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출발해 인천공항까지 3시간 반, 바르셀로나까지 13시간 반,도심 카탈루냐 광장까지 다시 1시간. 마침내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드디어 이동수단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느낌도 잠시뿐, 금세움츠러든다.
낯선 온습도, 간판 위 생경한 알파벳들의 조합, 길에서 나는 꾸리한 냄새와 사람들의 다양한 체취.날카로운사이렌 소리, 마주치는 사람들마다소매치기일수 있다는 의심과 긴장 속에서 한 손에는캐리어 손잡이를 꽉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휴대폰을꼭 쥔 채걸었다.
숙소는 접근성과 치안이 괜찮은 1인실이었으나 불행히도 그 외 모든 것이 안 좋았다. 분명 예상 도착시간을 미리 알려주었으나 벨을 눌러도 응답이 없어사기당한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속에 20분 넘게 떨어야 했다. 직원이 뒤늦게 인터폰 너머로 나타나더니 대문을 열어주었다. (당연히) 엘리베이터는 없으므로 육중한 캐리어를 들고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2층 타투샵에서 키우는 불독들이 달려와 제 몸과 꼬리를 마구 문댔다. 동물 접촉을무서워하는 나로서는 레알 울고 싶은 순간이었다.
알바생은 나름 친절했다. 그러나 배정받은 방의 컨디션은 그 친절함으로어찌 상쇄할 수 없을 정도로 별로였다.
귀마개를 따로 준 것이 사려 깊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방음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거리의 차, 사람 소음이 너무 생생하여 그야말로 방 전체가 야외에 친 텐트 같았으며 옆 방 사람의 코 고는 소리까지 들리기에 챙겨간 드라이기도 거의 사용 못했다.
변기는 고정이 안 되어있어 볼 일 볼 때마다 사방으로 덜컹거렸고, 일정 각도로 맞춰야만 물이 내려갔다.발코니에는 옆 방에서 내놓은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구석 거미줄에 매달린 작은 거미는 오랫동안 방해받지 않은 듯 인테리어의 일부 같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방 문 손잡이가 덜렁거렸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부술 수 있는 상태였다는 점. 망가진 부분으로 문 밖이 살짝 보이는 것이 최악의 포인트였는데, 가끔 누군가 본인 방인 줄 착각하고 손잡이를 덜컥댈 때면 내 심장도 덩달아 덜컹 내려앉곤 했다.
1층 대문, 3층 현관문, 방문 출입에 필요한 3개의 열쇠를 받아 들자 갑자기 남편과 집이 그리워졌다.
'여기서 일주일 어떻게 지내지.'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눈 질끈 감고 지내보기로 했다. 남은 힘을 쥐어짜 근처 마트에서 물과 과일을 사 오고 마음을 다잡으며 잠을 청했다. (그 와중에 과일 가격이 싸서 반가웠다)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는데 새벽녘 여기저기가 따끔거려 깼다. 얼굴부터 시작해 팔, 손목, 발목 등 온통 무언가에 물려 부어있었다. 챙겨 온 연고를 바르며 혹시나 배드버그가 아닐까 이불과 베개 커버 등 침구류를 펄럭대 보았지만 딱히 벌레스러운 것은 보이지 않았다. 여행카페에서 배드버그 후기와 정보를 찾느라 잠은 달아난 지 오래. 한숨이라도 자야 하니이불 대신 가져온 가디건을 덮었다.
시차 적응에 대실패 했으나 유심침을 살 겸 이른 아침부터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러던 중 난데없이 미세한 소리와 바람이 내 귀를 스치는 게 아닌가.
왜애애앵-....
그렇다.낯선 환경 속 무엇보다 낯익은 이 소리.주인공은 다름 아닌 "모기"였다. 스페인 건물들엔 방충망도 없던데 모기는 있네? 방에 있는 거미는 쟤 안 잡아먹고 뭐한 걸까.
이후온촉을 세우고문과 창문은 다 닫은 채 모기와 신경전을 벌였다.
마침내 방문과 벽면이 만나는구석으로 모기를 몰아붙였다. 독대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운동화 밑창 부분을 던졌다.
응징
희한하게도 성공적 사냥을 시작으로 점차 방에 애착 비슷한 걸 느끼기 시작했다. 문 부실하고, 변기 덜렁거리고, 시끄러우면 좀 어떤가. 적어도 모기는 없다. 내가 잡았으니.외딴곳보다야 낫고 거리의 활기는 거의 피부로 와닿는다.타투샵 불독 주인에게 불쌍한 표정으로 "i have an allergy"라 하였더니 "오케이"라며 내가 오갈 때는 그 아이들을 자제시켜주신다. 지저분한 테라스도 바깥 풍경은 예쁘다.자포자기와 자기세뇌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조금씩 익숙해지고, 불편하지만 참을 줄 알게 되며, 무서움이옅어진다. 이제 진짜 Hola 스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