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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Nov 16. 2022

여행 시작을 알리는 3종 세트

낯섦, 불편함, 두려움

호기롭게 출발해 인천공항까지 3시간 반, 바르셀로나까지 13시간 반, 도심 카탈루냐 광장까지 다시 1시간. 마침내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드디어 이동수단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느낌도 잠시뿐, 금세 움츠러든다.


낯선 도, 간판 위 생경한 알파벳들의 조합, 길에서 나는 꾸리한 냄새와 사람들의 다양한 체취.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소매치기일 수 있다는 의심과 긴장 속에서 한 손에는 캐리어 손잡이를 꽉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꼭 쥔 채 걸었다.




숙소는 접근성과 치안이 괜찮은 1인실이었으나 불행히도 그 외 모든 것이 안 좋았다. 분명 예상 도착시간을 미리 알려주었으나 벨을 눌러도 응답이 없어 사기당한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속에 20분 넘게 떨어야 했다. 직원이 뒤늦게 인터폰 너머로 나타나더니 대문을 열어주었다. (당연히) 엘리베이터는 없으므로 육중한 캐리어를 들고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2층 타투샵에서 키우는 불독들이 달려와 제 몸과 꼬리를 마구 문댔다. 동물 접촉을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레알 울고 싶은 순간이었다.


알바생은 나름 친절했다. 그러나 배정받은 방의 컨디션은 그 친절함으로 어찌 상쇄할 수 없을 정도로 별로였다.


귀마개를 따로 준 것이 사려 깊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방음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거리의 차, 사람 소음이 너무 생생하여 그야말로 방 전체가 야외에 친 텐트 같았으며 옆 방 사람의 코 고는 소리까지 들리기에 챙겨간 드라이기도 거의 사용 못했다.


변기는 고정이 안 되어있어 볼 일 볼 때마다 사방으로 덜컹거렸고, 일정 각도로 맞춰야만 물이 내려갔다. 발코니에는 옆 방에서 내놓은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구석 거미줄에 매달린 작은 거미는 오랫동안 방해받지 않은 듯 인테리어의 일부 같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방 문 손잡이가 덜렁거렸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부술 수 있는 상태였다는 점. 망가진 부분으로 문 밖이 살짝 보이는 것이 최악의 포인트였는데, 가끔 누군가 본인 방인 줄 착각하고 손잡이를 덜컥댈 때면 내 심장도 덩달아 덜컹 내려앉곤 했다.


1층 대문, 3층 현관문, 방문 출입에 필요한 3개의 열쇠를 받아 들자 갑자기 남편과 집이 그리워졌다.


 '여기서 일주일 어떻게 지내지.'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눈 질끈 감고 지내보기로 했다. 남은 힘을 쥐어짜 근처 마트에서 물과 과일을 사 오고 마음을 다잡으며 잠을 청했다. (그 와중에 과일 가격이 싸서 반가웠다)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는데 새벽녘 여기저기가 따끔거려 깼다. 얼굴부터 시작해 팔, 손목, 발목 등 온통 무언가에 물려 부어있었다. 챙겨 온 연고를 바르며 혹시나 배드버그가 아닐까 이불과 베개 커버 등 침구류를 펄럭대 보았지만 딱히 벌레스러운 것은 보이지 않았다. 여행카페에서 배드버그 후기와 정보를 찾느라 잠은 달아난 지 오래. 한숨이라도 자야 하니 이불 대신 가져온 가디건을 덮었다.


시차 적응에 대실패 했으나 유심침을 살 겸 이른 아침부터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러던 중 난데없이 미세한 소리와 바람이 내 귀를 스치는 게 아닌가.



왜애애앵-....



그렇다. 낯선 환경 속 무엇보다 낯익은 이 소리. 주인공은 다름 아닌 "모기"였다. 스페인 건물들엔 방충망도 없던데 모기는 있네? 방에 있는 거미는 쟤 안 잡아먹고 뭐한 걸까.



이후  촉을 세우고 문과 창문은 다 닫은 채 모기와 신경전을 벌였다.


마침문과 벽면이 만나는 구석으로 모기를 몰아붙였다. 독대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운동화 밑창 부분을 던졌다.


응징

희한하게도 성공적 사냥을 시작으로 점차 방에 애착 비슷한 걸 느끼기 시작했다. 문 부실하고, 변기 덜렁거리고, 시끄러우면 좀 어떤가. 적어도 모기는 없다. 내가 잡았으니. 외딴곳보다야 낫고 거리의 활기는 거의 피부로 와닿는다. 타투샵 불독 주인에게 불쌍한 표정으로 "i have an allergy"라 하였더니 "오케이"라며 내가 오갈 때는 그 아이들을 자제시켜주신다. 지저분한 테라스도 바깥 풍경은 예쁘다. 자포자기와 자기세뇌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조금씩 익숙해지고, 불편하지만 참을 줄 알게 되며, 무서움이 옅어진다. 이제 진짜 Hola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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