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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을 파는 잡화상 Aug 02. 2023

문지기 옆에서

카프카,「법 앞에서」

카프카의 「법 앞에서」는 짧은 소설이다. 카프카는 이 짧은 소설 안에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바, 혹은 관념을 형상화해 냈다. 그런 의미에서 「법 앞에서」는 원고지 매수와 상관없이 내용의 두께가 두툼한 소설 같다. 자꾸 곱씹어 보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다. 도대체 ‘법원 앞’도 아닌 ‘법 앞에’ 서 있는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카프카와 비유라는 전제를 깔고 읽으니 망정이지 이런 식으로 쓰면, 교정이 들어가기 십상일 듯하다. 법관 앞에서, 법원 앞에서, 법정 앞에서 등등으로. 


시골에서 온 사나이가 법 앞에 서 있는 문지기에게 법 안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입장을 허락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사나이는 ‘지금은’ 안 된다면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문지기는 가능하다고 답한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고 다시 강조한다. 


시골 사나이는 법이란 모든 사람 앞에서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문지기의 ‘지금’은 안 된다는 제지 때문에 문지기 옆에 앉아 문지기가 허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택한다. 그는 어떻게든 법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문 하나도 통과하지 못하고 가져온 재물을 문지기에게 다 탕진하고 죽어간다.


소설에서 ‘법’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큰 타자이기도 하고, 관료제 체제로 볼 수도 있고, 욕망하는 대상일 수도 있다. 욕망의 대상은 욕망하는 자를 직접 만나 주는 일은 드물다. 게다가 대개의 욕망은 금기와 더불어 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문지기는 욕망하는 주체가 욕망의 대상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일을 방해하는 금기나 지연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욕망의 증대를 위해 금기와는 가까이 있어야 한다.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 구도로 이 소설을 분석해 볼 때 삼각형의 깨짐은 욕망의 부재를 드러내며, 이는 곧 죽음을 나타낸다. 욕망이 증대되는 법을 알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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