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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을 파는 잡화상 Jul 08. 2023

놀이에서 스타일로, 성공적인 성장통

오은,『호텔 타셀의 돼지들』

                 


                                                 

1982년생인 오은은 2002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은 오은의 첫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으로 “비트겐슈타인의 마지막 연인이자 최초의 연인”1) 이 된 시인은 “성난 입술”2)로 “클리셰와 접속하는 전복적 유희의 상상력”3)을 통해 언어유희의 미학을 극단까지 몰고 간다. 시인은 다국적 인물, 다양한 문화적 코드, 음악, 영화뿐만 아니라 과학 수학까지 시 속에서 놀게 하는가 하면, 자본 문명 안에 존재하는 욕망의 허기들, ‘식충이들’을 신랄하게 꼬집는다는 평을 끌어낸다. 강동호는 “무수한 신생의 삶 중 저 막대한 죽음의 성운을 뚫고 솟아오르는(spring) 데 성공하여, 독자의 꽉 막힌 소통의지 마저 충격하고 열리게 만드는 시인”4)이라고 그의 첫 등장을 설명한다.      


더블린은 지금 

텀블링하기 좋은 날씨

방과 후의 아이들이 

봄처럼 튀어 올랐다     

해바라기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씨들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주근깨를 볼에 심은 아이들이 

발끝을 모으고 

해를 향해 

자신들의 경쾌한 근원을 향해

스프링, 스프링

튀어 오를 때


                           -「스프링」 


이렇듯 텀블링을 하면서 봄처럼 튀어 오르는 천진한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들은 그 모든 도약이 꽈배기 한 입에서 시작됐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그런 아이를 잃어버린 어른들에게는, 당신들이 잃어버린 ‘놀 줄 아는 아이들’이 여기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강동호는 첫 시 「스프링」에 시인 오은의 시적 존재태의 근원이 드러나 있다고 본다. 시는 첫머리에서부터 끝까지 ‘스프링’이라는 하나의 시어를 중심축으로 다양한 소리와 의미를 분화시킨다. ‘스프링’은 음가의 차이를 바탕으로 마블링, 고블린, 더블린, 텀블링 등 환유적으로 변주되면서 시에 독특한 언어적 리듬의 파고를 생성시킨다는 것이다. 낯선 말장난과 같은 문법으로 시를 이뤄내고 있는 오은의 작법은 한국시사에서 독특한 시도로 평가된다.      


당신이 슬프고 맥주를 좋아한다면…     

모스크 바(bar)에 가자 모스크 바에 가면 당대최고의 가수 빅토르 최를 만날 수 있다 제네  바의 가수는 항상 하이디, 그녀는 요들송만 부른다 바르샤 바의 술값은 너무 비싸 위스키 한 잔에 이스탄 불(dollar)을 내야 한다 이쯤 되면 우리가 모스크 바에 가는 것은 당연해진다(중략) 힘을 좇는 자들에겐 그저 비아그라나다오 대신 우리에겐 자유를 주오……     

                                     -「말놀이 애드리브 - 모스크 바에는 빅토르 최가 있다  중」     


시의 말장난이 단순한 말장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통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시적인 것의 존재론을 새로운 방식으로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은은 기표를 중심축으로 다양한 기의를 매개하고 증식시킨다. 기표의 반복적인 출현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충만한 의미가 아니라, 그 기표 사이를 절단시키는 무의미라는 틈이다. 시어는 더 이상 주요한 의미를 독자에게 전달하거나 혹은, 예술적인 아우라를 획득하기 위해 동원되지 않는다. 개연성이라고는 오로지 기표들, 즉 무의미의 섬광뿐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의 시적 언어는 이른바 끊임없이 언어를 소모하는 방식으로써 스스로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역설의 존재태를 산다. 기표가 무의미와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기표와 기표 사이의 관계성 자체에 공백만을 수놓음으로써 언어 자체의 물질성, 즉 음성학적 특질에 의한 무한한 자기 복제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5)


오은의 시는 지성과 위트, 반어의 포즈를 형식화한다. 시인이 전략적으로 각종 클리셰들을 시속에 배치한다. 능동적인 ‘당신’과 수동적인 ‘나’의 관계, 그리고 경어법의 사용은 (「탄성한계점」) 익숙한 연시풍이다. 그는 직장에서 일상적으로 나눌 법한 대화를 가져다가 배치(「패시브_어그래시브」)하기도 하고, 아예 대놓고 속담 각종 관용어구들을 수집하고 찢어 붙이는 말놀이를 원고지 6매가 넘도록 이어간다. 이런 선택과 배치들은 오은의 시인관을 보여준다. 


