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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을 파는 잡화상 Jul 06. 2023

술, 너무도 다정한  

권여선,『안녕, 주정뱅이』



대개의 사람들은 일상의 균열을 두려워한다. 신문에 나는 수많은 사건 사고를 보면서 일상이 깨지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를 쓰고 일상에 기대어 살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관습의 잣대에 맞춰 살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다 숨이 막히면 숨 쉴 공간을 찾는다. 음주는 숨통을 찾아 나서는 방법 중 하나이다.


술 마시기는 견고한 일상 버티기에 균열을 내는 작업이다. 주신의 신전으로 들어가는 순간, 일상은 뒤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잠깐의 해방.      


<봄밤>의 영경은 주구장창 술을 마셔댄다.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유쾌하고 나른한 생명감이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라비틀어진 북어 같은 인생에 알코올을 수혈한다. 교사인 영경은 짧은 결혼생활을 마치고 아이까지 뺏긴다. 그 자리를 알코올이 채운다.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신다. 그러다 수환을 만난다. 그도 불행을 닮았다. 영경은 그녀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수환이 있어도 술 마시기를 멈추지 못한다. 떨어져 살기 싫어 아픈 수환을 따라 요양원으로 들어온 영경이지만, 이미 음주는 루틴에서 제의로 넘어섰다. 제의는 중독성이 있다. 그걸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찾아오고, 그 순간들이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수환이 죽어가는 순간, 영경은 요양원 밖 모텔에서 술을 마시다 의식을 잃는다.  


이 소설집에는 <봄밤>, <삼인행>, <이모>, <카메라>, <역광>, <실내화 한 켤레>, <층> 모두 7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모두 술을 매개로 전개된다.      


사람들은 술을 왜 찾을까? 술과 얽혀 돌아가는 인생사에는 어떤 사연들이 있을까? 짐작할 만한 일들이라고 하지만, 이 소설집에서 그들은 구체적이고 생생한 삶으로 다가온다. 한편 한편 읽어나가다 보면 이해되지 않을 삶이 없다. 논리적인 것이 아닌 심정적 이해다. 이심전심. 다른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유예하다 결국 다 주고 떠나는 이모의 삶. 셔터를 한 번 누른 것뿐인데 우연한 사건으로 죽음의 길을 걸어간 남자와 그 죽음을 필연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누나와 전 애인. 그리고 그 카메라를 손에 쥔 여자.  어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신인작가, 여고시절 동창생이지만 그때나 몇십 년이 흘러 우연히 만난 현재나 서로를 알 수 없는 관계인 사람들. 내가 살고 있는 룸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사는 것만 같은, 그런 불길함을 갖고 사는 사람들.      


존재의 그늘을 엿보는 것만 같았다.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그림자가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 이 소설집이 말하고자 하는 바일까. 아마도 소설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술집을 기웃거리고 늦은 밤 편의점에서 술을 사 들고 가는 이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술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아버지의 나약함이 싫어 살벌하고박터지게 살던 누군가의 무기가 하필 또 왜 술이었는지 이해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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