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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준 Jun 02. 2018

기억이 머문 자리

2018년 4월 14일의 글

 이른 퇴근 후에 신촌 거리를 걸었다. 걷다 보니 동교동이 눈에 들어왔고, 길은 연남동까지 이어져있었다. 언제 또 이래 보겠어?라는 말을 되뇌며 구석구석 거리를 훑었다.


 이곳에서는 내가 이랬지. 저곳에 있던 보쌈집 맛났는데. 10년 전 저 골목에서는 술을 많이 마시고 토했다. 8년 전 내가 자주 갔던 바는 이제 없어지고 웬 레스토랑이 들어왔더라. 저 초밥집에서는 생리심리학 시험문제에 대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이 거리는 사랑하는 사람 손을 잡고 걸었다. 오늘 지나갔던 모든 길에 내가 있었다. 하지만 남은 것은 내가 기억하는 그 순간과 장소의 흔적뿐.


 기억이 존재를 규명한다. 이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이 말이 주는 무게가 내 안에서 점점 커져가는 듯하다. 그리고 그 '존재'라는 것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모양으로 남아있는 것 같고.


 눈은 이랬지, 코는 저랬다. 하지만 이 생김새를 다른 이에게 설명하는 것이 때로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이가 기억을 '규정'하니 기념품이 된 것 같았다. 많은 순간이 박제되는 느낌이다. 흉터라는 것도 상처가 아문 자리일진대, 흉터 정도면 싸게 먹히는 게 아닐까 싶다. 아물 새가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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