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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Nov 24. 2022

마흔을 보여주어 고마워요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는 좌석이 여유로웠다. 3-3-3 배열 중 창가쪽 3개 자리를 홀로 차지하니 비즈니스석 부럽지 않았다. 기내식을 먹은 후 한숨 자는 타이밍이 되었는데 앞자리에 앉은 여자분이 갑자기 한 칸 좌측으로 이동을 했다. 그리곤 그곳에서 좌석 등받이를 조심스레 뒤로 젖히는 게 아닌가.


실로 보기 드문 센스가 아닐 수 없었다. 자리가 여유로우니 아무 생각없이 좌석을 젖힐 법한데 뒤에 앉은 나를 고려해 한 칸 이동해준 조용한 배려가 돋보였다.


 비행 후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버스 티켓 발매기 앞까지 당도했다. 그런데 좌석 그 분이  앞에 있다. 분명 내가 훨씬 서둘러 내렸는데 신기했다.


카드가 잘 작동되지 않는 지 갸우뚱하기에 도와주려 말을 걸었다.



"대한항공 타고 오셨죠? 제 앞좌석이셨는데."



15시간여만에 말을 튼 우리는 같은 정류장에서 내릴 예정임을 알고 서로가 더 반가웠다.


유럽이 처음이라는 그 분은 바르셀로나행 비행기가 그나마 저렴해 이곳을  행선지로 선택했고 도미토리 숙소만 예약한  무작정 왔다고 했다. 아담한 기내용 캐리어에 어찌 한 달 짐을 챙겼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카탈루냐광장에 막상 내리니 외워둔 숙소 방향이 헷갈렸다. 현지에서 싸게 유심침을 사겠다며 오프라인 지도만 달랑 다운받아 왔는데 작동하지 않아 쓸모 없었다. 무작정 걸어가보려는 찰나, 함께 내린 그 분이 날 붙잡았다.


"에이 초행길인데 불안해서 어째. 조금이라도 같이 가보죠."


본인 휴대폰으로 내 숙소를 검색하더니 경로를 따라 함께 걸어주는게 아닌가.




이후 우린 낮엔 각자의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 먹을 때만 만났다. 여행 중 만난 인연들이 대부분 그럴테지만 그 분과 나는 사적 질문 보다 지금, 여기에 집중했다. 뭘 하며 보냈고 어디를 가고 싶은 지, 음식 맛은 어떤 지.

두 명인 덕분에 다양하게 맛 본 타파스

왠지 미혼일 것 같다는 짐작을 했고 여유가 묻어나는 분이라는 느낌만 가진 채 그렇게 부담 없이 밥 메이트를 하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점점 깊은 속내도 나누게 되었다. 동안이신 탓에 나보다 어릴 것이라 예상했던 추측은 크게 빗나갔다. 6살 위로 곧 마흔을 앞두었고 웹디자이너로 일 하고 있다고 하셨다.


코시국때 업무량이 폭발하여 지친 나머지 퇴사하고 여행을 결심한 언니와, 휴직 후 남편 두고 뛰쳐나온 나는 자연스레 어떻게 살고싶은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공감했던 구석은 바로 삶의 유한함에 대해서였다.


유시민 작가  '어떻게 살 것인가'일부가 떠올라서 말을 꺼냈다.



"하루 사는 게 하루를 죽는 것과 같대요. 죽음은 결국 구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찾아올 보편적 숙명이고요. 은연중 피하고 싶어서 쉬쉬하지만 언니도 저도 '그쪽' 향해 가고있는 중이고요."



격하공감하시던 언니는 여행을 떠날때마다 집을 평소보다 단정하게 청소하신다 했다. 아주 만에하나, 어쩌면 못 돌아올 수도 있는 길을 떠나는거니까. 나도 비행기를 타고오는 내내 생각했었다. 만약 이 비행기가 잘못된다면 어떨까. 무섭고 슬프고 아쉽겠지. 그런데 그런일이 벌어진다한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게 유일하게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니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데에 공감했다. 언니는 휴직의 당위성을 찾으려는 나에게 쉴 때를 아는 것도 능력이고 그대로 추진하는 건 더 큰 능력이라 했다. 10년 일했으면 퇴직금으로 당분간 먹고는 살 수 있다며 앞 길에 대한 고민도 장려했다. 물론 공기업이라는 튼실한 울타리는 여느 자리보다야 현실적으로 아깝다며 덧붙이셨다.


