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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Sep 27. 2022

재택근무는 하라고 만든 제도입니다.

코로나가 사회에 촉발한 큰 변화중 하나는 재택근무 확대일 것이다. 


자고로 좋은직원이란 "내 눈 앞에서 + 엉덩이 쭉 붙이고 오래 오래 앉아있는 자" 라 굳게 믿는 보수적 문화에 익숙한 우리회사 같은 조직에서는 이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웠고, 수도권에 난리통이 난 20년 연말 현재에도 완전히 안착시키질 못했다.


정부방침을 준수하는 공기업 특성상 비교적 신속히 재택근무 제도가 언급되기 '시작' 하였으나, 말 그대로 시작단계에서 몇 달간 머물렀다. 생전 처음 접해봤을 이 근무형태를 놓고 세대간, 직군간, 심지어 직무간 갈등이 생겼던 것이다.


먼저, 개인 노트북에 프로그램을 설치해 원격업무를 하는 것이 하나의 도전으로 느껴진 높은 연배의 어른들은 "귀찮아서" 하기 싫어하셨다. 설비를 직접 운영하고 정비하는 기술직군 직원들은 현장에 유사시 투입되어야 하기에 재택근무에 돌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부 사실이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우리회사에 연락해서는 '영원히 너네회사엔 갈 일이 없다는' 약속이나 한 것이 아니라면, 사무실 상주가 교대로 이루어 수 있도록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책임의 문제이지 타협거리가 아니었다.


이 모든 저항세력의 끝판왕은 역시나, 일부 기성세대 상사들이었는데, 온 몸으로 이 제도의 도입에 항거하였고 "재택근무 = 노는 것" 이라며 재택근무를 아예 죄악시 하는 분위기까지 팽배하게 만들었다.


재택근무 시행 목적은 교대로 사무실 상주인원을 꾸려 혹시 모를 바이러스 확산 사태 시, 비접촉 대기조를 만드는 데 있을 것이다. 이 도입 취지와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일부 상사들은 차마 눈 뜨곤 지켜볼 수 없는 수준의 언행을 저질렀더랜다.


실제 보건, 사옥출입/관리 등을 담당하는 부서의 장이 회식에서 언급하길, "재택근무 들어가면 스스로 존재감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 이라 하였고, 근로자의 권익을 수호해야할 노조위원장 께선 "다 재택근무 들어가면 누가 일하냐" 며 각 부서 사무실을 다니며 역정을 냈었다. 안 그래도 재택근무에 부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실제 들어간 인원이 많지 않았던 시기인데 참으로 해괴한 관점이었다. 그러면서 호시탐탐 회식만은 하려들었다. 어떻게든 규제를 피해 테이블을 나눠 앉든, 친한 음식점 사장님께 간곡히 부탁을 하든. 그렇게 참석한 회식에선  "이럴 수록 알코올로 코로나를 씻어내야 한다" 는 공감 불가한 건배사 따위를 경청하며 잔을 돌려야했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우리 부서의 경우 실무를 하는 나같은 직원들은 배제한 채 간부들만 재택근무를 돌아가며 시행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장면은, 재택근무에 들어가기로 한 날 사무실에 나와있는 간부들의 모습이었다. 재택근무에 들어갈 차례인데 사무실에 출근한 것이 마치 조직과 상위자에 대한 충성도를 내보이는 몸짓이라도 되는 양 약간의 비장함, 결연함마저 느껴졌었다. 그러한 "재택근무 자체취소" 가 사무실에 붐을 일으켰고, 나를 비롯한 직원들은 '더러워서 안 하고 말지'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선배님이 바로 근처에 계셔 공감대를 형성하며 쌓인 분노를 해소할 수 있었다. 택근무의 효율이 사무실에서와 아예 똑같지는 않겠으나 본래 목적이 감염 위험을 줄이고 대기근무조를 만듦에 있으니, 그에 충실하면 되는 것 아니겠냐며 한바탕 궁시렁대고 나면 그래도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재택근무에 영영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내 주변의 누군가가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를 당연하고 당당하게 누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결국 참 오~래도 걸렸다. 그리곤 일상회복 정책이 언급되자마자 바로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에라이 안 하고 만다!


회사에 팽배한 오랜 편견과 꼰대력은 코로나에도 끄덕 않고 결국 살아남았다.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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