그는 ‘위대한 시인’을 부정하며 다만 주변의 언어들을 선택 배치 구성하는 작업만을 수행하는 작은 시인관을 형식화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오은 시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평범함을 가장한 일방적 폭력적 관계에 대한 차가운 시선과, 그 관계에서의 이탈하기 위한 일탈이다. 그는 이 일탈을 매우 가볍게 거침없이 장난기와 웃음기 있는 언어 배치로 엮어낸다. 오은의 시는 세상에 대한 지적 성찰과 소심한(?) 복수를 품고 있다. 위트에 의해 갈등이 상쇄되어 있지만 오은 시의 시적 주체는 폭압에 대해 차갑게 인식하고, 뜨겁게 견디고 있으며, 복수와 일탈을 이야기한다. 폭압과 권력을 부정하고 세상과 독자의 뺨을 후려칠 수 있는 그의 유쾌하고 명쾌한 ‘놀이 같은 시는 2000년대의 시인들 가운데에서 독보적이고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당신의 두 손에 온몸을 맡기겠습니다. 절대 놓지 마세요. 밀고 당기는 데 필요한 탄성계수는 내가 구하겠습니다. 나를 놓으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사실만 명심하세요. 당신의 뺨을 후려칠 수도 있습니다. 그게 한번 늘어난 자의 운명입니다. 

                          -「탄성한계점」  


이 시의 1연에서 마침표가 부정되고 쉼표가 ‘무서운 기호’로 등장하는 것은 중의적이다. 이는 시를 함축적으로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백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생을 관계를 종결하고 싶은데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쉼표는 종결을 불허하며 계속 ‘쭉쭉 늘어난 상태를 견디도록’ 종용하는 기호이기 때문이다. 쉬엄쉬엄 가라면서 ‘나’를 놓아주지 않고 착취하는 당신은 나의 운명을 틀어쥔 사람이다. 이 관계-권력의 구도는 표층적으로 볼 때, 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도록 일방적 폭력적으로 짜인 듯하다. 그런데 화자는 자신을 ‘절대 놓지 말라’고 경고한다. 당신과 나의 관계에서 탄성계수는 ‘내가 구하겠다’며, 관계의 주도권을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은 나를 함부로 놓을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여 계속 나를 잡아 늘일 것이고, 탄성한계점에 도달하여 끊어지면 단성은 탄성으로 전환될 수 있다. 잡아당긴 자와 늘어난 자는 관계의 감옥 속에서 팽팽히 신경전을 벌이며 서로 힘을 주고 있다. 시인은 자아를 억압하거나 규제하려는 모든 것에 대한 반항심리를 절묘하게 시적 방법론으로 완성시켜 가고 있다. 폭압적 대상을 희화화하는 것이다. 이런 희화화를 통해서 그는 어른들(「환절기」)로 상징되는 힘의 구조를 일시에 추방하고 쾌재를 부르며 쏜살처럼 달려 나간다. 오은의 냉소는 반어의 포즈인 수동적 공격성으로 나타나며, 이는 클리셰와 접속하여 형식화된다. 6)    

  

 『호텔 타셀의 돼지들』을 읽고 언어의 저글링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의 저글링 솜씨는 적절했다. 말놀이를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 가닿고자 하는 지점이 어디든 간에, 그의 시는 잠시 우리 뇌를 놀게 만든다. 감정과 감성이 아닌 다른 뇌를 더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의미와 감정과 감성, 욕망으로 과부하 된 뇌를 덜어주는 시 작업. 그 안에서 개인과 문화와 사회, 역사적 사건들이 욕망을 서로 밀어내고 잡아당기고, 부딪치면서 끝없는 유동성을 만들어 내는 듯하다. 문화와 역사가 잘 버무려진 (「모던타임스」),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어제와 오늘내일에도 있을 분신들(「제인」), 힘의 역학관계 (「팔굽혀펴기」), 역사적 사건들이 열거되고(「어떤 날들」) 등을 통해 고정관념과 기억과 망각 사이를 비틀어 해체하고 재구성을 통해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간다.      


청년이 된 한스는 궐련을 끄고 눈을 감았습니다. 꿈을 가르며 총알이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것도 현상이나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움직임이 스타일이 되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밤들이 필요할까요? 내게 질문할 권리가 있긴 한 걸까요? 아침이라는 수수께끼가 바야흐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한스」      


첫 시에서 그는 자신의 등장에 대한 반응을 정확히 예측(기획?)한 듯싶다. 그는 준비된 새싹이었던 것이다. 스프링처럼 화자는 스타일을 사랑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찾아 사춘기적 모험을 떠났고 그는 청년이 되어 어른들의 세계에 ‘새로운 스타일’로 도착했다. 




1) 문학평론가 박상수(알라딘 책 소개 중)

2) 문학평론가, 시집의 작품해설

3) 이수정(2008). 작품론, 「클리셰와 접속하는 전복적 유희의 상상력」, 열린 시학 13(2), 193-201

4) 강동호(2009). 오은, 고영민, 김기택 시집 리뷰. 열린 시학, 14(2), 201-208

5) 위의 책 

6) 이수정(2008). 작품론, 「클리셰와 접속하는 전복적 유희의 상상력」, 열린 시학 13(2), 19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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