐인데, 기쁨에 찬 하원길의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이모도 열심히 살고 있어 얘들아~!'




그렇게 4년이 걸려, 마침내 클릭했다.


"작가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영업일 기준 4~5일이 소요됩니다."


부지런한 운영진은 하루 만에 알림을 보내주셨다.



몇 달간 오랜 시간 컴퓨터를 하면서 목디스크가 도져버렸다. 오른손이 많이 저리지만, 오랜만의 성취에 뿌듯하고 기쁘다!


기념으로 노트북을 높이 매달 수 있는 거치대를 하나 구매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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