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머릿 속으로 그리던 현지 식당이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벽면에는 팟타이, 새우볶음밥 등 익숙한 음식 사진들이 붙어있는데 불맛을 입히는 볶음 요리가 주력인 듯 했다. 많이들 시키는 음식들이 그림으로 나와있으니 참고하거나 방대한 영어 메뉴판을 재미삼아 찬찬히 훑어도 된다. 음식 하나당 가격은 50~70바트로 3000원이 채 안 되는 가격이지만태국 어딜가나 그렇듯 맥주는 큰 병 하나당 80바트로 현지 물가대비 비싼 편이었다(불교국가라 일부러 주류에 소비세를 세게 먹이는 건지 술 값이 비쌌다. 낮 3~5시 사이엔 아예 술 판매도 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며 팔더라도 종이컵에 담아 몰래(?)마시게끔 해준다).그 귀한 맥주가 안타깝게도덜 차가운 편이라 얼음을 요청해잔에 넣어 마셨고, 적당히 희석 되어 술술 잘 넘어갔다.
무엇보다 공심채(모닝글로리) 볶음은 치앙마이에서 맛 본 중 제일 맛있었다. 두 번째 방문때에는 1인 1 공심채를 주문하여 메인메뉴들과 곁들여 먹었을 정도다. 가격도 합리적이고 정감 있는 현지 분위기를 자랑하니 다국적 손님들로 북적이는데, 6시 좀 넘으면 그랩 배달 오토바이들까지 몰려와 문전성시를 이룬다. 치앙마이에 밤 늦게까지 하는 식당이 은근히 잘 없는데 여긴 새벽 2시까지 영업한대서 마음 편히 먹고 마셨다.
2. 블루누들 (추천메뉴 : 8,9,10번 국수, 면발굵기는 중간(센렉) or 가장 굵은 면(센야이))
도착 첫 날,고작 몇 시간 자고 일어나 장장 5시간에 걸친 라운딩을 마치고 나니 다들 기진맥진이었다. 지친 가족들을 데리고 무모한 도전을 할 순 없기에 다수의 유튜버들이 검증을 마친 소고기 쌀국수집으로 향했다. 일요일 3시경 방문했는데 자리를 배정 받고 음식을 입에 넣기까지 40분 정도 소요됐다. 줄 서서 무언가를 먹는 것에 익숙치 않은 부모님, 특히 아빠는 대기 내내 '아무리 맛있다한들 다신 안 온다, 여기시스템은문제가 많다' 며 뿔이나있으셨다. 마침내 자리에 앉았고,모두 큰 그릇으로 주문했다(작은 사이즈 60바트, 큰 사이즈 80바트). 결과적으로 진짜 한 입만 먹을 게 아니라면 큰 그릇을 시켜야 맞다.
국물과 면발을 한 번씩 호로록하는동안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너나 할 것 없이'기다릴만하다!' 며 전원 급 태세전환을 해버렸다. 심지어 아빠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익숙한 소고기 육수에 약간의 약재향이 더해져 갈비탕과 족발국물을 섞어놓은 맛 같았다. 테이블 위의 고춧가루를 넣어서 좀 더 칼칼하게 만드니 개인적으론 더 나았다. 국물 속 초록 풀떼기는 고수가 아니라 쑥갓(?)향과 맛이 나는 무언가였다. 센렉(중간굵기) 면을 가장 많이들 주문하지만 제일 굵은 면인 센야이도 야들야들한 수제비같고 맛났다. 첫 입에 반하신 엄마는 이후로도 블루누들 노래를 부르셨고 결국 아침 일찍오픈런에 한 번 더 도전했다. 한 테이블만 제외하고 싹 다 한국인이었다.
외국음식을 대체로 좋아하시는 아빠가 왠일인지 길거리에서 돼지고기 국물을 맛 보시곤 얹힌 듯 느글거린다셨다. 나이가 들며 입맛이 변하는 것 같다며 웃으셨지만 정말 힘들어 보이셔서 다음 식당은 신중히 고르기로 했다. 그렇게 도착한 이 식당은 자연스레 카오톰밧디아오와 비교되었는데, 결론적으로 처음 먹어본 수끼 메뉴(26번)가 대성공이었고 새우볶음밥과 팟씨유, 팟타이도 괜찮았다. 메뉴당 가격대는 70~90바트 정도였다. 아빠는 밥이 고프셨던 건지 새우볶음밥을 특히나 맛있게 흡입하셨다. "이건한국 고급 중식당 맛이다!" 라는 말을 무한반복하시면서.. 고슬고슬한 계란밥에 탱글하고 신선한 새우가 짭쪼롬하게 간을 맞춰주니 맛 없을 이유가 없었지만, 더 저렴하면서도 북적이는 현지 분위기를 선사한 카오톰에 한 표를 더 주고싶다.
선데이마켓 구경을 마친 뒤 저녁을먹으러 가려는데 그랩 택시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포기하고 길거리 툭툭을 타고 가잔 말에 부모님은 흠칫 하셨다.세 발 오토바이에 넷이나 타자니 겁 나셨던 것. 무작정 셋을 끼어 앉힌 후 나는 남편 무릎에 철푸덕 앉았다. 휘청대면서도 길 먼지와 기름냄새를 열심히 헤쳐나간툭툭이 덕에 무사히 도착했다.
일본 뒷골목스러운 분위기는 일단 합격이었다. 인근까지 숯불향이 가득한데 주민들이 민원을 넣진 않을까 잠깐 궁금했다. 10분 정도 대기하니 원하던 야외자리가 났고, 양이 적다기에 메뉴판을 다 읊을 기세로 여러가지를 주문했다. 손님이 많아 종업원들이 자주 까먹곤해서 안창, 갈비, 대창, 곱창, 우설 등 다 서빙 받기까지 꽤 오래 걸렸지만, 제일은 삼겹살이었다. 한국에서 먹는 것 만큼이나 도톰했고 함께 나오는 양상추에 마늘을 넣고 쌈을 싸 먹으니 약간의 느끼함 조차 올라올 틈이 없었다. 아쉽지만 소고기 메뉴들은 대부분 질겼다. 곱창은 마르고 부실한 느낌이었고 반대로 대창은 기름이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생맥주가 분위기를 계속 돋구어주었다. 4명이 배 터지게 먹고 생맥주도 실컷 곁들였는데 1200바트가 찍힌 영수증을 받았을 때 깨달았다. 저렴한 가격이 아쉬운 맛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걸.5만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누린 한 끼라 생각하니, 여기 괜찮다. 고기 먹고 싶을 때 올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