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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을 파는 잡화상 Aug 02. 2023

웃을 수 없는 사회

밀란 쿤데라,「아무도 웃지 않을 것이다」

쿤데라의 「아무도 웃지 않을 것이다」를 읽다 보면 장편소설『농담』을 떠올리게 된다. 농담 한마디가 화자의 인생행로를 어떻게 바꿔나가는 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별것 아니라 생각해 던진 ‘농담’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복잡하게 발전해 나간다. 살아가는 일이 단순한 듯하면서 복잡하고 복잡한 듯하면서 단순한 것은 왜일까? 때론 더할 수 없이 비극적인 세계의 모습이 때로는 기막히게 희극적인 모습을 띠는 것은 또 왜일까? 울면서 웃는 상황과 웃으면서 우는 상황은?     


「아무도 웃지 않을 것이다」 체코의 시대적 상황에서 일어날 법한 일로 일종의 상황극으로도 볼 수 있다. 대학교수인 클리마는 어느 날 차투레트스키라는 사람에게서 자신의 논문에 대한 평론을 써달라는 청을 받는다. 클리마는 차투레트스키의 논문이 자격미달이란 판단을 내리고 어떻게 해서든 그의 논문에 대한 평을 쓰려하지 않는다. 쓰게 되면 자신의 지적인 양심에 의해 혹평을 할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클리마는 최대한 차투레트스키를 만나지 않으려 거짓을 불사하며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차투레트스키는 이런 그의 의도를 눈치 못 채고 그를 만나기 위해 그 역시 온갖 노력을 다하는 가운데 클리마에 대한 오해는 점점 증폭된다.    

  

클리마는 모더니스트이다. 그는 이성적 합리주의자로 이원론자이다. 그런 그에게 상황 파악은 매우 냉정한 분석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가 차투레트스키의 논문에 대한 평을 써 줬더라면 그를 둘러싼 외부 세계의 문제는 쉽게 종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그는 자기 내부의 비판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평을 쓴다는 것은 냉정한 지식인으로서의 자기 진정성을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그는 계속해서 차투레트스키에게 거짓말을 해댄다.   

   

클리마에게 세계는 일체성이 아닌 어긋남으로 인식된다. 그는 기의와 기표를 분리해 세계를 바라본다. 그가 자기 진정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이 가능한 이유일 것이다.


그에 비해 차투레트스키는 무지한 열정주의자이다. 그는 무모한 감성과 열정으로 뭉친 일원론자이다. 그런 열정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행동한다. 그는 기표와 기의의 일체성에 대한 허망한 신뢰를 품고 있는 이로 그 당시 체코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클리마와 차투레트스키의 어긋남과 충돌은 사회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다. 결국 모더니스트인 클리마의 입장은 점점 곤궁한 지점으로 추락한다. 당시 체코 사회에서 그렇지 않는다면 그 또한 아이러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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