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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Sep 27. 2022

차장님 때문에 목디스크 걸렸다고요.

아무 것도 모르쇠 직속상사와의 3년

무능만큼 나쁜 무책임 속에서


처음엔 수더분하고 좋은 사람인줄 알았다. 마냥 좋은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겠지만 그간 워낙 비인간적인 사람들을 많이 봐서일까, 파트를 옮기며 새로이 만난 직속차장에게 기대를 많이 했었다.


내가 생각한 좋은 상사의 기준은 결코 높지 않다. 업무를 함께 하는 직원으로서만 내 존재를 인식하는 것. 쓰잘데기 없는(=본인의 이해 추구를 위한) 술자리나 접대자리에 대동하지 않으며, 퇴근 후 생활을 침해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 직원을 향한 반 말이 팽배하던 분위기에도 불구, Y차장은 말이 느렸지만 나에게 늘 존대를 해주었다. "위키씨"라며. 예의와 존중을 아는구나 싶었다.

- 의사결정을 할 때, 거의 모든 경우가 프리패스였다. "그려, 위키씨 말한대로 해요" 라며 흔쾌히 결재 해주곤했다. 나를 신뢰한다고 여겨졌다.

- 퇴근 이후에 전화를 해서 주정섞인 말을 늘어놓는다거나, 희롱적인 발언은 단언컨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매너 또한 그간 봐왔던 '망나니' 들과 확연히 비교되었다.


이렇게 쓰고보니 내 회사생활 역사상 비교적 좋은 상사였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동전의 이면은 무시무시했다.


매사 느긋하고 수동적이며 온순한(척 하는?) 상사는 나를 할퀴지 않는 대신 외부의 공격과 침투로부터 무방비했으며 내 뒤에 숨어 전의를 상실한 채 술에 취해만 있었다.


나는 항상 상사를 먼저 퇴근시키고 남아 야근을 하며 데드라인을 맞추고자 허덕였고 같은 파트 내 직원이 한 명 더 있음에도 분장 재조정을 요구할 틈조차 없었다. 허허실실 너털웃음을 시전하며 수고많다면서도, 우리파트 업무와 연관없는 '분장상 애매모호한데 모두가 꺼려하는' 신사업 프로젝트를 물어와 던져놓고, 본인은 일주일간 제주도 워크숍을 떠나버렸던 것은 실로 역대급이었다. 그 프로젝트의 1차 데드라인은 차장이 워크숍에서 복귀하는 시점인 딱 일주일 후였기 때문이다.


본업을 얼추 마무리해두고 7~8시부터 시작해야했던 프로젝트 업무는, 가히 오기와 악다구니로 점철됐던 것 같다. 파트 선배도 그 시점에 출장을 가게 되는 통에, 발표 PPT 내용의 질은 차치하고 일단 기한 내 완성이라도 하고자 미친듯이 외롭게 매달렸다.


'글로벌' 이라는 구색 좋은 말을 붙여놓곤, 기술직군도 아닌 '쌩 사무' (당시 예산담당)인 나에게 외국 귀빈들 앞에서 우리회사 설비를 간단히 소개하라니. 그리고 그들을 안내하고 먹이고, 기념품까지 들려서 돌려보내야하는 몇 차례에 걸친 프로젝트였다.


첫 태국 외빈의 방문을 마무리 하고 링겔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도 바다 건너 멀리서 방문한 그들에게 이런 수준의 발표를 듣게 해서 참 많이도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렇게 허우적대며 보낸 3년이 나에게 남긴 것은, 결국 목디스크였다.


스물 일곱 그 어느 날, 전화를 받을 때면 귀에 웨엥 소리가 들리고, 미친듯한 두통이 돌기 시작했다. 뒷 목은 당연히 항상 뻐근했고 열이나며 속이 안 좋아 토할 것 같았다. 결혼식이 불과 3개월 뒤였지만,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라 불가피하게 시술을 결정했다.




중간에 구멍이 뚫린 도넛 모양 베개에 얼굴을 묻고 목과 등을 내보인 채 병원 바닥을 쳐다봤다. 3일 가량 입원해있는 동안에도 차장으로부터의 업무 연락은 계속 되었고, 퇴원 후 사무실에 복귀하고나서도 그에게서 사과나 변명의 말은 들을 수 없었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깁스를 찬 채 앉아있는 나를 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75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청구서를 받아들곤 눈 앞이 캄캄했는데, 회사에서 가입해준 실비보험으로 대부분 충당되었다. 회사에 고마운데, 안 고마운 오묘한 기분이었다. 병 주고 약 주고의 주인공을 꿰차다니.


디스크 일부는 잘라 냈지만, 얻은 것도 있다.


모든 걸 인고하고 언젠가 남들이 알아주겠거니 희망을 품기보단 당당히 요구하고 표현할 것. 티 낼 것.

친구들이 준비해준 브라이덜샤워에 시선강탈 깁스를 하고 가서는, 이마저도 바로 돌아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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