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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Sep 27. 2022

결혼한 건 벼슬이 아닌데요.

유부와 부(不)유부 간의 격차 해소를 위하여

"위키씨! 저~기 김대리랑 둘 중에 누가 언니야?"

"제가 3살 더 어립니다."

"에이 그래도 위키씨는 결혼했잖아. 그럼 위키씨가 언니고 김대리가 동생이지!"


.....그럼 대체 왜 (또) 물어봐? 답정너 같으니.


결혼여부로 위 아래를 가를거면 나한테 굳이 이 질문은 왜 한걸까?

저번에도 똑같은 질문을 했었는데. 아 그건 다른 사람이 했던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머릿 속 의문은 회사에서 날 찾아오는 단골 손님이다. 썩은 표정의 김대리(언니) 또한 제 아무리 확고한 사유와 철학에 의해 비(미)혼인 상태일지라도 그냥 3살 어린애보다도 동생으로 강등되는 경험을 매번 해야한다. 강등만으로 끝나면 얼마나 좋으랴. '미혼 = 퇴근하고 밥을 챙겨달라 찾는 사람이 없음 = 시간 많음' 이라는 공식을 멋대로 일반화시켜서는, 회식뿐 아니라 평소 영업일 5일 중 2-3일은 '저녁 먹고 가라'는 한 마디로 김대리 언니의 퇴근길 발목을 잡아댄다.


나 또한 결혼 전 겪었다. 28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하기까지 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음이 상당부분 작용했대도 과장이 아니다. 어차피 할 거면 빨리 해버리자며 꼬리에 불 붙은 듯 '유부' 의 강으로 뛰어들던 스물 여덟살의 나는, 지금 떠올려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회사에서는 결혼 여부가 신분의 차이로 이어진다. 특히 여자의 경우 그 격차가 더 도드라짐을 지난 10년간 봐왔다.


일단 결혼을 한 여직원을 향한 호칭부터 (대체적으로) 달라진다. OO아 에서 OO씨 로. 뭐 만인에게 반말만 일삼는 일부 어르신들이 있긴하지만 제외하고. 뒤에 이어지는 말이 존댓말이든 반말이든 호칭 하나만 달라져도 조금은 존중받고 있는 느낌이 든다.


회식(번개) 방어권이 생긴다. 기본적으로 유부녀에게 술 먹자고 퇴근 길 발목을 잡아대기란 어려우며, 그마저도 '남편이 오늘 일찍 온다고 해서요' 등의 말로 거절이 가능하다. 뒤에서 욕할지언정 앞에선 건드리지 못한다. 혹은 참석까진 하더라도 중간에 귀가해도 되는 권리 비스무리 한 게 있다. 유부녀가 회식이나 번개 중 스리슬쩍 사라진다해도 그러려니 한다.


1박2일 워크숍 탈출권도 생긴다. 부서 화합용도 아닌 노조 등에 차출되어 어쩔 수 없이 떠나는 워크숍이 멀리서 진행되는 데다 1박까지 해야할 때, 이렇게 난감할 수가 없다. 안 가자니 욕을 먹을테고, 가자니 의미없는 술판 속에 절어 1박을 해야하고. 그럴 때는 집안행사가 등장할 수 있다. 차를 몰고 데릴러와주는 남편이 참 고마운 것은 당연지사.


휴가를 결재받을 때도, 일부 상사의 경우 누구랑 어디에 갈 건지 묻게 마련이다. 유부녀의 경우 어련히 알아서 남편과, 친정과, 시댁과 가겠거니 추가질문을 받을 염려가 적다.


한 마디로 우리 회사의 기성 상사, 선배님들은 유부녀들을 '어려워한다'.


미혼 신분일 때와 기혼 신분이 되어 겪는 회사의 온도차가 극명하기에 항상 그 이유가 궁금했다.


관찰 결과에 따르면 우리회사는 2010년 이전까지도 턱없이 낮았던 여직원 비율로 인해 일단 회사 내 '여자' 성별에 익숙치 않다. 공채로 선발되어 들어온 대졸 여직원은 극소수였고 그나마도 결혼, 양육 등으로 대부분이 중도 퇴직했다. 얼마되지 않는 여직원들중 대부분은 전문비서 등 특수업무 수행을 위해 별정직으로 입사한 선배들이었는데, 완전한 정규직으로의 전환 전까지 다양한 분들과의 교류가 중요했다. 함께하는 술자리가 그나마 그래도 잦았을 것이고 거기서 본 것이 '여직원 역할'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모든 여학생들이 당연히 취업시장에 뛰어들고, 결혼했다고 해서 직장을 그만두지도 않는다. 남자 대졸자와 같은 공채과정으로 채용되어 같은 일을 하는데, 문제는 그런 우리에게 예전의 '여자 역할' 프레임이 씌워져 있더란 것이다.


근 5년간 조직문화 개선 캠페인을 통해 여러모로 나아지곤 있으나 상위자를 모시는 술자리에 그래도 여직원이 있어야한다고 믿는 풍조가 아직도 있으며, 이왕이면 미혼 직원을 편하게 여긴다.


불시에 어떤 봉변을 당할 지 모르는 게 회식장소인지라 항상 긴장하고, 처신에 유의해야하기에 자연히 회식을 꺼리게 되었다. 다만 그 히스토리는 알지 못한 채, 혹은 그런 분위기를 만든 장본인 주제에 여직원들이 회식을 꺼린다며 볼멘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딸이 있다면, (미래의) 딸을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다.


유부남의 경우에도 미혼남보다는 각종 휴가, 휴직 등에 있어 유연한 시각을 적용받고있다. 또한 여기에 아이까지 있는 경우엔 더 큰 이해와 배려를 받는다. OECD 최저 출산율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한 기업으로서 마땅히 맞는 방향을 가고 있다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는다.


남자든 여자든, 유부든 유부가 아니든 거절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어야한다.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회사는 회사고, 퇴근 후 삶은 삶대로 보장받아야 한다. 미혼이라해서 공에 사까지 묶일 필요가 없지않나. 미혼이 죄는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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