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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Oct 11. 2022

뒷짐 진 양반이 떠오르던

경상북도 안동

남편의 다음 출장 일정에 따라 안동으로 향했다.


대구에서 태어났고 부모님 모두 경상도에 연고가 있으시지만 안동은 처음이었다. 무언가 고지식하고 예스러울 것 같은 이미지의 도시.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포스 있는 팻말이 반겨줬다.

하회마을 근처 병산손국수

남편이 세미나에 참석하러 가자마자 곧장 하회마을로 향했다. 가는 길에 출출해서  안동식 국숫집에 들러보았다.


여긴 혼밥 선수인 나에게도 난이도가 있었다. 노인정과 마을회관(?) 사이 구내식당처럼 자리하고 있어 한눈에 봐도 동네 단골 주민들로만 가득했기 때문. 외지인 혼자 나풀대는 치마를 입고 국숫집으로 들어서자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선 일제히 휘둥그레 쳐다보셨다. 당연한 듯 국수 한 그릇이 자동 주문되었다. 또 시선을 끌고 싶진 않았으나 너무 궁금한 나머지 배추전도 시켰다.


자리에 앉자마자 반찬을 놔주시는데 다 좋아하는 것들이라 반가웠다. 친절하고 붙임성 좋으신 사장님은 밥이든 반찬이든 얼마든 더 주신다며 많이 먹으라셨다. 입맛 돋울 겸 두부를 빨간 양념장에 찍어먹고 밥을 상추에 싸 먹다 보니 국수가 나왔다. 멸치육수 맛보다는 구수한 호박 맛 채수 국물에 콩가루 향이 느껴지는 면이었다. 다 먹어 갈 무렵 식혜를 한 통이나 주셨고 배추전에 국수까지 클리어한 터라 한 잔만 마셨더니, 맛없냐며 사장님은 못내 아쉬워하셨다.


안동국시와 정으로 배를 잔뜩 채운 나는 다시 하회마을로 향했다. 네이버로 예약하면 할인이 되길래 가는 길에 냉큼 온라인 예약을 했다.

날씨 요정의 축복을 받은 평일의 하회마을은 고즈넉하고 여유로웠다.


하회마을은 아직도 민간인들이 거주하며 실생활이 이루어지는 마을이기에 작은 구석 하나하나가 얼마 전 방문했던 용인 민속촌의 모습보다 현실적이었다. 집주인이 담장에 손수 가꾼 꽃, 코로나 예방접종 관련 안내가 쓰여있는 의원, 사이사이를 돌아다니시는 우체부 아저씨. 실제 이곳에서 살면 어떨까. 초가집 모양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상상해보았는데 솔직히 썩 내키진 않았다. 그래도 참 평화롭고 여유로워 걸음이 절로 느려졌다.

유일하게 관광지스럽다고 느꼈던 곳은 마을의 보호수 앞이었다. 위풍당당히 그 풍채를 뽐내는 나무는 가까이 가자 그 위엄이 더 와닿았고 수많은 방문객이 매달아 놓은 염원 쪽지들이 주변을 빼곡히 둘러싸고 있었다. 밤에 보면 으스스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한 장 써서 매듭짓곤 계속 걸었다.


마을 출구 쪽에 가까워졌을 무렵 나타난 부용대 절경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꼿꼿한 절벽, 그 아래 낙동강과 드러난 강바닥 모래들. 그리고 이 절경을 끼고 펼쳐진 나무숲길.

예쁜 연인의 모습. 이 사진을 전해주고 싶었다.


저녁에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과 한우갈비를 먹으러 갔다. 의성과 가까워서 그런 지 이 집의 특제 메뉴는 마늘갈비라고 했다.

그러나 마늘갈비보다는 생갈비 고기의 질이 훌륭해 본연의 육즙 맛이 살아있었다. 기본으로 나온 우거지 술국(?) 퀄리티가 높아 처음부터 신이 났고, 원래는 네이버예약을 1시간 전에 해야 주신다는 육회도 특별히 내어주셨는데 알싸한 고추를 썰어 넣어 느끼함이 확실히 잡혔다. 하이라이트는 뼈찜이었는데 일정 인분 이상을 주문하면 남은 뼈를 야채들과 매콤하게 쪄서 내어주시는 이었다. 별도 메뉴로 파셔도 되겠다고 말씀드리니 좋아하셨다. 술도둑들의 연이은 등장으로 흥분한 우리 부부는 안동소주와 함께 달렸다.


이왕 온 김에 예천, 청주까지

집에 돌아오는 날, 바로 옆 예천의 회룡포 전경이 좋다기에 전망대 입구에 주차하곤 미니 등산(15분)을 했다. 가파른 편이어서 15분도 녹록지 않았지만 올라보니 한 방에 보상되는 뷰였다. 강이 휘감고 있는 마을이라라 섬같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하회마을도 부용대 위에서 내려다보았다면 강에 휩싸인 마을로 보였겠지.

순댓국을 한 그릇 먹곤 다시 길을 나섰다. 다음 행선지인 청남대에 온라인 예약을 해두긴 했는데 마지막 입장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회룡포에서 계획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4시까지 도착하기 빠듯해진 것이다.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했더니 다행히 차 번호를 기억해두셨다가 입장시켜주신댔다. 입구에서 나름 엄격한 경비 중인 걸 보고 미리 전화하지 않았으면 못 들어갔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대통령들의 별장이었던 청남대는 노무현 정부 때 충북도에 기부되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는데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듯했다. 오래된 만큼 녹지가 울창해서 어디든 상쾌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내부의 인테리어, 가전, 가구들은 그 시절에 멈춰있었고, 역대 대통령들이 애용하던 집기류를 관람하는 재미가 특히 쏠쏠했다. 쓰던 물건을 보면 그 사람의 생활상과 기호, 취미가 확연히 드러난다.


갑자기 끼워 넣은 청주를 뒤로하며 다시 이제 집으로 향한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로 진입한 뒤 나오는 갈림길에서 서울방향이 아닌 반대로 들어서는 순간은 아직도 어색하다. 그래도 한산한 길을 타니 좋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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