"여태 그 안에서 의미 없는 세월은 아니었을 거예요. ㅇㅇ씨 보면 성실하게 살아왔을 게 눈에 보이고, 그에 대한 댓가로 지금 또래들 평균보다 더 많은 걸 가졌을 거라 생각되거든요. 나는 그렇게 채찍질하며 살 자신은 없었고 직군 특성이지만 회사도 자주 옮겨다녔어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 불안할만도 한데 큰 욕심 내지 않으면 먹고살 수는 있다며 웃어보이셨다.


"나한텐 10년 이상 한 회사에 몸 담은 경력이나 혹은 결혼해서 꾸린 가정이 있진 않아요. 근데 그럴 자신이 없었으니까. 대신 옮기고 싶은 곳으로 옮기고, 다니고 싶은 곳을 다녀요."


'자신 없었다'는 언니의  아이러니하게도 확신 실려있었다. 내친 김에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속내를 더 풀어보기로 했다. 사실 제 2의 진로를 찾고 싶은 내 의지에 제일 크게 걸리는 것이 있다면, 시댁 어른들이다. 늘 인자하시지만 안정적 직장에 몸 담는 며느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상당 부분 갖고 계시고 간혹 이런 식으로 표출하신.


"너는 아이 낳자마자 복직해도 돼. 우리가 애 봐주면 되지."

"요새도 직장생활 별로야? 그렇게 좋은 데가 또 어딨다고~"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를 돌봐주신다니 물론 감사해야할 일이다. 하지만 내 아이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내가 직접 키울 수 있을 때 낳을 예정이니, 차라리 '좀 덜 벌면 어떠니. 아이한텐 엄마가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여튼 내 말을 들은 언니는 처음으로 난색을 표했다.


" 맞다. 시부모님이 계시죠.. 부모님이야 결국 이해해주시지만.. 참, 살면서 시부모님은 생각해보지 않았네."


미혼인 언니는 당연하게도 의사결정시 시부모님을 떠올린 적이 없었을 것이다. 사람마다 고려해야할 요소들이 다르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언니의 여유로운 성격은 여행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한 달 전부터 각종 표를 예약하고 매일 어떻게 움직일지 엑셀에 빽빽히 정리해온 나와 달리,


"내일은 길 가보려고요."

"오늘은 걷다가 박물관에 들어갔더니 공짜인데다 심지어 너무 괜찮은거예요."

"어젠 폰 배터리가 나가서 길을 한참 헤맸지 뭐예요."


즉흥과 우연을 즐기는 언니는 느긋한듯 싶으면서도 그 안에서 나름의 부지런함으로 삶을 채우고 있었다. 걷다가 가로등 하나를 보고도 어떻게 이렇게 생겼냐며 멈춰서서 들여다보곤 했는데 웹디자이너로서 가진 미적 소양과 호기심이 존재감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마지막이자 최고였던 식사. 문어 요리는 메뉴에 없었지만 가격 협상 후 내주셨다.

식사를 마칠때마다 "그래도 내가 언닌데 좀 더 낼게요." 라며  민족 내리사랑도 잊지않고 베푸셨는데 수많은 맛집들을 저장해둔 내 구글맵을 보며, 덕분에 이런 집에 와본다며 고맙다했다. 그래도 미안해하는 나에게 본인은 퇴직금 받았으니 괜찮다며 마음의 짐까지 덜어주시기에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졌다.


치안이 상대적으로 별로라는 고딕지구의 야경투어가 유익했기에, 마지막 식사를 마친 뒤 배운 코스 그대로 언니를 안내했다. 

흥미로워하고 재미있어하는 표정을 보니 진짜 가이드라도 된양 뿌듯했다.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니었던 바르셀로나에서의 추억을 함께 만든 언니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었다.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오니 오랜 친구를 보낸 것 같은 서운한 마음이 앞섰다.


다음 날, 허전마음도 달랠겸 언니가 추천한 해변을 걷는데 톡이 왔다.

사전 체크인 전 최상의 자릴 찾겠다며 비행기 좌석을 5번 넘게 바꾸지 않았더라면 언니를 만날 수 있었을까. 언닌 출발 전 날 내키는 자리를 그냥 선택한거라는데. 우연에 우연이 거듭해 맺어준 인연이었다.


온화함 속 배려와 강단을 동시에 보여준 언니는 그냥 마흔이 아니었다. 닮고싶은 마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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