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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을 파는 잡화상 Jul 14. 2023

영원한 그리움

황석영,「삼포 가는 길」


이만희 감독의 ‘삼포 가는 길’과 차화연 주연의 TV 문학관의 ‘삼포 가는 길’은 소설만큼이나 완성도 면에서 인정받았다. 문학 텍스트가 다른 장르의 텍스트로 옮겨져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소설의 절제된 문장은 자칫 신파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 주고 풍경묘사를 통한 인물들의 내면 드러내기

는 삶의 우수를 엿보게 한다. 황량하고 추운 들판에서 따스한 불기를 바라는 이들. 그 불기를 찾아 정 씨와 영달과 백화는 길을 떠난 것이다. 


정 씨와 영달이 가는 ‘삼포’라 불리는 정 씨의 ‘고향’은 인간 근원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이상향처럼 보인다.

피로한 인생인 정 씨는 출소 후 떠돌아다니다가 지친 몸과 마음을 누일 고향으로 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삼포’는 정 씨의 고향이자, 집이며 어머니라고 볼 수 있다. 어머니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고단한 여정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그를 산업화와는 거리가 먼 벽촌인 ‘삼포’로 향하게 한다.  몇 채의 집과 따스한 연기가 빠져나오는 굴뚝. 그곳에 공동체적인 삶이 아직 남아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그러나 좌절된다. 


술집 작부일망정 가슴 따듯한 백화와 공사장을 떠돌아다니던 영달이 결합하지 못하고, 다른 기차를 잡아타듯, 정 씨가 기억하고 그리워하던 ‘삼포’는 사라졌다. 경제개발은 그곳에까지 파고 들어왔고, 마을은 온데간데없다. 정 씨가 갈망한 자기 근원과 합일하고자 하는 서정적 욕망은 무참히 좌절된다.


그곳에서 정 씨와 영달은 다시 뿌리 없이 떠도는 자신들을 만날 뿐이다. 정착을 위해 찾아간 백화의 고향도 이와 다르지 않을 듯하다.


어디에서 고향을 찾을 것인가? 고향은 이미 파괴되고 마음속에만 남아 있다. 고향의 복원은 가능하지 않다. 다른 고향을 건설하는 일이 아니라면 고향은 기억 저 먼 곳에만 존재하는 영원한 그리움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석영의「삼포 가는 길」은 근원에 가 닿을 수 없는 인간 삶의 고단한 여정을 상징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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