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무너지는 마음

무너지지 않기 위해 무너지는 중

by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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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난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거야” 라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

부모님도, 주변 사람들도 내 가능성을 믿어주는 분위기였고,

나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칭찬을 들을 때마다 “그래 난 뭔가 특별한 사람이구나” 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았다.

그래서였을까, 난 늘 큰 꿈을 꿨고, 그 꿈을 당연히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어렸을 적, 나는 밤하늘을 보는 걸 참 좋아했다.

햇살 아래보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 마음이 더 편해졌고,

가로등 사이로 희미하게 반짝이던 별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세상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나는 그 별들 사이 어딘가에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진짜 세계가 있다고 믿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

누군가의 틀 안에 갇히지 않은 진짜 자유.

그게 나에겐 ‘우주’였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우주에 가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멋있어 보여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꿈은 그냥 멋이 아닌 내가 이뤄야 하는 목표가 되어갔다.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이미, 지구가 너무 답답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꿈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렀다.

어느 순간, 집에는 ‘우주비행사가 되는 법’ 에 관한 책과 기사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성공한 다른 사람들의 경험들을 보며,

나는 내가 언젠가는 하늘을 뚫고 진짜 우주를 마주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우주를 단 한 번이라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까지 여겼다.

심지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아니, 너무나도 냉정했다.

우주비행사는커녕, 우주를 향해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는 파일럿이 되는 것조차

내게는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재능도, 체력도, 언어도, 스펙도, 하나같이 부족하다는 걸 느낄수록

나는 점점 '나는 내가 생각한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

이미 너무 오래 가슴에 담아온 꿈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게 미련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직접 우주에 가지 못한다면,

그 우주를 다루는 산업에 종사하면 어떨까?

혹은 많은 돈을 벌어서 언젠간 우주여행을 떠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방법은 달라도 꿈을 지키고 싶었기에 조금씩 방향을 바꾸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나는 뭔가 해 낼 수 있을 거야” 라는 자신감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게 큰 꿈을 꾸었던 청년은 현실에서 뭘 하고 있었는가.

공부도, 준비도, 노력도, 그냥 머릿속에서만 그렸을 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난 내가 잘 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냥 막연히.


그게 내 자존감의 원천이나 동시에 나를 갉아먹는 씨앗이었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대학교에 입학했고,

우연한 기회로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 중 하나였다.

혼자 낯선 나라에 던져져 외로움과 싸우면서 지낸 시간. 처음엔 정말 힘들었다.

말도 잘 안 통하고, 문화도 달랐고,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자꾸만 느껴졌다.


그 시기에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가진 사람이고, 이 책을 만들게 된 계기를 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 친구를 만나면서 난 처음으로 “이 사람이면 평생 함께 하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다.

모든 게 처음이었고, 그래서 더 강렬했다.

매일이 선물 같았고, 너무 행복했지만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고, 그녀는 미국에 남아야 했으니까.


그 이후의 시간은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음 한편에는 잊지 못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을 살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선명해졌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 자신을 더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게 내가 이러한 ‘불안’이라는 감정을 인식하게 되었던 첫 계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겉으로 보기엔 늘 괜찮은 사람이었고, 주변 사람들은 날 능력 있는 사람을 보았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정작 나는, 아무것도 이루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에 시달리고 있었고,

뭔가를 이루지 못했으니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현실이 너무 괴로웠다.


나는 나를 믿었던 사람이고, 동시에 나를 가장 의심하는 사람이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그런 나의 이면을 처음으로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그 시작점을 꺼내고 싶다.

그래야 다음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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