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라운딩을 한 노쓰힐 골프장은 현대적이었고 도심에서 가까워 오가기 편리했다. 한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많은 지 도처에서 한국어가 들렸다.
부모님과 남편은 잔디 상태도 좋은 편이라입을 모았으나생초보로서 풀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공감하지 못하던 차에엄한 선생님 같던 '다' 캐디님과 인연이 되었다.
"120m 이니까.. 7번 아이언 주세요."
"...No."
여태 뵀던 분들과달랐다. 만나자마자 나의부족한 실력을 파악한 건지, 요청드린 채보다 한 두 단계 더 긴 거리용의 채를 권했다...기보다 강제로 건네주셨다. 자존심 상하기도 잠시일 뿐, 정확히 그녀가 예언한 만큼만 날아가는 공을 확인할 때마다 신뢰는 높아져갔다. 도랑, 개천이 많아 틈만 나면 공을 잃어버렸고 나의 캐디 선생님은 그때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험한 곳에 들어가 공을 주워오셨다. 감사하면서도 미안해서 같이 공을 줍다가옷이 엉망이 되기도 했다.
마흔 살이라던 다 캐디님은 승부욕이 강해 나를 놀리는 남편을 진심으로 얄미워했으며 어떻게든 이기게 해주고자 노력했다.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설 때면 멀리 있다가도 후다닥 달려와 바로잡았고, 퍼팅을 앞둘 때면 몇 번이고 방향을 고민하여 심혈을 기울인 공을 놔주시곤 했다.마지막 홀이 다가올 수록 지칠 법도한데 꼭 '파'를 해보자며 자녀 교육열에 불타는 엄마 눈빛까지 보였는데, 끝내 엉망인 점수로 마무리한 것이 두고두고 미안했다.
함께한 지 이틀 째.매 홀마다 애써 실망을 감추고 다음 공략에 나서는 캐디님께 더 나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의지에 불탔고 그러는 동안 '실전감각'이 조금씩 발전해갔다. 점수로 보여주지 못해 아쉽던 찰나, 갑자기 다가 따로 챙겨 온 아이스백을 주섬주섬 뒤지기 시작했다. 투명비닐로 정성스레 포장한 탐스러운 코코넛4개가나왔다.
시원한 즙을 한 모금 빨아들이니 여태 먹어본 코코넛중 가장 달고 고소했고, 챙겨주신 숟가락으로 쫄깃담백한 과육도 손쉽게발라낼 수 있었다.그 자체로도 감동이지만 먹어보니 더 큰 감동이 밀려와 온 가족이 골프는 뒷전이고 먹느라 정신 없었다.이후 시장이나 식당 그 어디에서도 이 정도 퀄리티의 코코넛은 찾지 못했는데, 한국인이 수박을 잘 고르듯 태국인이 고른 코코넛은 뭔가 다른 모양이었다.
이틀 째 일정을 마치고 내일도 같은 캐디님을 배정해달라는 말을 깜빡했더니, 다음날이자 마지막 날엔 한 분을 제외하고새로운 분들이 오셨다. 남자 캐디님은 처음이라 어색해서 자연스레 말수가 줄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골프라는 생각에 비장함도 생겼고, 이번 여행에 대해 부모님께 너무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마주한 17번째 홀 PAR 3. 남편이 115m 정도 되는 거리라고 해서 7번 아이언을 선택했다. 캐디님이 주신 나무재질 숏티에 공을 올리고 채를 휘둘렀다.
"딱"
소리와 함께 손에 느껴지는 타격감이 적절하다. 잘 맞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잘 맞긴 했는데, 방향이 틀렸다. 야속하게도 왼쪽으로 날아간다.
지켜보던 모두가 '멀리건'을 쓰라고 했다. 스스로도 아쉬웠기에 곧장 자세를 다시 잡고 섰다. 아까 왼쪽으로 날아갔으니 내 생각보다 우측을 보기로 했다. 아까의 느낌을 기억하려 애쓰며 다시 한번 채를 휘둘렀다.
다시 한번 "딱" 소리가 났다. 잘 맞은 것 같은 느낌도 찾아왔다.
"어!!??... 어???들어갔다!!"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도 뒤이어 놀란 목소리로동조했다.
홀컵 앞 4~5m 정도 앞에 떨어진 공이 통통 튀기며 굴러가다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했다. 정작 나는 보지 못했는데, 아빠와 남편이 본 게과연 맞을까 두근대기 시작했다.
"아 근데 멀리건 썼으니까..멀리건 홀인원이야."
급흥분하셨던 아빠는 이성을 되찾으셨다.
공이 홀컵 안에 없으면 어쩌나 떨리는 마음으로 뛰어갔다.
너무도 다소곳이 잘 들어가 있는 공을 확인한 순간 그제야 나도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이틀을 함께했던 다 캐디님이 떠올랐다. 같이 있을 때 이렇게 잘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백돌이의 기적적 기적 17홀
노스힐을 떠나려는 찰나, 갑자기 저 멀리서 누군가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게 보였다. 내가 못 알아보는 것 같으니 등에 적힌 73번 번호를 보여주며 뛰어온다. 다 캐디님이었다.
"오늘 멀리건 홀인원 했어요. 덕분이에요.코쿤카~!"
캐디님은손을 잡고 기뻐해주며 이제 떠나는 거냐고 물어보셨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요.다시 올게요. 유 아 더 베스트 티쳐!"
말은 안 통해도 마음이 통했던 캐디님과의 추억 덕에 더 값졌던 홀인원은 나 같은 초보에게 과분한 기적이었다. 어쩌면 그만 불평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열심히 배워보라는 당근을 선제시 받은 게아닐까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