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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Jan 13. 2023

멋지게 잘 늙은 중장년 골프장

더 로얄치앙마이 골프 리조트

늦은 밤 치앙마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조용한 골프장, 로얄치앙마이로 향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표지판이나 가로등이 갖춰져 있지 않아 길이 잘 보이지 않았고 불안한 마음에 과연 맞게 가고 있는 건지 몇 번이나 지도를 열어보았다.



다음 날 아침. 거의 인생 첫 라운딩을 위해 이른 아침 일어났다. 시설이 낡았지만 태국 특유의 전통미가 살아있는 리조트였다. 조식을 먹으러 식당에 갔더니 부모님은 이미 와계신다. 활짝 열린 폴딩도어로 선선하면서도 아주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영하 20도에 떨다가 이 무슨 호사란 말인가. 열린 문으로 들개들이 들락날락했지만 딱히 제지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대망의 첫 홀. 1인당 1캐디 및 1카트가 배정되는 모습은 신선함을 넘어, 황송했다. 아빠의 아이디어로 한국에서 사간 마스크팩을 몇 장씩 나눠드렸더니 좋아하셨다. 어색한 인사를 마친 후 건네주시는 드라이버를 받아 휘둘렀다.

정오가 가까워질수록 귀신같이 뜨거워지는 햇살은 남쪽나라에 와있음을 실감하게 해서 싫지 않았다. 12월의 치앙마이는 아침, 밤엔 서늘한데 낮이면 본연의 뜨거운 햇빛을 가감 없이 내리쬔다. 그래도 그늘에만 서있으면 불쾌감이란 느낄 수 없는 초가을 날씨다. 게다가 한국과 달리 페어웨이 안까지 카트를 타고 다닐 수 있기에 캐디님은 내가 떨어트린 공의 위치를 귀신같이 기억하셨다가 코 앞에 내려주신다. 왜들 태국에서 하루에 36홀씩도 즐긴다는 지 알 것 같았다. '덜' 힘들기 때문이었다(물론 카트 페어웨이 진입이 불가한 골프장도 있다고 한다).




두 번의 라운딩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같이 웃고 땀 흘리며 간혹 잘 맞는 공에 위안받으니, 아쉬운 건 흘러가는 시간이지 점수 따위가 아니었다.


로얄치앙마이는 빠르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는 없었다. 꽁꽁 숨어있어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일도 없다. 그러나 일단 안으로 들어와 녹아드는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흐른. 친절하면서도 여유로운 직원들, 낡았지만 변함없이 제 역할에 충실한 시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우리를 기다린다. 골프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개와 고양이들에게까지 안정감과 여유가 느껴졌다. 이곳의 주 이용층 또한 연배가 있으신 편이었다.

환상적인 경험의 가격을 알고 나니 더 감사했다.


18홀 기준,

회원가 1인은 캐디피(팁) 포함 1200밧(48,000원)

게스트 3인은 캐디피 포함 1450밧(58,000원)

으로 우리 가족의 라운딩 한 번에는 총 222,000원가량이 소요됐다.



한국보다는 말할 것도 없고 예상보다 크게 뛰어난 '가성비'에 놀란 나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과 마주했다.


'골프 재밌다... 뽕빼고 가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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