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을 파는 잡화상 Oct 08. 2023

달콤 쌉싸름한 침

김애란,「침이 고인다」

 

 껌과 함께 자신을 도서관에 버리고 간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지금도 침이 고이는 후배. 그때부터 자신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할 때면 역시 침이, 고인다. 한 사람의 트라우마가 이렇듯 간결하며 투명하게 표현된다.   

    

  그녀는 어느 날 찾아온 후배의 사연이 진짜인지, 잠시 머물 곳을 찾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이야기의 진실성에 대한 회의를 품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후배를 받아들이고 둘의 동거는 몇 달간 이어진다. 처음엔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이야기할 대상이 생겼다는 것이 괜찮은 일처럼 생각됐다. 서로 위로가 되는 순간들이 잠시 이어진다. 그러나 점차 둘의 생활 습관이 차이를 드러낸다. 게다가 후배는 그녀의 일상적 기호를 벤치마킹하는 것처럼 그녀를 따라 한다. 그녀는, 자신과 자신만의 공간이 방해받는 것을 힘들어하다가 결국 생리혈 흘린 걸 기회 삼아 칠칠치 못한 후배를 내보낸다.      


 이제 그만. 후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예감에서부터 체감까지 사람과 헤어지는 과정을 한순간 끝내버리는 듯한 훈련된 눈빛이다.     
방 한가운데 오래된 적요가 손님처럼 앉아 있다. 한쪽에 가지런히 개어진 이불이 보인다. 요 껍데기는 벗겨진 상태다. 방 안을 둘러본다. 항상 행거 아래 있었던 후배의 가방이 보이지 않는다. 후배가 없다.  


  여기서 그녀의 이중적 심리가 읽힌다. 처지가 딱한 후배(그러나 귀찮은 후배)를 바라보는 그녀는, 자기만의 공간인 방에 대한 양보에서 다시 집착으로 이어진다. 방은 개인성이 안전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이다. 치사하고 피곤하지만 그녀가 학원에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방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독립이 주는 떳떳함과 함께 술자리에서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지인들의 경조사에서 사람 노릇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그녀가 학원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돈을 벌지 못하면 인간 대접받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녀는 알고 있다.


 혼자 남은 방. 그녀는 후배의 흔적인 반쪽짜리 인삼 껌을 털어 넣고 씹는다. 껌을 씹는 그녀의 입에도 침이 고인다. 달콤 쌉싸름한 침.

 

 


  작가는 현실적 배경과 인물, 그리고 상처의 연결점을 매우 섬세하고 재치 있게 만들어낸다. 재치 있는 문장과 비유들이 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려진 것들이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범접할 수 없는 세련된 아르 R 발음이 국어과의 가슴을 떠밀며 파도처럼 밀려온다.’ 웃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영어 콤플렉스에 걸린 한국 사람들의 정서를 비틀지만 익살스럽다. 국어과는 영어과에 왠지 모르게 기가 눌리고 있는 학원 생활의 구체성 역시.


매거진의 이전글 구원의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